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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은의 Beyond Insight Jul 09. 2017

비의 시

일흔 번째 지난주




비 온다.


  비 온다. 그렇게 말한다. ‘비 내린다’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주로’의 영역 안에는 ‘비 온다’가 있다. 한데 흔히 ‘온다’의 가장 주된 용례는 지면과 평행하게 이동하는 여타의 존재가 나를 향함을 이르겠다. 그런데 비는 지면에 수직으로 자유 낙하하는데도 ‘떨어진다’나 ‘내린다’가 아닌, 주로 ‘온다’라고 일컫는다. 언중은 어떤 연유로 이같이 약속하였을까?     


 ‘온다’라고 표현되는 모든 사태가 좋은 일만을 뜻하지는 않겠으나, ‘온다’에는 반가움이라는 감정이 녹아있다. 땅에서 솟구쳐 올라오는 것을 섭식해야 연명할 수 있는 인간사의 일면에 있어, 이를 돕는 비는 분명 반가움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수직적 운동을 하는 존재를 수평적으로 치환하여, 반가운 손님처럼 맞이하고픈 마음에 ‘온다’라고 표현한 것은 아니었을까? 마침 너무나도 가물었던 시간이었다. 대지는 마르다 못해 갈라지고, 잎과 농민의 마음은 함께 타들어 갔다. 이와 중에 비 온다! 반갑고도 고마웁다. 그런데 시인이라는 슬픈 천명을 지닌 사람들은 비를 온전히 반갑게만은 맞지 않는 모양이다. 어째서일까? 들여다본다.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
                                         황인숙          

비가 온다 
네게 말할 게 생겨서 기뻐.
비가 온다구!      

나는 비가 되었어요.
나는 빗방울이 되었어요. 
난 날개 달린 빗방울이 되었어요.      

나는 신나게 날아가. 
유리창을 열어둬. 
네 이마에 부딪힐 거야. 
네 눈썹에 부딪힐 거야. 
너를 흠뻑 적실 거야. 
유리창을 열어둬. 
비가 온다구!      

비가 온다구! 
나의 소중한 이여.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 

¹


 시인이 비를 반가워한다. 흔치 않다. 주로 시인이라는 이들은 비가 오는 모양새가 눈으로부터 흐르는 무언가를 닮았다거나, 그 소리가 처량하다는 이유로 슬픈 감정과 매개하는 일이 흔한 사람들인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 시인은 비를 반갑게 맞이한다. 하지만 이내 의문은 풀린다. 알고 보니 비가 왔다는 사실 그 자체보다는 ‘네게 말할 게 생겨서 기뻐’하고 있음이다. 비를 빌미로 말을 걸어볼 수 있게 되었다. 시인의 기쁜 마음이 오롯이 전해진다.


 너무나도 기쁜 시인은 아예 비가 되어버린다. 빗방울이 되어버린다. 정말이지 탁월한 변신이다. 빗방울에는 날개가 달려있어 네 곁으로 날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신나게! 창을 통해 네 이마를 향한다. 네 눈썹을 향한다. 그리고는 흠뻑 적시리라 단언한다. 그러니 부디 유리창을 열어 두라고 또 한 번 호소한다. 그러고 보니 비가 온다는 명징한 사실을 전하는 시인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반복된다. 이토록 명랑한 시인이 했던 말을 또 하는 것이 불안하다. 듣고 있다는 확신이 없는 것은 아닐까? 마침 소중한 그이는 침울하다고 한다. 이제야, 비라는 슬픈 심상을 이토록 신나게 전하려 했던 시인의 마음에 짐작이 간다. 침울한, 소중한 그대여! 비가 온다고 합니다. 비가 온다고 저렇게나 외쳐댑니다. 창은 열었습니까? 듣고는 계십니까?


*





우중야독

우중야독
                                         이용한

명백하게 지금은 비가 온다
사랑하지도 않는 당신의 안부가 궁금할 것이고,
한동안 축축할 것이다 나는
무관하게 머리를 빗고, 
'그건 불가능합니다'라는 미래에 대해 독서한다 
파본이 된 나의 39페이지는 
청계천 고서점이 문 닫은 뒤로 찾을 수 없다 
언제나 당신의 핵심은 짓밟힌 결론을 말한다 
가령, 이렇게 끝나서 다행이야 
라거나 당신은 너무 구겨져 있군, 이라고 
한 가지 분명한 건 
나를 들어앉힌 시간은 납작하고 기울어서 
당신을 엿보는 내가 기우뚱하다는 거고 
휘청이는 저녁을 멈출 수 없다는 거다 
어떤 밤을 흉터처럼 자란 정체불명의 그림자를 
힘껏 물리칠 테지만 
여기는 분명한 12시 45분이고 비가 온다. 

