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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부티 May 22. 2024

끝. 사랑에 관한 사유


 무엇이든지 우리는 끝을 통해 우리가 누리고 경험한 모든 것의 찬란함을 깨닫는다. 내 곁에 자리하고 있던 존재를 정면에서 마주 보고 요목조목 뜯어보며 네가 왜 좋은지, 내게 왜 특별한지, 어떤 점이 사랑스러운지 수없이 자신에게 질문한다. 어떤 점이 힘들었는지, 이런 점은 정말 못 견디겠다든지, 용납할 수 없다 하는 나의 한계와 범위를 확인하기도 한다. 쑥스러워 제대로 보지 못한 너의 얼굴을 똑바로 마주해 그렇게 묻다 보면 결국 요동치고 변하는 건 네가 아니라 나 자신이었음을 깨닫는다. 너는 그대로인데 달라진 건 나구나. 내가 달라졌구나. 내 감정의 영악을 직시한다. 그래서 그 끝에는 발가벗겨진 내가 고스란히 서 있다. 나의 민낯과 치부를 확인하고 동시에 내 안의 깊었던 사랑을 느끼며 나는 그럼에도 좋았던 너와 싫었던 너, 부끄러운 나와 괜찮지 않은 나를 정렬한다. 한낮의 감정 같다가도 영원히 서로가 서로에게 지지가 되어줄 수 있을 것 같은 이 사랑에 속지 않고 오래오래 함께 걸어갈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그래서 사랑에는 저묾이 필요하다. 결국 만나게 될 나의 인연을, 오래도록 함께 손잡고 걸을 나의 연인을 소중히 여길 수 있도록, 나의 부족을 인정하고 시작하는 사랑에는 온유와 평강이 있을 테니까.     

 

 끝을 내고자 하지만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이 그렇게 쉽게 끊어지는 게 아님을 나는 이번 사랑을 겪으며 깨달았다. 생각해 보면 늘 사랑이 넘쳐나던 나는 그 사랑을 무한히 베풀며 살았다. 내 안에 계속해서 샘솟는 사랑을 숨김없이 보여주고 보내주고 상대에게 안겨주었다. 미워지고 싫어지는 사람이 없이 누구나 좋은 사람이라 생각하며 살았던 나는 그렇게 사랑으로부터, 사람으로부터 상처받았어도 그것이 상처인 줄도 모르고, 내게 아픔인 줄도 모르고 계속 사랑으로 응답했다. 지치고 무너져도 내 안에 샘솟는 사랑이 나를 다시 일어나게 했고, 사랑하게 했고, 사람에게 향하게 했다. 더 이상 사람에게 기대하지 말아야지, 믿지 말아야지, 마음 주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나는 계속 그렇게 사랑하게 됐다. 그런 내가 지쳐서 모든 게 그만두고 싶어지기도 했고 사랑이 많은 내가 버겁기도 했고 응답받지 못하는 슬픔에 사무쳐있을 때도 있었다. 나를 바꿔보려고도 했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그냥 사랑이 많은 사람이구나 깨달을 뿐이었다. 이제는 이런 내가 좋다. 미움보다 사랑이 더 많은 나라서, 사랑으로 슬퍼할지라도 그로 인해 사랑 없이는 다다를 수 없는 깊이가 있다는 걸 알았고 그 깊이를 품고 사는 삶이 더 풍요롭고 가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내면이 즐겁고 어여쁘다.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나만이 느낄 수 있는 이 복잡하고도 아름다운 내 마음의 심연과 저마다의 시간과 무늬로 꽉 들어찬 겹들이, 그 치밀성으로 말미암아 내가 품어 쓸 수 있는 문장들이, 그리고 시간이 쌓여감에 저마다 다른 밀도와 색으로 각자의 깊이를 더해가는 고유의 결들이 너무나 마음에 드는 것이다.     


 결국엔 사랑이 승리한다. 사랑만이 모든 것을 구한다. 사랑이 아니고는 우리는 화해할 수 없다. 사랑이 있기에 우리는 숨 쉴 수 있고 사랑이 있기에 우리는 서로를 품을 수 있다. 내가 너의 손을 잡게 되는 건 우리 사이에 사랑이 있어서고 네가 울 때 나도 같이 울게 되는 건 내가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너를 내 삶에 들이고 내 삶의 많은 부분을 네게 내어줄 수 있는 건 내가 정말이지 너를 꽉 끌어안고 싶게 좋아하기 때문이다. 집에 돌아온 너의 눈만 보아도 너의 뒤에 따라온 오늘 하루의 고됨이 읽히는 건 그래서 너의 무게를 함께이고 싶고 내가 무거워져 결국 네가 가벼워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나도 그만 속상해지기로 결심하게 되는 건 네가 내게는 사랑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사랑에 대해 아주 많이 생각하게 되고 사랑으로 함께 영원하고 싶고 결심하고 결단하지 않아도 너와 관계하는 모든 것에 자연히 걸음 하게 되는 삶을 살고 싶다. 그래서 내게 사랑은 나 자신이자 너이자 꿈이자 내 세상이다. 이 꿈을 내 현실로 만들어가는 과정 중에 나는 얼마든지 다치고 아파하고 다시 일어서고자 한다. 사랑이 내 세상이 되어도 계속 사랑을 꿈꾸고 이루며 너와 함께 걸어가고자 한다. 사랑하기에 짊어져야 하는 환희와 기쁨과 아픔과 슬픔 그 모든 것을 기꺼이 감당하고자 한다.

 

 이건 이십 대의 내가 경험하고 바라본 사랑에 관한 사유와 고찰, 그리고 사랑으로 끌어안음의 흔적이다.           

24.5.22

사랑의 한복판에서

이부티


+이번주 금요일부터 [사랑의 무적함 부록]이 새로운 브런치 북으로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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