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일곱 번째 지난주
식물학에서는 뿌리와 줄기가 서로 ‘관계’를 맺는 방식에 따라 식물을 크게 두 개의 원형으로 구분한다. 하나는 수목형(arborescent) 식물이고, 다른 하나는 리좀형(rhizomatic) 식물이 그것이다. 수목형은 일반적으로 ‘나무’라고 인지된 것들임에 반해, 리좀형은 땅속 줄기식물을 말한다. 리좀형으로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 감자, 고구마, 토란, 생강, 대나무, 잔디 등이다. 리좀형은 수목형과 달리 위계가 없고 수평적이다. 또한, 중심과 주변의 구분도 없다. ¹ 그러니까, 흔히 트리구조(tree structure)를 연상하면 되는 수목형 식물이 분명한 원줄기라는 기준을 중심으로 파생하는 모습이라면, 리좀형 식물은 시작도 끝도, 중심도 경계도 없는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우리의 인생은 이 리좀형 식물을 닮았다. 생각해보라! 설령 당신이 수목형 식물의 생김과 같이 계획을 단단하게 세웠더라도, 인생은 이를 비웃으며 리좀형 식물의 모습으로 다가오지 않던가! 마침, 단 하루라는 시간 동안 rhizomatic한 우리의 시간을 담아낸 한 편의 영화가 있어 감히 추천사를 읊고자 한다.
※ 스물일곱 번째 「김태은의 지난주」에서는 영화 <최악의 하루>에 대해 다루었습니다. 이 글은 영화 <최악의 하루> 추천 글로서 스포일러를 배제하고자 하였으나, 영화에 대한 그 어떤 사전 정보도 원치 않는 분들은 읽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절대적 수치가 아닌, 마음의 비중이라는 측면에서 ‘무게’라는 개념은 옳고 그름의 문제로 치환할 수는 없다. 다만, 요즘같이 삶 자체가 무거운 세상에서 ‘가벼움’은 일정 정도의 미덕을 확보한다. 모든 것이 무겁다. 영화도 예외는 아니어서, 올해 극장가를 뒤흔든 대부분의 한국영화는 무거웠다. 그것이 좋은 영화의 척도와는 무관하게, 난해한 주제의식을 담아낸 <곡성>의 탓이건, 국뽕 논란을 파생시킨 <인천상륙작전> 때문이건, 아픈 기억을 소환한 <터널>로 인해서이건 세상의 무거움은 영화에서 그대로 재현되었다. 하지만, 오늘 추천할 <최악의 하루>는 전혀 무겁지 않다. 도리어 가볍다. 물론 이 가벼움은 경박함이나 경솔함과는 성격을 달리한다. 주인공인 은희(한예리 분)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청춘의 모습을 하고 있고, 만날 법한 거리의 남자이건, 지극히 한국적인 남자이건, 심지어 매우 우연에 의해서 만남이 이루어진 남자이건 그저 만난다. 모두 다 rhizomatic한 우리의 생에서 있음 직한 만남들이다. 그런데 이것이 전혀 문란하지 않으며, 전혀 무겁지도 않다. 심지어 제목처럼 단 ‘하루’ 동안의 일인데 말이다. 어떤가? 보고 싶지 않은가?
필자의 개인적인 애정과 무관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으나, ‘은희’ 역의 주인공 한예리의 연기는 서울 남산의 화창한 봄날과 닮았다. 잠깐씩 주인공이 찌푸릴 수밖에 없는 상황도 원거리의 미세먼지로 대응이 된다. 무엇보다, 이 영화를 추천하는 키워드로 ‘어여쁨’을 꼽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장면 장면의 우리가 잊고 있었던 이 도시 서울의 아름다움을 상기시킴에 있다. 헤매던 골목과 남산에서 내려다본 서울과 그리고 밤의 남산은 비록 일부이긴 하지만, 언제든 우리 곁에 아름다움이 있음을 확인시켜준다는 점에서 의미를 확보한다. 그리고 이것이 똑같이 서울에서의 짧은 하루를 배경으로 한 이윤기 감독의 <멋진 하루>나, 질척거리는 만남들을 담아내며 배경으로서의 서울을 소비하던 홍상수 감독의 작품들과 대비시켜 보더라도, 단지 장면의 ‘예쁨’이 아닌, 풋풋함을 동반하는 ‘어여쁨’이라 표현할 수 있음이다. 어떤가? 정말 보고 싶지 않은가?
