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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다움 Feb 28. 2024

연두부에서 무명두부로

 

OO야, 뒤에서 보니 엉덩이가 하나도 없어.
어쩜 이리 납작해. 엉덩이가 튼튼해야 건강하데.

살이 쪄도 빠져도 늘 딸을 염려하시는 엄마의 레이더 망에 볼 때마다 평평해져가는 내 엉덩이 라인이 포착되었다. 엄마의 최애 프로그램 <내 몸 사용 설명서>, <나는 몸신이다>, <건강 다큐 - 100세 인생>에서 앞다투어 '건강의 지표는 엉덩이에 있다' 혹은 '엉덩이의 비밀' 류의 방송을 본 직후가 아닐까 추측해 본다. 그러니 나의 둔부가 더 부각되어 보였겠다고.


나의 엉덩이를 안타까워하는 건, 엄마만은 아니었다. 농구, 골프, 복싱 등 운동 애호가근육량까지 타고난 남편은 내 뒷모습을 볼 때마다 근력운동을 하라고, 처진 엉덩이도 엉덩이지만 엉밑살 부근의 셀룰라이트도 심각하다며 어디가 제일 심한지 부위까지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이제 기초대사와 근육량은 줄어들일만 남았으니, 다이어트뿐만 아니라 생존을 위해서도 근력 운동은 필수라는 걸 잘 알지만 꾸준히가 안 됐다. 일단 재미가 전혀 붙으니 결심하고 런지 찔끔, 다시 결심하고 스쿼트 찔끔하다 흐지부지 되곤 했다. 플랫하다 못해 흘러내리기 직전인, 나의 엉덩이를 구출할 시간이다.




이번에는 진짜 만들어 내리라, 남편의 코를 납작하게 해 주리라, 결심하며 탄탄하고 탱글탱글한 엉덩이를 위해 매일 아침 무려 1년 넘게 힙 브리지와 힙 스쿼트 동작을 해오던 중이었다. 둘째가 불러 화장실로 가던 중 벌러덩 미끄러졌다. 살겠다는 본능은 넘어지는 순간에 머리 대신 등과 허리로 착지를 하게 만들어 주었고, 그 이후 몇 초간의 기억이 없다. 욕조에서 쓰러지는 나를 본 둘째와 소리를 듣고 달려온 첫째 행복이는 불러도 대답 없는 엄마가 죽은 줄 알고 오열까지 했다. 금요일 밤의 이 어이없는 낙상 사고에 대해 나는 '허리를 조금 다쳤다'고 생각했다. 다음 날 일어나 보니 통증도 없어 선약까지 참석했다. 분명 아침에는 괜찮았는데 조금 걷기 시작하니 아프기 시작했다. 그 길로 병원에 가서 보니, 간호사 선생님이 꼬리뼈 부근이 온통 피멍이라고 어떻게 넘어졌길래 이리 심하냐고 물어오셨다. 다행히 뼈에는 이상이 없지만 미세한 실금은 나오지 않을 수 있으니, 치료 꾸준히 받고 움직임은 최소한으로, 운동도 하지 말고 틈만 나면 누워있으라고 하셨다. 최대한 누워있기, 라니... 아이 둘에 워킹맘인 내게 매우 어려운 미션이었지만, 내 상태를 본 간호사 친구는, 조금 더 나이 들어서 이렇게 미끄러졌으면 죽을 수도 있었으니 무조건 조심하라 했다, 다친 부위는 약해져서 또 다칠 수 있다고.



일단 모든 운동을 중단했다. 아파서 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1년 넘게 해 오던 애플힙 프로젝트는 빛도 보지 못한 채... 나의 엉덩이는 다시 연두부로 전락했다.   






"OO 씨, 집안일 하나도 안 하시죠?"

"네??? 저 지금도 설거지랑 청소 싹 하고 나온 건데요."

"공주처럼 일 하나도 안 한 몸이에요, 팔이랑 허벅지에 근육이 없어요. ㅎㅎㅎ"

"무수리처럼 살고 있는데요... 근육이 안 붙어요."


꼬리뼈를 다친 이후 6개월이 넘게 운동을 쉬다 재활 겸 속근육 증진의 목적으로 필라테스를 시작했다. 매일 성실하게 해 오던 나의 '그동안의 운동들'이 무색하게 간단한 동작도 파르르 떠는 내 몸이 야속했지만, 재활이 되어야 운동도 시작할 수 있기에 열심히 필라테스 수업에 참여했다. 허리 통증은 호전되었으나 근육 증진의 효과는 여전히 미미했다. 온몸의 근육들이 자취를 감춘 듯 나는 다시 순두부의 몸이 되었다. 기초대사량도 떨어져 전보다 조금 먹어도 몸무게는 그대로였고 양껏 먹으면 한 끼에도 2kg가 금방 늘었다. 근육을 늘려야 한다. 특히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건 내전근 강화라는 선생님 덕분에 그 날이후 10분짜리 내전근 강화 운동을 2년 가까이해 오고 있다.


눈바디로는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지만 근육량이 늘었다는 수치가 확인되자 동기부여가 생겼다. 코 앞에 있어도 가지 않던 헬스장에 간다. 순전히 내 의지로. 너무 무리하면 분명 금방 지칠 테니 하루 30분, 주 3회가 일차 목표다.


많이 좋아졌다!


 


이게 진짜 되네?!
오늘도 등 쫙 펴고 운동 갈 시간이다.










* 무명두부: 단단한 두부, 콩물을 무명 자루에 넣고 짜서 굳힌 두부

* 사진 출처: Un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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