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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부티 May 13. 2024

사랑이 정말 끝났다는 신호


 내 사랑이 끝났음을 실감했다. 그를 보아도 어떤 감정도 개입되지 않는 차분함 아니 텅 빈 마음이 더 이상 내가 그를 품고 있지 않음을 증명한다. 나의 마음이 하찮게 표현된 이후 그를 볼 때면 나는 비참했다. 그의 얼굴이 보기가 싫었다. 더이상 그 앞에서 웃기도 싫고 이야기 하기도 싫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하루에 그를 한 번도 생각하지 않게 되고, 그와 마주침을 기다리지 않게 되고, 내 삶과 내 행동과 선택에 그가 아예 배제된 일상을 보내며 나는 비참함도 함께 덜어냈다. 비참함이 지나가고 난 자리에는 그를 향한 미움이 남았고 이제는 그 미움마저도 미워하느라 소모되는 내가 아까워 기꺼이 아무런 마음도 먹지 않기로 하였다. 가끔 그가 생각나도 그가 생각나서 요동치고 흔들리는 내 마음은 이제 없다. 어쩌다 그의 소식을 들어도 이제 그와 관련된 어떤 사실도 내게 정보로 입력되지 않는다. 여전히 그를 보면 잘생겼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 생각에 뒤따르는 어떤 감정도 없다. 그가 잘생겼다는 건 모든 이들이 동의하는 하나의 사실일 뿐이다. 이제는 그가 내 눈에서 안보였으면 좋겠고 그와 마주칠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는 내게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그렇게나 좋아했던 사람이 더이상 내게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사랑의 자비없음과 사랑이 끝나고 난 뒤 공허의 참혹함에 소름이 일지만 아무렴 나는 이제 그를 좋아하지도, 그를 아끼지도 않으니 내 마음이 냉랭하다해도 괜찮은 것이다. 그가 마지막에 달랐으면 나는 이 사랑을 그래도 아름답게 추억할 수 있었을까. 거절당한 사랑도, 꽃 피우지 못한 채 마감한 사랑도, 사랑하는 시간 동안 후회되고 부족했던 부분이 있을지라도 시간이 오래 흐르면 아픈 상처는 걷어지고 나만이 함유하는 사랑의 역사로, 따뜻한 자산으로 남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가, 내가 당신에게 표현했던 나의 호(好)를 그런 방식으로 표현하지 않았다면, 이름만 말하지 않았을 뿐 누군가 나를 좋아했다는 사실을 가십거리처럼 말하지 않았다면 나는 이 사랑을 접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어도 나의 이 애닳은 사랑을 이십대의 애틋한 첫 사랑이라고 기억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의 사랑을 아름답게 추억하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것이 그에게 가장 화가 나는 부분이고, 밉고 실망스러운 지점이다. 너를 좋아했던 마음을 후회하게 만드는 것. 너를 생각하며 환해지던 모든 순간의 나를 언제든지 꺼내어 보며 아름답게 회상할 수 없게 한 것. 너는 내가 얼마만큼 진심이었는지 모르고 그래서 너의 행동을 다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해도 그래도 나는, 나의 이 진심이 기만당한 느낌이다. 그래서 비참해지다 그를 미워할 수밖에 없게 되었고 이제는 멀리서 너를 봐도 아무런 감정도 남지 않은 마음을 느끼며 나는 내 사랑이 진짜로 끝이 났음을 실감한다.

 

 내내 네가 지워지지 않아 힘들던 날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몰라 아득해지고 힘에 부치고 버겁던 날을 얼마 지나지 않아 내 마음을 단번에 끝내줘서 고맙기도 하고 그래서 아프기도 한 나의 진실했던 사랑이 이제 정말로 끝이 났다. 나는 그럼에도 이 사랑을 기억하고 싶기에, 이왕이면 행복하고 순수하고 예쁜 기억으로 내 마음속에 두고 싶기에 그는 지워낸 채 누군가를 향해 뜨겁고 열렬하게 품었던 그 순도의 감정과 풍요로웠던 시간만은 남겨둘 것이다. 나의 사랑은 귀하기에 내가 품었던 사랑이 다치지 않고 언제고 다시 그 항해를 시작할 수 있도록 소중히 남겨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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