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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부티 Mar 20. 2024

첫사랑 연대기 : 전학생의 이름으로

나의 첫사랑을 찾아서 ①

 

 내 첫사랑은 누구였을까. 첫사랑을 누구로 기억해야 맞을까. 내 마음속에 가장 오래 품었던 아이일까 아니면 시간이 지나도 오래도록 기억에 자리하는 아이일까. 가장 절절 끓듯 좋아했던 아이는 그만큼 온 마음을 다해 좋아해서 내게 오래도록 남아 있지 않았고 여전히 문득문득 떠오르는 그 아이는 그게 사랑이었다는 걸 나중에야 깨달아서 그 감정을 온전히 다한 시간이 없어, 계속 내게 남아 있었다. 이 두 아이 모두 내게 첫사랑이 아니라면 처음으로 떨림의 감정을 느끼게 해 준 열세 살 그 남자아이를 내 첫사랑이라고 해야 할까. 어쩌면 나는 이 셋 중 어느 누구도 내 첫사랑이었다고 말하고 싶지 않은지도 모른다. 여전히 나는 내 온 마음을 다해 후회 없이 사랑하고 이 진심 가득한 내 사랑을 전할 그 첫사랑, 첫 연인, 그 첫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열세 살, 초등학교 6학년 한 해가 중순을 넘어 새 학기가 시작되고 그러나 여전히 덥던 어느 날 그 아이가 교실 앞문을 열고 들어왔다. 전학생이란 이름으로 교실 문턱을 넘어 성큼성큼 걸어 들어온 그 아이는 긴장이 어려있지만 당당했고 견고해 보였다. 그렇게 당당하게 넘어온 낯선 교실의 경계를 타고 그 아이는 내 마음의 문턱도 함께 넘어 내게 다가왔다. 조용히, 스르륵. 한 번도 전학생이 된 적은 없었지만 전학생이 된다면 쭈뼛거리지 않고 당당하게 자기소개를 해야지, 늘 그렇게 마음먹던 나는 왠지 그 아이가 정말 멋들어지게 또박또박 자기가 누군지 말할 것 같았다. 자기 안의 떨림을 누르고 긴장을 있는 그대로 전하며 자기 목소리를 낼 것 같았다. 그 아이는 정말 그 낯선 시선과 처음의 환경 속에서 온전히 자기 목소리로 말했다. 자기 이름 세 글자를 또박또박 힘 있게 말하고는 처음이라 긴장도 되고 모르는 것도 많은데 앞으로 잘 지내보자며 마무리 멘트까지 알맞게 하고는 말을 마쳤다. 전학을 가본 적도 없으면서 내내 기억 저편에서 나는 전학생이 되어 그 투박한 나무 문을 열고, 생전 처음 보는 무수한 얼굴들과 나를 향한 호기심과 의심과 무관심이 한껏 어려있는 눈동자들을 마주하며 걸어가 교탁 옆에 서는 상상을, 그 시선 앞에서 내 이름 석 자를 말하고 나는 어떤 사람인지, 너희들과 어떻게 잘 지내고 싶은지 당당하게 말하는 상상을 하곤 했다. 그리고 여전히 매미가 쨍하고 울어대던 한낮의 여름날 그곳에 내가 줄곧 상상하고 그려온 내 모습으로 그 아이가 서 있었다. 내 눈앞에서, 육성으로, 실체로 존재하며 당당히 자기를 밝히고 있던 아이. 강동호. 이름이 강동호였던 것 같다. 내내 이름이 어렴풋이 생각났는데, 그때도 이름 한 번 씩씩하게 불러보지 못하고 헤어졌는데 이 글을 쓰는 순간 그 아이 이름 세 글자가 무심하게 선명해진다.


 그 친구를 그렇게나 좋아했던 것 같지는 않다. 다만 누군가를 보고 가슴이 떨리던 감각을 그때 처음 느껴 보았다. 복도를 걸어가다가 예상치 못하게 강동호가 교실 앞문을 열고 나오면 그래서 그 순간 우리가 눈이 마주치면 같은 반 친구면서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눈을 서둘러 다른 곳으로 돌리고, 돌덩이처럼 그 앞을 지나쳐 걸었던 기억이 있다. 그 아이의 시원시원하게 생긴 또렷한 눈과 오뚝하게 선 콧대와 딱 알맞게 도톰했던 입술을 기억한다. 그 오목조목 잘생긴 얼굴에 살짝 장발이었던 머리가 너무 잘 어울려 어쩌면 나는 그 아이가 좋았는지도 모르겠다. 웃으면 입꼬리 역시 시원하게 올라가 고르고 정갈한 하얀 이가 드러났고 어딘가 빈 곳이 하나도 없는 그 깔끔한 얼굴이, 말쑥하지 않고 곧고 강인한 선이 꼭 바른 그 아이 같아 내내 내 마음을 훔쳤는지도 모른다. 강동호와 이야기를 많이 해보지는 않았다. 내가 얼마만큼 강동호를 좋아했는지도 실은 모르겠다. 전학생으로서의 동호, 복도에서 마주쳤을 때 온몸이 뻣뻣하게 굳은 채 그 앞을 지나갔던 기억, 그 아이의 표정 없는 얼굴, 그러다 씨익 웃는 얼굴 그런 기억들이 조각처럼 내게 남겨져 있을 뿐이다. 그 아이도 분명 나를 좋아했던 것 같은데 그 아이나 나나 너무 어렸고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개념 자체가 우리에겐 없었던 때라 그런 변화가 내가 동호를 좋아하고 있다는 신호인지도 잘 몰랐다. 그냥 동호를 보면 기분이 좋았고, 그 아이와 눈을 마주치면 둘 다 동공이 멈춘 듯 잠시 얼음이 되었고, 서로에게 아무 말이라도 하지 못하고 그렇게 계속 같은 교실에 있으면서 스치기만 했다. 어쩌다 같은 모둠이 되어 호흡이 긴 프로젝트를 해야 할 때면 어색한 듯 친하게 얼굴을 마주했고 그 떨리는 마음을 감당하느라 투박하게 그 아이에게 이것저것 시켰던 것 같다. 그럴 때 어색하게 눈을 마주치며 무어라 말하던 동호의 얼굴이 기억난다.


 요즘 어린아이들처럼 좋아한다는 개념이, 짝사랑이라는 개념이, 사귄다는 개념이 그때의 우리에게도 있었다면 동호와 나는 특별한 사이가 될 수 있었을까. 나에게 말 한마디 못 걸던 강동호를, 시선이 마주칠 때면 나와 똑같이 굳어 버리던, 그 아이가 긴장한 걸 나는 한눈에 알 수 있었던, 어색하고 투박하게 웃으며 나에게 손짓하던 강동호를 나는 이제 다시 보고 싶다. 그런 내 안의 변화를 통해 내가 이 아이를 좋아하고 있구나 하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좋아함의 개념도, 친구란 카테고리 안에서 이성이란 개념도 없었던 순수하고 투명했던 우리를 나는 아름답고 귀엽게 기억한다. 강동호의 기억 속에 나는 없을 테지만 강동호가 열셋, 행복하기만 했던 그 시간 이후로 많이 힘들지 않게 자신의 삶을 걸어왔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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