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부티 May 08. 2024

짝사랑의 새 국면

나는 그만 비참해지고 말았다.

 

 지난 주말 그와 나 사이에 걸쳐 있는 지인을 만났다. 나는 그와 가깝지 않고 지인은 그와 친한 사이이다. 지인과 대화를 하다가 우연히 지인으로부터 그가 최근에 대시를 받았다고 말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상대를 밝히지 않았지만 그래서 그게 나인 줄도 모를 일이지만 나는, 나는 비참했다. 그가 대시를 받았다고 말했다는 사실 자체가 그에게 실망스러웠다. 그가 말한 대시의 주체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일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최근에 대시를 받았다고 말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나는 그 문장의 숨겨진 인물이 마치 나일 것만 같았다.


 나는 그에게 고백을 하지 않았고, 내 행동이 정말 직접적인 호감 표시인지도 잘 모르겠는데 그럼에도 그가 말한 대시의 주인공이 나라면 나는 그에게 무척이나 실망스럽고 또 비참한 감정이다. 내가 고백하지 않았으니 그는 내가 얼마나 당신에게 진심이었고 얼마나 큰 마음으로 너를 바라보고 마음에 담았는지 모를 테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나를 좋아하는 누군가의 용기와 마음을 이리도 쉽게 말할 수 있는 건지, 어지러운 마음이다. 그래서 그가 너무 미웠고, 너무 실망했으며, 화가 났다. 그렇다. 나는 화가 난 것이다. 내 마음이 한순간의 가십거리로 전락한 기분이었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인물 1 정도의 가벼움으로 그가 나를 대하고 있었던 것만 같다. 


 물론 나는 그의 인생에서 잠깐 등장했다가 사라지는 사람일 테고 그가 나에게 마음이 없으니 그에게 나는 당연히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겠지만, 그래도 자신을 좋아해 마음을 보여준 사람인데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쉽게, 툭, 하고 내뱉을 정도의 가벼움으로 나의 마음을, 진심을, 표현을 대하고 있었다니 그 사실이 너무 큰 상처가 되었다. 그 호감을 표현하기까지 얼마나 쉽지 않았을지, 얼마나 용기를 내야 상대 앞에 설 수 있는지, 용기를 내기까지 지새운 무수한 밤과 쉴 새 없는 고민으로 물든 하루하루가 얼마나 많았을지 정도는 사랑을 해본 사람이라면 알 텐데. 어쩌면 그렇게 함부로 말할 수 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 비참함이 사라지지 않았다. 내가 좋아했던 사람이 이런 사람이라는 게 화가 났다. 아니. 오히려 상대를 밝히지 않은 것에 기뻐해야 하는 걸까. 그게 나에 대한 예를 다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그가 자신에게 호감 표현을 한 사람이 최근에 있었다는 사실을 어떤 이야기를 나누다 말을 하게 됐는지, 어떤 태도와 온도로 말을 했는지 나는 알 수 없기에 그의 의도와 심성까지 오해하고 왜곡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건, 어떤 상황에서건 그와 내가 함께 속한 집단에서 그 사실을 나와 그의 중간 지인에게 말했다는 사실은 그에게 나의 용기와 이 마음이 진지하고 소중하게 여겨지지 않았고, 그저 1년 중 하루처럼 존재감 없이 스쳐 지나가는 잠깐의 에피소드였을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에 나는 그를 진실로, 온 마음을 다해, 좋아했다는 마음이 그만 비참해진다. 그가 싫어진다. 

 

 그가 ‘대시’라는 단어로 표현했는지도 알 수 없다. 그리고 그 '대시의 주인공'이 나인지도 모른다. 말이 전해지는 과정에서 호감 표시가 대시로 바뀌었을 수도 있고 자신을 좋아하는 것 같다는 말이 대시로 변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정말 그가 ‘대시’라는 표현을 썼다면, 그랬다면 나는 그를 좋아했던 나를 미워하게 될 것 같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도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천천히 살펴보지도 않고 무턱대고 그렇게나 마음을 써버린 내가 원망스러워질 것 같다. 아무리 그가 나의 마음의 깊이를 알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렇게 ‘얼마 전에 누가 나한테 대시했다’라고 말하는 표현 속 '대시'란 단어가 나는 참을 수 없이 가볍게 느껴진단 말이다. 내 마음이 고작 그렇게 소비된다니. 슬펐다. 그리고 너무 화가 났다. 

