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명랑도리 Apr 06. 2021

서른 즈음에

   




그 날, 우리는 작정하고 계산기를 꺼냈다.  


도대체 일 년에 맥주 마시는 데 얼마를 쓴 거야?

아니아니, 일 년 동안 맥주를 몇 리터나 마신 거야?


맥주에 쓴 돈만 발라내려니, 대단히 암담했다.

맥주값이라는 것이 담배값이나 쌀값처럼 소비자 시가가 정해진 것이 아니어서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애매했다. 마시는 장소와 곁들인 안주에 따라 가격 스펙트럼이 넓게 퍼져있는 데다가, 그날그날 술값을 쏘는 사람이 달라서 근사치를 추정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바로 포기하고, 그냥 순수하게 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 맥주를 마셨는지로 쟁점을 돌렸다.

평균이란 참 편리한 것이구나.

주량이라는 알코올에 대한 개인적 임계치와, 주중 알코올 섭취 빈도, 그리고 특별히 소주를 고집하는 사람과 어울리지 않는 한 대부분 맥주를 마시는 단조로운 음주 습관을 고려하니 바로 답이 나왔다.


하루 2L, 일주일에 네 번, 일 년 52주.

대부분의 숫자는 중간값으로 산정했다. 그렇게 정돈하니 심플했다.

2*4*52=416 L

나는 1년 동안 얼추 400리터가 넘는 맥주를 몸속에 들이부었다.


적분의 위대함.

마실 때는 매일 아쉬웠는데, 모아놓으니 끔찍한 양이었다.      


석사논문 학기였는데, 뭐 하나 신나는 일이 없었다. 협업이 필요 없는 인문학의 논문 쓰기는 홀로 땅굴을 파는 작업이었다. 주제를 정하고, 깃발을 꽂고, 작은 부삽을 들고, 그 다음에는 좁고 가는 굴을 수직으로 파내려 가는 것이다. 제가 판 굴에 빠져 영영 실종된 사람들도 종종 있었다.


연구실에는 책장 넘기는 소리와 자판 두드리는 소리만 허용될 뿐, 누구 하나 큰 소리를 내지 못했다. 그 지루한 묵언수행이 끝나고 예정된 어둠이 찾아올 때쯤, 정지화면처럼 앉아 있던 우리들은 드디어 좀비처럼 스멀스멀 부활했다.


비어 타임이다!     


우리 고정 멤버 다섯 명은 누구도 ‘오늘 한 잔 하자’는 식의 시동을 걸지 않았다. 그저 제 시간이 되면 태연하게 가방을 싸 술집으로 집합했다. 자주 가는 호프집에서 제일 싼 안주와 생맥주를 시키고, 목구멍까지 쌓아둔 말들을 쏟아내면 비로소 하루가 시작된 기분이었다. 입은 하난데, 맥주 마시랴, 안주 먹으랴, 수다 떨랴 몹시 바빴다. 하루 종일 연구실에 처박혀 있는 단조로운 일상에 뭐가 그렇게 할 말이 많았는지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다.      


별다른 일 없으면 다음날 등교에 지장이 없도록 빠르게 마시고 해산했다. 술은 마시고 싶은데, 시간이 없으니 500cc 정도는 몇 모금이면 비울 수 있었다. 쥐포나 땅콩 같은 안주에 급술을 퍼붓고, 각자 주머니에 있는 천 원짜리 몇 장씩 내놓으면 아쉬운 술자리가 마감됐다. 가끔 아르바이트 월급 들어온 사람이 ‘my day!'를 외치기도 했는데, 그러면 그날은 그냥 축제였다. 돈가스도 시키고, 병맥주도 시키고, 까짓것 케세라세라를 외치며 노래방에도 몰려갔다.      


어느 날인가는 이렇게 매일 술 먹는 데 돈을 쓰느니, 차라리 술집을 차리는 게 낫겠다고, 누군가 얘기했다. 다들 좋은 생각이라며, 설레발이 대단했다. 다섯 명이 돈을 모으면 쬐끄만 술집 하나 못 차리겠냐고 물정도 모르면서 큰소리를 탕탕 쳤다.


우리가 매달 술 먹는 데 쓰던 돈을 모아 일단 술집을 차리고, 이후로는 그 술집에서 이전과 동일한 양의 술을 원가로 마신다면... 결국 마시면 마실수록 그 차액만큼 돈이 남는 마술같은 비지니스 모델이 완성 되었다. 당장 내일이라도 이 지긋지긋한 논문은 집어치우고, 각자 모아둔 돈을 합쳐보자고 너도나도 이미 절반쯤은 호프집 사장 마인드로 돌아섰다.

너는 암산이 빠르니 프런트를 맡아라, 나는 힘이 세니까 박스를 나르겠다, 너는 주윤발 명찰을 달고 길거리에서 삐끼 해라, 그럼 나는 아쉬운 대로 주방을 책임지겠다! 근데 주방만 책임지고, 맛은 책임 못 진다. 낄낄낄낄.   