²     


 여기에도 비가 온다. 그리고 여기에도 비를 바라보는 시인이 있다. 당신의 안부가 궁금하기는 한데, 사랑하지는 않는단다. 음…. 믿어주기로 한다. 비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아예 맞아버렸는지, 축축해진 시인은 머리를 빗으면서도 애써 무관하다고 주지한다. 사랑하지는 않는데 말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흔히 희망을 담아 '가능'으로 읽는 미래를 ‘불가능’으로 읽는다. 마침 고서점뿐 아닌, 청계고가 하부의 시간과 함께 사라진 시인의 파본에는 39쪽이 사라져 버렸다. 아마도 그 39쪽에 '가능'에 관한 이야기가 씌어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자 가능성이 없어진 내가 아닌, 짓밟힌 결론을 말하는 당신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렇게 끝나서 다행이고, 너무 구겨져 있단다.


 사실이었다. 시인이 들여앉힌 시간은 납작하고 기울어서 시인은 꼼짝달싹 못 하고 구겨져 있다. 그러니 사랑하지는 않지만 당신을 엿보는 시인은 기우뚱해져 있고, 휘청이고 있다. 그리고 이 저녁을 멈출 수가 없다. 그렇게 구겨진 채로 있는 시인은 이제 싸운다. 흉터처럼 자라난 제 그림자와 싸운다. 시인처럼 구겨져 당신이나 엿보는 그림자가 밉다. 그림자를 힘껏 물리치다 보니, 저녁이던 시간은 자정을 지났다. 여전히 비는 오고, 사랑하지 않는다.


**





가는 비 온다      


가는 비 온다
                                         기형도  

간판들이 조금씩 젖는다
나는 어디론가 가기 위해 걷고 있는 것이 아니다 
둥글고 넓은 가로수 잎들은 떨어지고 
이런 날 동네에서는 한 소년이 죽기도 한다. 
저 식물에게 내가 그러나 해줄 수 있는 일은 없다. 
언젠가 이곳에 인질극이 있었다. 
범인은 「휴일」이라는 노래를 틀고 큰 소리로 따라 부르며 
자신의 목을 긴 유리조각으로 그었다. 
지금은 한 여자가 그 집에 산다. 
그 여자는 대단히 고집 센 거위를 기른다. 
가는 비……는 사람들의 바지를 조금 적실 뿐이다 
그렇다면 죽은 사람의 음성은 이제 누구의 것일까 
이 상점은 어쩌다 간판을 바꾸었을까 
도무지 쓸데없는 것들에 관심이 많다고 
우산을 쓴 친구들은 나에게 지적한다 
이 거리 끝에는 커다란 전당포가 있다, 주인의 얼굴은 
아무도 모른다, 사람들은 시간을 빌리러 뒤뚱뒤뚱 그곳에 간다
이를테면 빗방울과 장난을 치는 저 거위는 
식탁에 오를 나날 따위엔 관심이 없다
나는 안다, 가는 비……는 사람을 선택하지 않으며 
누구도 죽음에게 쉽사리 자수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쩌랴, 하나뿐인 입들을 막아버리는 
가는 비……오는 날, 사람들은 모두 젖은 길을 걸어야 한다

³


 목적지 없다. 걷고는 있지만 정해진 곳은 없다. 가는 비는 내리고, 간판들은 조금씩 젖고, 가로수 잎은 떨어진다. 그리고 한 소년도 떨어졌다. 떨어진 가로수 잎에나, 소년에게나 해줄 수 있는 일은 없다. 그저 걷는다. 그리고 추억에 잠기는데, 어떤 일인지 추억의 대상은 인질극이다. 범인은 「휴일」이라는 노래를 틀고 큰 소리로 따라 부르다가, 자신의 목을 긴 유리 조각으로 그었다 한다. 범인을 회상하던 의식은 인질극이 있던 집에 사는 여자가 키우는 거위에게로 옮겨간다. 거위도 범인처럼, 또 소년처럼, 곧 시간을 다 써버릴 예정이란다.


