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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도리 Sep 06. 2023

소설-데드리프트 7.

#7. 스페셜 클래스




스페셜 클래스


일요일의 센터는 한가했다. 근처 사무실의 회사원이 주고객이었기에, 주말이면 센터 이용 고객은 현저히 줄었다. 식당이든 커피숍이든 바글거리던 사람이 빠져나가 빌딩이 통째로 공동화되었다. 인근 주민으로 보이는 중년 남녀 몇 명이 트레드밀을 걷고 있었고, 주말에도 자랑을 쉴 수 없는 노익장의 장기회원들만이 간만에 넓은 홀을 독점하며 머신과 씨름하고 있었다. 주말까지 수업을 받는 사람은 정말 데니의 말처럼 특별 회원인 것이 분명했다.


데니가 말한 주말 클래스는 아직 수업 시작 전인 것 같았다. 진 외에는 PT 회원으로 보이는 사람은 눈에 띄지 않았다. 진은 홀로 몸을 풀면서 특별하다는 그 회원들을 기다리기로 한다. 처음에는 온통 힘들기만 하던 웨이트 트레이닝도 조금씩 요령을 익히자 할 만했다. 심지어 좋아하는 운동도 생겼다.


진은 데드리프트가 좋았다. 특정한 근육에 앙칼진 아픔을 선사하는 것도 아니면서, 전체적으로 몸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바벨을 케틀벨로 바꾸면 비슷한 듯, 또 색다른 맛이 났다. 관절의 어디를 고정하느냐에 따라 루마니안 데드리프트와 스티프 데드리프트는 미묘하게 당기는 근육이 달랐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근육을 이렇게 섬세하게 나누는 방식도 흥미로웠고, 어림도 없어 보이던 중량을 너끈히 들어 올리는 자신의 변화도 재미가 쏠쏠했다.  


처음에는 그냥 쇠기둥으로만 시작했다. 바벨만으로도 무게가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곧 익숙해졌다. 원반을 추가하면 첫 도전에는 깜짝 놀랄 만큼 무겁다는 기분이 들지만, 몇 번 해보면 곧 괜찮아졌다. 허리를 곧추 펴고, 아랫배에 힘을 주면 내 속에 숨어 있는 줄도 몰랐던 기운이 솟구쳤다. 그렇게 몇 세트가 지나고 손바닥에 하얗게 굳은살이 솟아날 즈음, 어느새 자신이 무시 못할 무게를 감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가슴을 짓누르는 삶의 무게도 허리를 피고, 단전에 힘을 모으면 까짓것, 던져 버리지 못할 것도 없는 법이다.


- 씨발 ‘칭공애’를 명심하란 말야.


갑자기 센터 안쪽에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데니의 것이었다.  


- 특별 클래스라더니, 저 안에도 운동하는 공간이 따로 있나?  


들고 있던 바벨을 엉커주춤 내려놓고 진은 원반을 정리한다. 사람들이 안 보인다 했더니 다들 그 안에 모여 있었나 보다. 이미 수업이 시작된 것 같았다. 데니의 음성은 다수를 향해 뭔가를 강조하는 듯 목청에 칼칼하게 날이 섰다.


- 따라 해 봐. ‘칭공애’


- 칭공애!


가르치는 소리는 데니의 것이 맞는데, 대답하는 음성은 회원들의 목소리가 아니다. 설핏 열린 문틈으로 데니의 얼굴이 보였다. 화가 난 듯 짙은 눈썹이 만드는 각이 예리했다. 데니의 앞에 ‘열중쉬어’ 자세로 늘어선 사람들은 역시 회원들이 아니었다. 루이, 지니, 캐빈 등의 이름으로 불리는 다른 트레이너와 며칠 전 새로 들어온 토니와 윌리가 그들이었다.


트레이너들은 팀을 이루어 한 센터와 외주 계약을 맺는데, 이 팀의 리더는 데니였다. 센터의 오너는 그들에게 공간을 임대해 주고, 트레이너는 공간 사용에 대한 대가로 오너와 회비를 셰어 했다. 명성이 좋은 PT 팀이 들어오면 센터의 입소문도 덩달아 좋아져서 일반 회원의 숫자도 늘어난다. 회원들이 모두 데니가 센터의 사장인 줄 아는 이유도, 사장이 데니에게 센터를 전적으로 맡기다시피 했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데니는 A급 인재였다.


- 이번 달 회원 이탈 제일 높은 새끼 누구야?


데니는 화가 난 듯했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톤과 매너에 진은 자기도 모르게 구석으로 몸을 숨긴다.


