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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도리 Sep 08. 2023

소설-데드리프트 9.

#9. 인바디

 



인바디     


로커를 비워야 해서 진영은 센터에 들렀다. 오늘 그녀는 데니와 마지막 상담이 있었다. 데니는 홀에서 수업 중이었다. 수업이 끝나려면 20분 정도 기다려야 했다. 데니는 초보 회원에게 열심히 스쿼트를 가르치고 있었다.  

- 회원님, 다른 곳도 다 중요하지만 특히 하체는 제일 중요해요. 하체가 튼튼해야 몸을 지탱하죠. 투명의자에 앉는다는 생각으로 엉덩이를 뒤로 빼 보세요. 회원님처럼 출산 후 칼슘이 다 빠져나가신 분들은 근육을 단련시켜서 뼈를 보호해줘야 해요. 이게 보기보다 어려운 운동인데, 정말 잘하십니다. 이해력이 좋으신 거예요. 엄마가 이렇게 똑똑하니 애기는 보나 마나 이다음에 서울대 가겠어요.


- 이제 겨우 백일 지났는데, 벌써 서울대를요? 와! 듣기만 해도 신난다.


이제 데니는 스쿼트 하는 회원의 엉덩이만 봐도 가족의 미래까지 점치는 경지에 도달했다. 산후 부기가 덜 빠진 듯한 그녀는 데니의 칭찬과는 달리 엉거주춤한 각도로 쉴 새 없이 엉덩방아를 찧고 있었다. 바라만 봐도 진영의 엉덩이에 통증이 느껴졌다. 


스쿼트는 결국 의지의 문제다. 바닥에 닿을 듯 무너져내리는 몸을 이를 악물고 다시 일으켜 세울 것인지, 아니면 아찔한 전락의 공포에 굴복한 채 그대로 포기하고 말 것인지. 모든 것은 경계선을 지나는 그 아슬아슬한 찰나에 결정된다. 그 순간 어떤 마음을 먹는지에 따라 스쿼트는 세상에서 제일 쉬운 운동도 되고, 도저히 정복할 수 없는 지옥의 미션이 되기도 한다. 


- 오래 기다리셨어요? 아쉬워요. 회원님. 좀 더 노력해 보시지 왜 …


수업을 끝낸 데니는 대기실에 앉아 있는 진영을 발견하고 붙임성 좋은 미소를 건넨다.


- 마지막으로 인바디 한번 확인해 보실게요. 결과 보시고 언제라도 마음 바뀌시면 다시 찾아 주세요. 저는 여기서 계속 기다릴 겁니다. 하하하


체중 97.3kg, 체지방률 49%. 


몸무게는 처음과 변화가 없었고, 체지방률은 조금 더 늘었다. 그가 아무리 안달을 해도, 쉽게 빠질 살이 아니라는 것을 진영은 알고 있었다. 그 살들도 나름의 역사를 지니고 유구한 세월을 진영의 일부로 살아온 것이다. 호르몬이 지방을 모으고 싶어 안달을 부리던 사춘기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인스턴트 음식을 주식으로 삼았고, 대학에 들어가서는 삼시 세 끼를 밖에서 해결했다. 빈곤한 자가 흔히 그러하듯 싸고 배부르고 기름진 음식을 골랐다. 엄마표 가정식 백반은 (당연한 얘기지만) 엄마와 함께 사는 동안만 누릴 수 있는 안락이었다. 중학교 졸업 이후 엄마와 의식주를 공유한 적 없는 진영은 엄마의 집밥에 대한 기억조차 가물가물했다. 


- 처음 오셨을 때와 거의 변화가 없네요. 오늘은 마지막이니까 제가 몇 가지 말씀을 드릴게요. 기분 나쁘셔도 참으셔야 돼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상태가 계속되면 정말 위험합니다. 몸매도 몸매지만, 정말 이러다 죽을 수도 있어요. 잠깐 쉬고 싶다고 하시니 붙잡을 수는 없는데, 꼭 다시 오셔야 합니다. 

주말 클래스도 시작하시면 좋은데… 고도비만 회원님들을 위해 따로 개설한 코스라서 제가 회원님은 꼭 함께 하고 싶었거든요. 지방을 태우는 서킷 트레이닝을 기본으로 해서 식단까지 철저히 체크하는 프로그램이에요. PT 회원은 1개월 간 무료인데, 회원님은 개인 레슨을 받으신 기록을 감안해서 특별 클래스 3개월 등록하시면 1개월 무료 관리 가능하세요. 단 이번 달 안에 등록하신다는 조건이에요. 건강도 챙기시고, 살도 빼시고, 얼른 예쁜 옷도 입으셔야죠. 


데니는 진영의 입에서 ‘꼭 다시 오겠다’는 확답을 받아내기 전까지 그녀를 놓아줄 것 같지 않은 기세였다. 데니의 말이 길어질수록 진영의 집중력은 점점 흐려졌다. 다음 타임의 레슨이 시작되자 한 무리의 트레이너가 사무실에서 쏟아져 나왔다. 회원을 향해 돌격하는 미소천사 부대처럼 모두 안면에 격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image=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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