.

.


 무엇보다 상대가 누구든 사람이 사람에게 향하는 마음은 귀하고 그 마음을 겉으로 꺼내 보여준다는 건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며 그 마음을 감당하느라 보낸 내가 결코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이 있을 텐데 그 귀한 용기와 망설임 속 피어낸 진심이 ‘대시’라는 툭 하고 건드려보고 찔러본 느낌으로 표현될 수는 없는 일이다. 누군가 나를 가치롭게 여겨준다는 사실은 너무 고마운 일이기 때문에 내가 진정으로 사랑을 해봤고, 누군가를 향한 기쁘고 들뜨고 아프고 슬픈 아린 마음을 품어봤다면, 그리고 그 마음까지 지워봤다면, 나를 향한 누군가의 그 마음을 그렇게 한낮 스치듯 지나가는 감정으로 표현해서는 안 되는 일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주말 내내 비참했고 그 비참함을 이기지 못해 울먹였다가 그로 인해 더 이상 울기 싫은 마음과 실망스러운 그의 행동으로, 울기까지 한다면 더없이 비참해질 것 같은 마음에 눈물을 꾸역꾸역 삼켰고, 무너진 마음을 계속 잡고 일으켜 세웠다. 

 

 주말이 지나자 비참함이 화로 변했다. 여전히 나는 양치를 하려 거울 앞에 선 순간, 자려고 침대에 누운 순간, 받을 먹다가 숟가락을 들어 올렸을 때 그런 찰나의 순간에 내가 그에게 보낸 문자와 말과 그 앞에서 허둥대던 내 모습이 떠올라 하염없이 부끄러운데, 그 모든 창피함을 감당하고 있는데, 그런 와중에 그가 나의 이 사랑을 정말 그런 방식으로 표현했다면 그 가정이 현실이 되었을 때 나는 화가 날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 화는 점점 분노가 되었다. 나의 이 짝사랑 서사를 모두 알고 있는 유일한 친구 S에게 이 말을 전했다. S의 첫마디는 '너무 별론데?'였고, 대시란 표현을 쓰지 않았어도 누군가 자신에게 표현한 호감을 다른 사람한테 가볍게 말한 것 자체가 그 사람에게 실망스러울 점이며 대시란 표현을 썼다면 그건 정말이지 너무 화가 날 것 같다고 했다. 


 나는 그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 비참했다가 화가 났다가 결국엔 절망한다. 내가 좋아했던, 여전히 그 아픈 마음을 지우고 있는, 그러나 온 힘을 다해 담아 사랑했던 상대가 그렇게 말한 당사자란 사실이 그래서 나의 사랑이 퇴색되는 듯한 느낌에 나는 내가 품었던 그 사랑이 틀린 것만 같아 마음이 부서진다. 모든 것이 부정당한 기분, 농락당한 기분이다. 이렇게 확실하게 끝낼 수 있음에 감사해야 하는 걸까. 한순간에 정이 뚝 하고 떨어지며 이 사랑을 마감하게 되는 건가. 거절당하는 기분이 뭔지 끝까지 알게 해주는 이번 짝사랑을 겪으며 다시는 짝사랑을 안 하고 싶어 지다가 '이런 사랑을 하고 싶지 않은 거지', 하며 나의 마음을 보호한다. 다시는 사랑을 하고 싶지 않다고 결심하게 될까 봐 두려운 마음으로 나는 어렵게 피어난 ‘나의 사랑하고자 하는 마음’을 지킨다. 

이전 21화 지독한 짝사랑의 끝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