- 씨발 ‘칭공애’를 외우라고 새끼들아. 이것만 외워도 회원들이 줄을 선다고 몇 번이나 말했어. 동국이, ‘칭’이 뭐야.


- 칭찬 먼저, 지적은 나중에!


루이라 불리는 트레이너가 짙은 경상도 억양으로 소리를 질렀다.


- 그래 몇 번이나 말했어. 무조건 잘한다고 하란 말야. 입에 침이 마르게 잘한다고 하라고. 칭찬하는 데 돈 들어? 자세도 거지 같고, 성격도 지랄 맞아서 욕이 절로 나오는 회원이라도 일단 칭찬부터 하라고. 지적은 그다음이야. 그래야 기분이 좋아질 거 아냐. 기분이 좋아야 자꾸 오고 싶을 거 아냐. 몇 번이나 수업 펑크 내고도 당당한 연놈들 낯짝을 보면 차마 입이 안 떨어지겠지만, 그것도 일이라고 생각하면 어렵지 않다구. 칭찬해주고 싶은 회원한테만 칭찬하면 그게 뭐가 어려워? 그건 일도 아니야. 세상에 젤 쉬운 일이 뭔 줄 알어? 어리고 이쁘고 달라붙는 회원한테 잘해주는 거야. 니들 A급 트레이너가 수업을 잘해서 비싼 줄 알지? 회원들이 그 사람만 자꾸 원하니까 몸값이 올라가는 거라구. 눈을 부릅뜨고 칭찬할 거리를 찾는 연습을 하면 뭐라도 보이게 돼 있어. 쿨한 척, 시크한 척, 과묵한 컨셉 연출하고 싶으면 니들 여자친구 앞에서나 실컷 그렇게 해. 난 그 꼴 못 본다고 분명히 말했다.

다음으로, 진수! ‘공’은 뭐라고 했어?


캐빈이라 불리던 진수는 소리를 높여 외친다.


- 공평하게 수업한다!


- 그래. 이게 또 완전 중요한 거야. 우리 수업의 셀링 포인트는 다른 사람이랑 같이 수업을 받고도 개인 레슨을 받은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만드는 거야. 근데 내가 뭐랬지? 회원들은 모두 도둑놈 심보에 질투의 화신이다. 회원들 속은 다 똑같아. 회비는 절반밖에 안 냈지만, 나만 바라봐주길 바라는 거야. 2인분 같은 1인분 주세요, 뭐 이런 거지. 근데 회원들이 그런 기분이 들게 만들어야 다시 결재할 마음이 생기는 거야. 낸 돈보다 더 받았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게 핵심이지. 왜냐! 우리 말고도 헬스장은 거리에 널렸어. 길거리에 나가서 주변을 좀 보라고 새끼들아. 한 집 건너 하나씩은 헬스장이야. 우리는 지금 전쟁터 한가운데 있다니까.

진수! 지난주 종료 난 아줌마 회원이 그것 때문에 그만둔 거 알아, 몰라? 니가 예쁜 아가씨 회원만 챙긴다고 섭섭하대. 자기한테는 스쿼트 하라고 15분째 내팽개치고, 아가씨 회원 발목 잡고 싯업하는 거 숫자까지 세주고 그랬다며? 너 한 번만 더 이런 소리 내 귀에 들려오면 아주 죽는다. 아줌마 회원도 내는 회비는 똑같다고. 이게 미묘한 포인트인데, 회원이 두 명이면 더 못생긴 회원을 챙겨야 해. 왜냐! 못생긴 회원이 더 열등감이 많거든. 아무튼 중요한 것은 둘 중 누구도 자기가 더 손해 봤다는 생각은 들지 않도록 하라는 거야.

다음, 명철이! ‘애’는 뭐야?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토니가 대답한다.


- 애매하게 군다? 애기처럼 다룬다? 아... 뭐였더라…


- 병신아! 그러니까 외우라고. 머리 나빠서 운동한다는 소리 안 들으려면 좀 노력이라도 하란 말야. ‘애’는, 애매하게 터치한다. 다들 무슨 말인지 알겠어? 이게 제일 애매한 소리거든. 이 운동이 아주 애매한 운동이야. 가르치려면 터치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요즘 세상에 아무 생각 없이 회원들 몸에 손댔다가 잘못하면 한방에 인생 쫑날 수도 있어. 그렇다고 뒷짐 지고, 입으로만 나불나불 수업하기도 어렵잖아. 회원님, 거기 견갑골 아래 5cm 지점을 좀 더 조여 보세요. 이럴 수도 없고.

