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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부티 May 20. 2024

사랑 후에 내게 남겨진 것
: 마음 셋


- 남겨진 마음 셋


 사랑이 완전히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그에 대한 마음이 끝났다고 해도 내가 오랜 시간 한 자리에서 품고 있던 사랑이 끝난 건 아니었다. 그를 보면 내가 비참했다가 그가 미웠다가 이제는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텅 빈 마음을 마주하고 정말 이 짝사랑이 끝났음을 실감했는데 사랑은 나의 안도함을 비집고 사랑의 말로가 아직 내게 찾아오지 않았음을 알려준다. 

 가슴이 아프다. 그와는 상관없이, 더 이상 그에게로 향해 뛰지 않는 내 마음과 상관없이, 아주 오래 진심으로 온 마음을 다해 바친 내 사랑 그 자체로 아프다. 그를 그렇게나 좋아하지 말 걸, 왜 그토록 진심이었을까, 좀 천천히 가보지, 적당히 좋아하지 어쩌자고 그렇게 열심히 마음을 다했던 거야,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때의 나를 떠올리면 당신에게로 향하는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자꾸만 커져서 내가 어찌할 수 없이 진심이 드러나고, 티가 나던 모습이 생각나 이건 그를 잊는 과정이 내게는 너무 힘듦이었음을, 그 시간을 아프면서 통과했기에 하게 되는 말임을 깨닫는다. 


 그냥 그를 보면 더 이상 그를 좋아하지 않는 나와 내게서 그에게로 샘솟지 않는 사랑이 느껴지는데도 나는 가슴이 아프다. 이 사랑이 아픈 건 그냥 재도 남지 않을 것처럼 숨김없이, 재지 않고 모든 걸 쏟아부으며, 타올랐던 내 사랑이 그렇게 끝이 났다는 사실 자체가 아파서겠지. 온 마음을 다해 사랑했기에 내 마음은 깨끗하지만 그래서 더 아픈 사랑이 되어버린 거겠지. 그냥, 이제는 그를 봐도 내게서 아무 동요가 없는데, 그 사람을 좋아했던 건 후회가 안되는데 그때의 그를 너무나 좋아했던 나와 그 마음이 숨겨지지 않을 만큼 그에게로 향하던 내가 떠올라서 조금 낯부끄러워질 뿐이다. 


 이 사랑을 통과하며 내 마음의 그 사람으로 인한 통증, 사랑이 닿지 못해서 부는 시린 바람은 다 지나갔다고 생각했는데 새로운 시림이 찾아왔다. 생각지 못했고 가늠조차 하지 못한 낯설고도 아픈 이 새로운 감각. 그 모든 사랑의 시간과 감정과 그 안의 내가 한 묶음의 거대한 존재감이 되어 나를 덮친다. 내게로 한 순간에 밀려온다. 그래서 나는 침체되고 아프고 시리다 그만 울고 싶어 진다. 슬퍼지려 한다는 게 이런 것임을 나는 스물일곱 해 만에 알게 되었다. 내게 여전히 생애 단 한 번도 느낀 적 없는 감정의 감각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면서 나는 사랑이 끝난 순간, 이제 사랑이 끝났다는 사실 그 자체로 아프게 타오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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