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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도리 Sep 07. 2023

소설-데드리프트 8.

#8. 샤부샤부




샤부샤부


어릴 적 외갓집에는 사람보다 동물이 많았다. 대문 없는 농가의 마당에는 닭과 토끼와 개와 오리 그리고 큰 암소가 함께 살았다. 외할아버지는 새벽부터 일어나 이 많은 식솔들의 끼니를 챙겼다. 다른 가축들은 플라스틱 바가지로 사료를 퍼담아 뿌리거나 한쪽에 쌓아둔 잡초다발을 우리에 넣어주면 그만이었다.  


소는 공정이 복잡했다. 고무 다라이에 종일 모은 채소 찌끄러기와 잘게 썬 지푸라기를 섞어 커다란 무쇠솥에서 한참을 끓여야 여물이 완성되었다. 화력 좋은 장작불 위에서 물은 소용돌이를 만들며 기세 좋게 끓어올랐다. 불구경을 좋아하던 진은 그 아래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여물이 완성되기를 기다렸다. 할아버지가 이따금씩 아주 긴 주걱으로 여물 솥을 저을 때마다 하얀 김이 풀풀 올라왔다. 


적당히 식은 여물은 길쭉한 나무 구유에 담겼다. 뜨끈한 해장국을 닮은 그것을 소는 아주 오래도록 우물우물 씹었다. 뜨거운 김이 소의 긴 속눈썹에 방울방울 맺혔다. 소는 연신 눈물을 흘리면서도 새김질을 멈추지 않았는데 그게 눈물인지, 뜨거운 김인지 구별하기 어려워 진은 한창 식사 중인 소의 눈앞에 자신의 얼굴을 바짝 들이대고는 소의 눈망울을 살피곤 했다. 


샤브샤브는 진에게 외로운 음식이었다. 무쇠솥을 닮은 냄비에서 뒤섞인 야채가 한 데 끓고 있는 모습을 보면 자연스레 외갓집의 소여물이 생각났다. 그 해 가을 엄마는 외갓집에 진을 맡기고 돌아섰다. 한 살만 더 먹으면 초등학교에 갈 수 있다고 학교 갈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시절이었다. 일 나간 부모를 기다리며 아무도 없는 집에서 뒹굴던 일곱 살의 외로움과 권태는 아직도 진의 기억 한쪽에 붙박이 되어 있다. 동네 공터를 종일 뛰어다녀도 쉽게 저물지 않던 유년의 나날들. 학교에 가면 같이 놀 수 있는 친구들이 생길 것이고, 그들이 진의 무료함을 절반쯤 나눠 가질 것 같았다. 


과묵한 할아버지와 말 못 하는 가축들만 있는 낡은 농가에서 진은 가을과 겨울을 보냈다. 시간이 갈수록 진의 마음을 무겁게 한 것은, 엄마가 영영 돌아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상상보다, 이러다 영원히 학교에 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초조함이었다. 외갓집에서는 사방을 둘러보아도 수확이 지난 텅 빈 논밭뿐 학교 비슷하게 생긴 곳도 눈에 띄지 않았기 때문이다.  


새 학기가 시작되기 직전, 엄마는 진을 데리러 왔다. 지난가을 태어난 송아지가 겨우 어미젖을 떼자마자 팔려간 후였다. 송아지 판 돈은 진의 반지하 셋방을 구원할 동아줄이 되었다. 아빠 친구가 떠넘긴 빚 때문에 송아지는 어미와 생이별을 했다. 옆구리에 늘 붙어 있던 송아지가 서러운 소리를 내며 팔려간 이후 어미소는 한 동안 여물을 입에 대지 않았다. 진이 엄마 손을 잡고 제집으로 돌아가던 날, 어미소는 다시 하얀 김 속에서 무심히 여물을 우물거리고 있었다. 수증기가 속눈썹에 붙어 방울방울 눈물로 흘렀다. 학교에 갈 수 있게 되었는데도 어쩐지 진은 기쁘지 않았다.      




쑥갓과 목이버섯과 배추를 한꺼번에 넣어 끓이니 보얀 국물에 조금씩 시원한 맛이 뱄다. 이제 고기의 시간이다. 대패로 썰어낸 듯 동그랗게 말린 소고기를 냄비에서 흔들어 투명한 칠리소스에 찍는 순간 누군가 진에게 아는 척을 했다. 최부장이었다. 


- 오팀장 아냐? 여기서 또 보네? 오늘도 혼자 왔어? 옆에 앉아도 되나?


한꺼번에 네 가지 질문을 받고 어떤 것부터 대답해야 할지 망설이는 동안, 최부장은 비어 있던 진의 옆 자리에 가방을 내려놓는다. 주방장이 잰 손으로 최부장 앞에 화로와 야채를 세팅했다. 


- 아는 척하지 말까 망설였는데, 오늘은 왠지 누구랑 얘기가 하고 싶더라고…


회사 밖에서 만난 최부장은 사무실에서 보던 에너자이저와는 거리가 멀었다. 방전되기 직전의 배터리처럼 희미하고 아슬아슬했다. 목소리는 혼잣말을 하는 듯 우물쭈물 어눌했다. 제각기 스마트폰에 눈알을 박고 주방장을 바라보는 테이블 바에 앉아, 일 인분의 화로를 끼고 고기를 젖는 이 혼술 샤브샤브 집에 최부장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오늘 그는 다른 사람 같았다.


