오늘은 친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의 기일이다.

나의 삶을 채워준, 할아버지들의 조각들

by 베러윤


# 친할아버지는 26년 전, 외할아버지는 3년 전에 돌아가셨다. 각각 음력과 양력으로 보내다 보니, 우연히 오늘, 두 분의 기일이 되었다.

# 친할아버지는 내가 중학교 올라가던 해, 돌아가셨다. 어린 나에게 친할아버지는 따스하고 인자함의 이미지보다는 카리스마 있었던 모습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할아버지는 아무것도 없던 시절 장사를 시작해, 꽤 큰 기반을 닦아내신 분이셨다. 그러다 보니 카리스마가 넘칠 수밖에.

# 나에게 할아버지는 부자 할아버지였다. 단독주택에 사셨던 2층집 연희동 할아버지의 집이 어찌나 커 보이 던 지. 할아버지는 나에게 필요한 것은 최고로 사주셨다. 명절에 할아버지댁에 가서 잠을 자면 매일 아침에 일어나 세배할 때마다 5만 원 10만 원씩 턱턱 주셨다. 명절 한번 보내고 집에 오면 내 손에는 몇십만 원 때론 백만 원까지 손에 쥐어 있었다. (그 돈들은 엄마가 가지고 갔는데 다 어디로 간 거지?)

# 그러던 할아버지가 지병인 당뇨가 심해져, 백내장 수술을 받게 되셨다. 그렇게 큰 수술은 아니었기에 가족 모두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는데 수술 합병증으로 쓰러지시게 되셨고, 혼수상태가 되셨다. 그렇게 3년을 식물인간처럼 병원에만 누워계셨다. 그 당시에 간병인을 쓰는 걸 할머니가 싫어하셔서 우리 엄마는 매 주말마다 병원에 가서 밤을 새웠다. 지금 며느리들에게 희생을 강요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때가 90년대였으니 며느리라는 무게가 꽤 무거웠던 것 같다.

# 3년을 누워계셨던 할아버지는, 그렇게 돌아가셨다. 그 당시 할아버지 나이는 60대 중반이었다. 고작 초등학교를 막 졸업한 나에게는 죽음이 그렇게 와닿지 않았다. 더군다나 3년을 병상에 누워계셨던 할아버지였기에 친척들 만나는 게 철없는 마음에 신날 뿐 아빠가 어떤 마음이었는지 전혀 알지 못했던 것 같다.

# 친할아버지가 카리스마 넘치는 분이셨다면 외할아버지는 참 따스한 분이셨다. 어릴 때 우리 집 근처에 사셨기 때문에 참 많이 챙겨주셨다. 내가 외가의 첫 번째 손녀였기 때문에 사랑도 듬뿍, 기도와 축복도 듬뿍 받았던 기억이 난다.

# 외할아버지는 부자는 아니셨다. 하지만 50대까지 농협에서 일하셨고, 그 퇴직금으로 돌아가시기 전까지 자식 누구에게도 손 벌리지 않고 사셨다. 친할아버지댁에서 설을 보내고 외갓집에 가서 세배를 하고 나면 외할아버지는 세뱃돈으로 5천 원씩 주셨었다. (물론 나중에는 더 주셨지만) 하지만, 나는 친할아버지처럼 많이 주지 않더라도 그 돈이 너무 소중하고 좋았다. 금액의 액수보다 외할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져서라고나 할까?

# 외할아버지는 3년 전에 노환으로 돌아가셨다. 90넘은 고령의 나이에도 배움을 멈추시지 않으셨던 분. 마지막까지 스스로 자기 삶을 가꾸어 나가셨던 외할아버지의 성실함과 배움의 태도는 지금 나의 삶에도 꽤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 다른 형태의 사랑을 두 분 다 주셨지만, 두 분의 기일을 기리며 가만히 생각해 본다. 친할아버지는 가족을 위해 치열한 세상을 다루는 강인함과 책임감을 나에게 주셨고, 외할아버지는 세월 앞에서 낡아지지 않고 새로워지는 성실과 겸손을 주셨다.

# 어쩌면 기일은 떠난 이를 향해 슬퍼만 하는 날이 아니라, 그분들이 남긴 삶의 조각들을 내 삶에 어떻게 이어가고 있을지 고민해 보는 날 아닐지 생각해 본다.

# 두 할아버지의 기일이 겹친 오늘, 나는 내 차례의 삶을 다시금 점검해 본다. 훗날 내 뒷세대가 나의 기일을 맞이했을 때, 그들은 나의 삶에서 어떤 조각을 발견하게 될까. 친할아버지의 책임감과 외할아버지의 성실함, 그 소중한 조각들을 잘 이어 붙여 나 또한 누군가에게 따뜻하고 묵직한 이정표가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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