Less is More. 장식이 적을수록 의미는 풍부해지고, 형식을 절제할수록 본질에 가까워진다는 뜻을 담는 이 짧은 격언은, 비단 발언의 주인공인 건축가 루트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나 건축이라는 분야에만 한정할 수는 없다. 근래에만 해도 스마트폰을 비롯한 각종 디자인에서 이 격언은 늘 전쟁처럼 치열하게 회자된다. 마찬가지로 ‘이야기’를 하는 이의 입장에서 가장 어려운 지점은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게 정도를 절충하여 본질적인 메시지를 전달함에 있다. 영화로 치자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100분여의 시간을 통해, 그간 고민해오던 모든 문제와 장면을 담고자 하는 욕심을 절제하고, 하고자 하는 말의 뼈대를 분명하게 해내는 일이다. 하지만 관객의 입장에서 도무지 무슨 메시지를 전하기 위함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 작품을 마주하는 경우는 부지기수다. 그 부지기수의 연출자들이 멍청해서가 아니라, 그만치 중용의 덕을 수호함이 어렵기 때문이다. 예지 하신바 대로 <최악의 하루>는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달해 내었다고 평할 참이었다. 비록 주요 메시지가 배우들의 대사라는 가장 쉬운 방식으로 전해진다는 나름의 한계가 있음에도, 앞서 언급한 가벼움과 어여쁨 속에 잘도 녹여내었다. 어떤가? 구미가 당기지 아니한가?
우리의 인생이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듯, 우리의 연애도 불가피하게 다가온다. 다가오는 것만이 아니라, 그 과정도 전혀 계획적이지가 않다. 나의 생이라는 것의 무작위성과 당신의 생이라는 것의 무작위성이 만나면, 불가피함의 정도가 기하급수로 증가하는 탓이다. 가볍다가도 이내 무거워지고, 어여쁘다가도 쉽게 거칠어지며, 분명하다가도 어느샌가 흐려지기가 다반사다. 다시 명절이다. 세상은 여전히 흐리고, 우리의 생도 불투명하다. 이런 와중에 선택하지도 않은 관계들로부터 질문이 날아들기까지 한다면, 당신에게는 무언가가 필요할 것이다. 마침 세상이 무겁고, 거칠며, 흐릿하기에, 이와 딱 반대되는 한 편의 영화 <최악의 하루>를 대놓고 권한다. 미리 예매를 해두고 고향에 다녀오는 것도 방법일 수 있겠다.
참고
¹
- 문학동네 네이버 카페, 작성자 이글이글, 게시판‘편집자의 책소개’ 중 “미국의 오피니언 리더들은 왜 그의 강의에 열광하는가?”중 내용 발췌
- cafe.naver.com/mhdn/115960
이미지 출처
커버 이미지
- 인디스페이스, “[인디즈_Review] <최악의 하루> : 거짓과 진실 사이, 그 순간순간의 감정들, 영화 <최악의 하루> 포스터”
- indiespace.kr/3068
* 및 ****
- 무비라이징, 최재필 기자, 2016년 8월 24일 자, “[최악의 하루] 리뷰: 우리에겐 사랑스러운 하루 ★★★★”
- hrising.com/movie/?mode=view&no=4738&page=3&search_type=&keyword=&sort=date
**
- 로케이션 마켓의 브런치, 2016년 8월 30일 자, “영화 <최악의 하루> 촬영지”
- brunch.co.kr/@locationmarket/47
***
- 네이버 블로그, <곰솔이의 영화연애>, 2016년 8월 21일 작성, “최악의 하루 후기, 한여름의 쌉싸름하고 달콤한 하루”
- blog.naver.com/PostView.nhn?blogId=gomsolvie&logNo=220793182064&category
No=8&parentCategoryNo=1&viewDate=¤tPage=1&postListTopCurrentPage=1&from=post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