- 부장님은 어쩐 일이세요? 댁에는 아직 안 들어가셨어요? 근데 전에도 저 보신 적 있으세요?


진도 지지 않고 비엔나소시지처럼 이어 붙은 질문을 연달아 뱉어냈다. 


- 오팀장이 페북에 이따금 혼술집 태그 하잖아. 회사 근처에 그런 데가 있는 줄 몰랐다가 그거 보고 나도 가끔 가곤 했어. 그러다가 종종 거기서 오팀장을 보기도 했고. 지난번에 이자카야에서도 그랬고, 연탄갈빗집에서는 그날 구석 테이블에서 나도 술 먹고 있었어. 매번 혼자 술 마시던데... 혼자 술 마시러 온 사람 방해하기 싫어서 못 본 척한 거야. 근데 오늘은 왜 그런 노래 있잖아. 비도 오고 기분도 그렇고 해서… 하하


언제부터인지 밤비가 내리고 있었다.


- 오팀장은 박대리 그만두고 갑자기 잔일까지 다 처리하려니 힘들겠어. 


박대리는 헤드헌터에게 제안을 받고 경쟁사로 바로 이직했다. 한창 잘 팔릴 나이였다. 언제라도 그만둘 생각을 했던 사람처럼 깔끔하게 정돈된 인수인계 자료를 진에게 넘기고 후임자가 뽑힐 겨를도 없이 떠나가 버렸다. 덕분에 진은 오래 손 놓고 지내던 잡무와 씨름하는 중이었다. 온라인 마케팅은 하루가 다르게 정책과 기술이 바뀌어서 정신을 차리기 어려웠다. 


- 맞다. 부장님 오늘 생신 아니세요? 오전에 총무팀에서 케이크 교환권 드리러 온 것 봤는데, 오늘 같은 날은 일찍 들어가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 애도 아니고 생일은 무슨. 어차피 딸내미는 학원 갔다가 밤늦게 오고, 와이프랑은… 얘기 잘 안 해. 각자 피해 주지 않고 할 일만 열심히 하면서 사는 거지. 가족이 별 건가? 같이 살면 가족이지. 회사에서 말을 하도 많이 해서 사실 집에 가면 말하기도 싫어. 잘 됐지 뭐. 참, 오팀장 단 거 좋아하지? 우리는 먹을 사람도 없는데, 이거 오팀장 가져.


최부장이 양복 안주머니에서 베이커리 상품권을 꺼낸다. 


- 어… 선물은 제가 드려야 하는데 이렇게 받아도 될까요? 그럼 대신 술은 제가 살게요. 생일선물이라고 생각하셔도 되고요.


- 아냐. 내가 사야지 무슨… 내가 한 잔 사려고 아는 척한 거야.


- 아니에요. 비도 오고 그래서 오늘은 마침 누구한테 술 한 잔 사고 싶던 기분이었단 말이죠. 


- 아니야. 내가 살게. 내가 부장이야. 왜 이래.


진과 최부장은 각자의 앞에 놓인 작은 화로에 야채를 넣고 고기를 저으며 제 잔에 스스로 술을 따라 건배도 없이 마셨다. 입으로는 계속 내가 살게,를 주장하며 제 몫의 술잔을 기울였다. 건배가 없어도 함께 마시는 술에 여흥은 배가 되었다. 


- 진수 오빠! 내가 진수 오빠 정말 존경하는 거 아시죠? 사실 오빠만큼 회사에 몸 바쳐 일하는 사람이 어딨어요. 다들 너무 이기적이야. 다들. 뒤에서 상사 뒷다마나 까고. 정말 못됐어.  


- 내 맘 알아주는 사람은 역시 오팀장밖에 없네. 내가 오팀장 페북에 맨날 ‘좋아요’ 누르는 거 알지? 페북을 보면 그 사람 인품이 보인다잖아. 그러고 보면 오팀장은 한결같이 착하고 순수해. 열심히 살고. 어차피 직장은 맘에 맞는 사람 한두 명만 있으면 돼. 일하는 사람은 따로 있지 뭐. 난 오팀장만 믿고 일한다구. 인복이 많아. 내가.


- 고맙습니다~~ 여기서 만난 것도 인연인데 우리 건배라도 할까요?  


밤이 깊어가면서 빈 소주병은 늘어가고 진의 목소리는 볼륨을 높이다 고장 나버린 라디오처럼 점점 커졌다. 조용히 혼자 술 한잔 하러 들렀던 누군가가 진의 쩌렁쩌렁한 술주정에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섰다. 주방장이 일행으로 추정되는 최부장에게 눈치를 주기 시작했다. 최부장은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으로 진을 다독이려 하지만 소심한 그의 웅얼거림은 진의 목청에 밀려 들리지 않았다. 마침내 최부장이 체념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선다. 어차피 그의 완력으로 거구의 진을 감당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 진영 씨. 나 먼저 들어갈게. 오늘 모처럼 즐거웠어. 생일날 이렇게 누구랑 길게 해 본 것 오랜만이야. 조금 앉아 있다가 정신 들면 들어가요. 술값은 그럼 각자 냅시다. 


최부장이 가게를 나가자 진영의 난동도 멈추었다. 가게 안에는 다시 적요가 깃들었다. 고개를 떨군 채 진영은 푹 익은 야채를 건져 오래도록 우물우물 씹었다. 끓는 냄비에서 하얀 김이 올라 진영의 속눈썹에 방울이 맺혔다. 



*image=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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