 시인 말고는 다 우산을 썼다. 어쩌다 상점이 간판을 바꾸었는지를 궁금해하자 우산 쓴 친구들로부터 타박을 받는다. 하지만 시인의 눈에는 보인다. 그리고 시인만이 안다. 굵지 않고 가는 비는 사람들의 바지를 조금 적실뿐이지만, 피할 수 없음을……. 얼굴 모를 주인이 있는 전당포에 시간을 빌리러 가는 사람들은, 결국 그 와중에 제시간을 다 써버리는 것이다. 그들은 모른다. 알 리가 없다. 누구도 죽음에게 쉽사리 자수하지 않으니까…. 그러고 보면 태어난 이후로부터 끝날 때까지는 계속 끝나는 중이다. 생은 언제 다할지 알 수 없고, 그저 가는 비에 바지가 젖는 것처럼 그렇게 서서히 멸해갈 뿐이다. 범인이 떠났고, 소년도 떠났고, 거위는 떠날 것이고 우리도 모두 떠날 것이다. 가는 비는 우산도 막을 수 없고, 결국 모두 젖은 길을 걸을 뿐이다. 그 사실을 알아버린 시인은 슬프다.


***









그래 걷자    

 

 비 온다. 반갑고 고마운 비다. 마른땅을 적시고, 갈라진 틈을 메울 것이다. 다시금 고맙다. 하지만 비의 작용은 단지 대지를 촉촉하게 하는 일에 머물지 않는다. 특히 시인에게는 결코 그럴 수 없다. 어째서일까? 하필, 비는 주로 흐린 날씨를 배경으로 삼는 탓에, 이미 세상의 채도를 반쯤은 떨어뜨린 채 온다. 그리고 내리는 모양과 특유의 소리로 인해, 감수성이라는 것이 하나의 성질이 아니라 인간 그 자체가 되어버린 존재들을 부단하게도 자극해온다. 그러자 비 소식을 전하고픈, 비를 보는 척하며 당신을 엿보는, 그리고 가는 비를 맞으며 어떤 끝을 생각하는 시인은 비를 보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나 보다.     


 그래서 비를 사랑한다. 나보다 더 섬세한 이들이 비를 통해, 혹은 비에 숨어 전하는 언어들을 사랑한다. 특유의 자연 현상에 맞는 특유의 감정을 사랑하는 탓이다. 물론 다소 침울하고 무거운 시어들이나, 이 또한 우리네 삶의 일부이고 비는 언제나 올 것이며, 가는 비는 못 피한다. 그저 걸어본다. 발길 닿는 대로 빗물에 마음을 쓸어버리자. 한없이 정처 없이 떠돌아 빗물에 떠다녀보자. 비 온다. 


그래 걷자
                                         김창완

그래 걷자 발길 닿는 대로 빗물에 쓸어버리자 이 마음
한없이 정처 없이 떠돌아 빗물에 떠다―니누나 이 마음
조그만 곰인형이 웃네
밤늦은 가게 불이 웃네
끌러버린 가방 속처럼 너절한 옛일을 난 못 잊어하네―

그래 걷자 발길 닿는 대로 빗물에 쓸어버리자 이 마음
한없이 정처 없이 떠돌아 빗물에 떠다니누나 이 마음
지나치는 사람들은 몰라
외로운 가로등도 몰라
한꺼번에 피어버린 꽃밭처럼 어지러운 그 옛일을 몰라

그래 걷자 발길 닿는 대로 빗물에 쓸어버리자 이 마음
한없이 정처 없이 떠돌아 빗물에 떠다니누나 이 마음


****


참고

¹

 - 황인숙,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 문학과 지성사, 1998     

²

 - 이용한, 『안녕, 후두둑 씨』, 실천문학사, 2006     


³

 - 기형도, 『입 속의 검은 잎』, 문학과 지성사, 1989     


 - 김창완 1집, 『기타가 있는 수필』, Universal, 1983           


    

이미지 출처

커버 이미지

 - 게이머 라이프, 2017년 5월 29일 자 게시글, “2017년 장마기간은 언제일까”

 - hungrylab.tistory.com/88     


*

 - full moon in rainy day, 2013년 4월 6일 자 게시글, “모처럼의 쉬는날, 비가오다.”

 - fullmooninrainy.tistory.com/entry/모처럼의-쉬는날-비가오다     


**

 - ppt backgrounds, 2013년 3월 28일, “Woman In The Rain Backgrounds for PowerPoint Template”

 - pptbackgrounds.org/woman-in-the-rain-backgrounds.html     


***

 - 에너지 경제신문, 온라인 뉴스팀, 2015년 11월 8일 자, “[내일의 날씨/9일] 전국 가을비 계속…낮에 대부분 그쳐, 추위에 ‘감기 조심’”

 - ekn.kr/news/article.html?no=180356     


****

 - verywell, Wendy Bumgardner, 2016년 9월 4일 자, “How to Walk in the Rain”

 - verywell.com/how-to-walk-in-the-rain-3433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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