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부티 May 17. 2024

사랑 후에 내게 남겨진 것 : 마음 둘


- 남겨진 마음 둘


 사랑이 끝나고 내게 남은 건 뭘까. 나는 지금 어떤 상태로, 어떤 마음으로 남아있나. 


 지난 수요일 직장 동료의 차를 타고 퇴근을 하다 처음으로 울었다. 내 사랑을 이야기하다 처음으로 다른 사람 앞에서 울었다. 그 사람에 대한 나의 마음을 말하다 처음으로 내가 아닌 타인 앞에서 내 사랑에 대한 눈물을 보였다. 사랑 앞에서 흔들리고 상처받아 비틀거리던 나를 글이 아닌 나와 똑같은 온기를 지닌 ‘사람’에게 처음으로 내어 보인 순간이었다. 그에게 받은 상처 정확히 말하자면 그가 아닌 그저 내가 내 사랑을 통과하며 마음에 새겨진 감정의 칼날이었고 나 혼자 좋아하고 나 혼자 받은 상처란 걸 알면서도, 그래서 그의 모든 태도와 감정이 이해가 되면서도 아파할 수밖에 없고 미워할 수밖에 없었던 나의 마음을 내 몸 밖으로 꺼내 보이면서 나는 울었다. 내가 울 거라고, 눈물이 나올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이제껏 내가 얼마나 그 사람에게, 또 이 사랑에 진심이었는지 내게 이 순간 찾아온 사랑이 얼마나 귀하고 값지며 나를 충만케 하는지 그래서 감사한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채 내 안에서 고이 품으며 걸어왔다. 늘 혼자 미소 지었고 늘 혼자 눈물을 흘렸다. 뒤에서 울지는 않았지만 울 때면 늘 혼자 조용히 눈물을 흘려보냈고 닦고 씩씩하게 일어섰다. 숨어서 아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누구 앞에서 나 상처받았다고, 나 지금 아프다고 엉엉 울었던 적은 없었다. 


 동료와 타고 가는 차 안에서 내가 많은 말을 한 건 아니었다. 엄청 꺼이꺼이 운 것도 아니다. 동료의 연애가 여전한지 물었고 어쩌다 나는 겨우내 내 사랑이 저무는 아픔을 감당해야 했다고 말했다. 정리해야 되는 걸 알면서도 정리되지 않아 고통스러웠던 마음과 그 시린 계절을 통과하며 내가 이 사랑에 얼마나 순전했는지를, 그래서 많이 아파했음을 말했다. 그렇기에 억지로 끝을 내야 하는 마음과 그럼에도 계속 앞으로만 전진하는 내 마음을 억지로 접어야 하는 것이 얼마나 아프고 고되었는지, 인력으로 되지 않는 것인지 말했다. 계속 이 마음을 가두고 막고 고인 채로 버티며 끝내는 떠나보낸 혹독한 시간이 있었음을, 그런 시간이 너를 보지 못하는 두 달 동안 내게 있었다고 말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내 사랑이 어떻게 짓밟혔는지, 그가 어떤 식으로 표현했는지, 그에게 내 사랑이 어떤 의미였을 뿐인지 말하면서 나는 홀로 감당하며 여과한 비참함과 쓰라린 아픔이 여전히 내게 남아있음을 확인했다. 그렇다. 나는 속이 상했었다. 마음이 많이, 아주 많이 아팠다. 내 진심이 정말이지 진짜 마음이었음을, 내가 그에게 쓴 고백의 말들처럼 내 안에 가장 깨끗하고 맑고 순도의 마음을 당신에게 향해주었음을 그래서 그 마음이 그저 그에게는 자기 삶에 아주 잠깐 스쳐 지나가는, 나중에 기억도 나지 않을, 어쩌다 이야기가 나오면 그제야 아 그런 사람이 있었지, 그런 일이 있었지 하고 떠올릴 아무것도 아닌 대상으로 취급될 것이란 사실의 예감이 너무 상처가 되었다. 이 모든 감정들이 내가 모든 일에 진심인 사람이라서 그런 건지, 이 사랑에 대해서만큼은 내 마음이 그토록 진실된 것이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사랑이 처음이라서 그 처음은 온전히 나를 쏟아붓고 서툴고 그저 물불 안 가리고 달려들 수밖에 없는 거라서 이럴 수밖에 없는 건지, 그 이유는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는 사랑 앞에서 늘 이렇게 진심이고 순전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란 것만큼은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 

 