그러니까 요령이 필요해. 터치는 최대한 손끝으로 짧고 간단하게. 고수의 손길이 혈자리만 짚고 스쳐가듯 탁! 탁! 탁! 알겠어? 특히 명철이 너는 기본적으로 눈빛이 끈적끈적해. 태어나길 느끼하게 태어난 놈은 터치할 때 각별히 더 조심해야 해. 심지어 너는 그냥 쳐다보기만 했는데 회원들은 어딜 만지냐고 소리 지를 가능성도 있어.


눈썹과 입술이 두껍고 쌍꺼풀이 짙은 토니가 억울한 표정으로 울상을 짓자, 지니, 캐빈, 윌리가 킬킬거리며 명철이의 뒤통수를 한 대씩 후려친다. 에라이~ 이 끈적끈적한 새끼. 어? 너 지금 나 쳐다봤지? 꺅! 이 새끼가 어딜 만져? 토니를 놀리느라 각 잡고 서있던 대오가 순식간에 무너졌다. 데니가 박수를 치며 ‘주목’을 외치자 흐트러진 분위기가 다시 엄숙해졌다.


- 마무리 하자. 매 수업 시작 전에 마음속으로 ‘칭공애’를 외쳐라. 그게 몸에 배면 나중에는 어떤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데, 그때는 모든 회원들이 집단으로 착각에 빠지게 돼. 트레이너가 자기만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거지. 그냥 별일 없이 수업만 딱 했는데도 그렇게 되는 거야. 2인분 같은 1인분을 넘어서 김밥집에서 호텔 뷔페를 먹는 듯 횡재한 기분까지 느끼게 되면 너희들은 비로소 마성의 트레이너로 등극하게 될 거야. 너희 한 명 한 명이 하나의 브랜드가 되는 거지. 내가 너희한테 왜 굳이 영어 이름을 붙여준 줄 알아? 나중에 너희 각자가 브랜드가 됐을 때를 대비한 거야. 브랜드는 역시 영어가 제 맛 아니겠냐? 큭큭… 아무튼 내 말 명심하고, 다음 달에 회원 이탈 많은 놈은 개별 면담한다. 알겠냐?


카리스마 넘치는 데니의 호령에 모든 트레이너는 군기가 바짝 들어갔다. 데니의 일갈을 끝으로 트레이너들이 사무실에서 우르르 몰려나왔다. 그때까지 멍하니 문 앞에 서 있던 진은 꼼짝없이 데니와 마주치게 되었다. 멈칫 놀라는 듯하던 데니는 금세 미소년의 미소로 진에게 반색한다.


- 회원님 일요일인데 어쩐 일로 운동을 다 나오셨어요? 오올~ 지난번에 좀만 더 독하게 해 보자고 제가 말씀드렸는데, 진짜 독해지셨네요? 트레이너가 시키는 대로 열심히 따라주는 회원님들이 난 제일 예쁘더라. 참, 근데 어제 특별 클래스는 왜 안 나오셨어요? 바쁘셨구나. 능력 있는 사람들은 토요일에도 회사에서 막 부르더라구요. 오신다고 해서 기다렸는데, 안 오시길래 좀 섭섭했어요. 이제 운동 포기하신 줄 알고 괜히 걱정했잖아요. 다음 주에는 오실 수 있죠? 기다릴게요. 참 다음 수업 때 인바디 잴게요. 주말에 식단관리 하시라고 미리 알려드려요.


젠장, 주말은 일요일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수업은 토요일이었다. 특별 클래스가 있었던 그 토요일, 진은 다음날 만날  데니를 위해 피부 마사지샵과 네일숍을 다녀왔다. 화요일에 보자며 데니는 진의 어깨를 살짝 붙잡았다가 놓아준다.

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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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제가 너무 운동에 몸을 혹사하는 것 아니냐고 걱정해 주셨던 페친 여러분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당분간 운동을 좀 쉬려 합니다.
아주 그만두는 것은 아니고요, 숨도 고르고, 밀린 일부터 좀 처리하고 다시 도전하려구요.
뭐든 한번 빠지면 정신 못 차리는 제 집착증이 문제랍니다.
그간 칼퇴하는 부하직원 눈감아 주신 부장님께 충! 성!
덤벨에 여기저기 긁혔던 내 불쌍한 손톱에도 간만에 적선 한번 했습니다~

#완전 헛다리, #배신의 아이콘, #칭공애 아는 사람?, #거침없이 이불킥

- 그래도 도전하는 정신이 아름다워요.
- 젤네일 예뻐요.
- 이제 다시 워커홀릭으로 돌아가는 건가요?
- 그렇게 살다가 몸이 부서질 것 같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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