한참을 갈매기처럼 끼룩이며 웃던 우리들은 귀가 시간이 되자 마법이 풀린 신데렐라처럼 초라한 얼굴이 되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IMF가 선언된 조국에 우리를 받아주는 자리는 없었고, 그때 우리는 스물여덟이거나, 스물아홉이거나, 서른이었다. 어떤 시인은 우리 나이면 이제 잔치는 끝났다고, 정신 차리고 설거지나 하라며 억울한 소리를 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잔치판을 벌여본 적도 없었다.  

    



과 선배 하나가 학교 앞에 술집을 개업했으니 놀러 오라고 영업을 했다.


- 이럴 수가!! 우리가 먼저 생각한 아이디언데 선수를 뺏겼네.


거리에 넘쳐나는 것이 술집인데, 우리는 신제품 기획안이라도 도둑맞은 듯 땅을 치며 안타까워했다. 동시에 아지트 하나가 늘었다는 생각에 속으로 몹시 들떠 있었다. 새 술은 새 푸대에, 아니 새 술은 새 술집에서!     


선배는 우리처럼 매일 술 먹는 데 돈을 쓰던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니 그의 개업은 우리와는 다른 니즈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그는 항상 바빴다. 학생회관에서도 일을 했고, 단과대 자판기도 관리했다. 수업이 끝나고도 다양한 서브잡이 있었다. 그렇게 종잣돈을 모아 그는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세상이 받아주지 않으니, 스스로 있을 곳을 만든 것일지도...


새로 개장한 가게는 선배의 지인들과, 선배의 동업자의 지인들로 북적거렸다. 그는 어쩐지 학교에서 보던 모습과 달리 포스가 느껴졌다. 역시 사업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술집 이름이 허를 찔렀다.


<서른 즈음에>


작은 건물 이층에 걸린 간판을 보고, 나는 순간 울컥했다. 선배는 술도 잘 안 마시면서 어떻게 저렇게 술을 부르는 이름을.


맥주 거품처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흩날리면서도 사실 우리는 모두 초조했다. 이 방탕한 룸펜의 나날도 고작 한 학기 정도가 남았을 뿐이다. 서른이면 모든 것이 명확할 줄 알았는데, 명확한 것은, 아무것도 명확한 것이 없다는 사실 하나였다. 국문과답게 제 절망조차 조롱하는 우리는 모두 김수영의 후예들이었다.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안 그래도 매일 청춘과 결별하는 기분인데, 김광석은 일러주지 않아도 너무 잘 아는 서글픔을 굳이 그 대체 불가능한 목소리로 노래하고, 선배는 하필 자주 애용하려고 결심한 술집 이름을 저렇게 지어 버렸다.      


그가 거짓말처럼 우리를 떠나고 난 뒤, 한동안 나는 그의 노래만 들어도 자동으로 가슴이 내려앉았다. 장국영을 잃었던 그 만우절 이후로 두 번째 느끼는 상실감이었다. 그래서 나는 슬픔이 요긴할 때를 제외하고, 가급적 얼마 동안은 그를 떠올리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런데 선배가 게릴라처럼 김광석을 건드린 것이다.      


선배는 가장 자신 있는 메뉴로 대구포를 추천했다. 주방장의 스페셜 레커맨드가 고작 불에 굽기만 하면 되는 대구포라니. 선배의 창업도 뭐 우리보다 특별나게 치밀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마요네즈에 간장과 다진 청양고추를 섞어 만든 특제 소스 때문에, 선배의 말처럼 그 대구포는 다른 집과 조금 달랐다.


보들보들한 대구포는 이후로도 자주 우리를 호출했고, 우리는 그곳에 들를 때마다 서른이라는 나이와, 제 스스로도 서른 즈음에 먼길로 떠난 김광석을 생각했다. 명실상부함을 실천하듯 가게에서는 자주 김광석 노래가 흘러나왔고, 그런 이유로 나는 김광석을 추모한다는 대의명분에 기대 내 불안과 우울을 그곳에서는 조금 편하게 꺼내 놓을 수 있었다.           





교정 치료 때문에 아들과 세브란스에 들렀다. 날씨가 좋아, 오랜만에 아들 손을 잡고 신촌 거리를 걸었다. 오래된 교회를 제외하고 뻔질나게 드나들던 추적의 장소들은 대부분 사라졌다.


그런데 거기 김광석이 있었다. ‘서른 즈음에’.

시간이 박제된 듯, 똑같은 자리에 같은 간판을 달고서.


출처 https://blog.naver.com/armysudo/130184237337


나는 아직 문을 열지 않아 깜깜한 창문을, 한참이나 올려다보았다. 분명 그때 그 모습 그대로였다. 고작 이십 년 밖에 안 됐는데, 그럼 뭐 벌써 망하기라도 했을 줄 알았냐고, 낡은 간판은 뚱한 표정으로 눈을 흘겼다.      


그때였다. 

어두웠던 실내에 불이 켜졌다. 창문이 열리고 누군가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열린 창으로 반짝거리는 웃음 소리가 흘러 넘쳤다. 어쩐지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그가 나에게 손을 흔든다. 푸른 웃음을 머금은 아름다운 얼굴. 그는 두 손을 동그랗게 입에 모으고, 나에게 외쳤다.      


- 그 동안 참 많이 수고했어.      


나도 그에게 화답했다. 모든 것이 찬란했던 젊은 날의 나에게.     


- 안녕...   나의 벨 에포크.  

      

이전 15화 계란이↗ 왔어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