 그가 너를 향한 나의 감정을 ‘대시’라고 표현했고, 대시라고 표현했다면 나는 그 표현이 너무 가볍게 느껴져 낙담할 수밖에 없다고, 그가 이 두 글자를 쓰지 않았다고 해도 그와 내가 함께 속한 이 조직에서 그 또한 자신이 궁금한 사람이 생겼는데 그 친구가 남자친구가 있어서 포기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누군가 나에게 호감을 표현했다고 덧붙여 말하는 흐름이 나는 그가 적어도 누군가를 향하는 마음에 대해서만큼은 제대로 된 사람이 아니라고, 괜찮은 사람이 아니라고 느꼈다고, 내 솔직한 마음을 말했다. 자신조차 궁금하고 자꾸 눈길이 가는 사람이 있었으면서 그러면 그 마음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 거면서, 그의 마음이 시작하기 전에 돌다리를 두드려보는 마음이었을지라도 그 마음이 모든 사랑의 시작이 되는 그 첫걸음이자 찬란한 아름다움임을, 그래서 사랑 앞에서 모든 마음은 애틋하고 어여쁘고 귀한 것임을 알 텐데 어떻게 다른 사람의 마음에 대해 그렇게 함부로, 너무나 쉽게 표현할 수밖에 없었는지 나는 너무 비참하고 밉고 그가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머리로는 친구와 혹은 지인과 누가 누구를 좋아했고, 누가 나를 좋아했고, 내가 누구를 좋아한다는 말을 할 수 있다는 걸 알겠는데 내 가슴이 받아들여지지가 않는다고 그래서 나는 아파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이다. 


 직장동료는 친구와 연애와 사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 자연스러운 일상에 대해서, 또 호감을 표현한 것이 대시라는 단어로 표현되지 무슨 단어로 표현하겠어,라고 말했지만 또 거기서 상처받게 되는 상대의 마음도 이해가 된다고 말했다. 나는 잠깐 울었고, 이 마음이 순간 울컥 올라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다 걷어지진 않아도 그래도 그 애절했던 마음을 정돈하고 새로운 계절을 맞이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순간, 생각보다 내 안에 오래 남아있을 이 사랑의 흔적을 어렴풋이 가늠할 수 있었다. 이 사랑이 내게 가져다준 것이 뭘까. 이 사랑이 내게 남겨 준 것이 뭘까. 사랑이 떠나고 난 뒤 남겨진 나로 아직은 차가운 공기의 3월의 거리를 걸으며 그 거리 위의, 그 차가운 공기 속의 오롯이 서 있는 나를 감각한다. 


 한바탕 요란한 시간을 겪고 난 뒤 내 마음을 내 마음으로 만져본다.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건 아닌, 그런데 비어있는 건 확실한. 사랑으로 가득 찼던 환희와 기쁨을 담았다가 지금은 쓰라린 눈물을 가득 머금고 있는 내 마음. 그 모든 감정의 결들이 한순간에 말끔히 씻겨 나간 깔끔함. 그러나 각각의 감정들이 품고 있던 온기들만큼은 여전히 작은 흔적으로 남아 어쩌면 한층 더 깊어지고 새로워지고 또 익어간 마음. 결국 이 환희와 고통이 나를 더 깊어지게 했고 나는 사랑하기 전과 후 조금은 다른 사람이 되었다. 짝사랑이기에 성공과 실패를 상대와의 만남이라고 한다면 내 사랑은 실패라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 사랑을 통해 나를 알게 되었고 사랑이 가진 힘을 느꼈고 무엇보다 사랑으로 차오르고 깊어지고 텅 비어버린 그 모든 나로 살아보았기에 사랑하기 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사랑에 대해, 사랑의 힘과 아연함에 대해, 사랑이 주는 찬란과 환호와 무적함에 대해, 사랑이 가하는 날카로운 칼날에 대해 그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이 되어 전과는 다른 나로 사랑이 끝난 겨울의 끝에 서 있다. 언제나 사랑하기를 주저하지 않고 언제고 다시 사랑을 시작하고자 하는 내가 되어서 말이다. 나는 이제 곧 다가올 따뜻한 봄을 생에 처음으로 그 따뜻함에 기죽지 않고 슬퍼하지 않고 속상해하지 않고, 따뜻함을 따뜻함으로 온전히 받아들이며 봄의 생동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이 모든 것이 사랑이 내게 남겨준 것들이다. 소중하고 귀한 것들. 그래서 나는 슬프지 않으려 한다. 슬퍼지려 할 때마다 울적해지려 할 때마다 이 귀한 마음들을 단순히 슬픔과 울적함으로 표현할 수는 없기에. 그 사실만큼은 분명하기에.  

이전 25화 사랑 후에 내게 남겨진 것 : 마음 하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