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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은의 Beyond Insight Aug 20. 2017

김종관적 허용 _ 영화 <더 테이블> 리뷰

일흔여섯 번째 지난주




카페라는 공간


 공간은 힘이 세다. 들어선 자는 어김없이 종속된다. 발들인 곳, 몸 기댄 자리의 생김에 따라 나의 자세와 언어가 교정된다. 집에서의 나와 회사 사무실에서의 나는 다른 모양을 하고 있다. 물론 사무실에서의 내가 더 정돈되어있다. 집에서의 몸은 너무 널브러져 버리는데, 이렇게 되면 읽기와 쓰기가 지속력을 잃는다. 사무실에서의 나는 너무 딱딱해져 버리는데, 이리되면 정해진 일만을 할 수 있다. 말투도 군대식이 되어버리는데, 뱉을 적마다의 내가 나도 참 우습다.


 ‘제3의 공간(The Third Place)’이라고 했단다. 집이나 직장과 같은 ‘공’과 ‘사’의 공간이 아닌, 개개인이 자발적이고 비공식적으로 행복을 기대하며 모이는 커뮤니티 공간을 미국의 사회학자 레이 올덴버그(Ray Oldenburg)는 그리 불렀다고 전해 들었다. ¹ 가장 대표적인 예로 카페가 손꼽힌다. 단지 쉬기 위해, 작업이나 공부를 하기 위해, 그리고 누군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눌 목적으로 우리는 카페에 간다. 이 카페의 활용 방식 중에서도 ‘만남’이 가장 ‘제3의 공간’의 정의에 부합하기는 한다. ‘커뮤니티 공간’으로 카페가 작동하는 탓이다. 이 지점에서 카페는 우리를 너무 놓지도, 잡지도 않는 상태로 타인과 매개한다. 이 장면은 사소하기 이를 데 없으나, 명백히 우리의 주된 모습과는 다르다. 그리하여 의미의 정도를 떠나, 흥미롭다. 마침 이 장면들을 영화로 묶었다 한다. 감이 잘 안 온다. 영화를 봐야겠다.



 - 일흔여섯 번째 「김태은의 지난주」에서는 영화 <더 테이블>에 관해 다루었습니다.

 - 영화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아직 개봉 전인 좋은 작품을 브런치 무비패스를 통해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첫 번째 테이블 _ 유진, 오전 열한 시


 옛 사진은 바래어있다. 옛 기억도 바랬으면 좋겠는데, 그것이 사진이 바래는 속도만큼은 아닌지, 굳이 옛사람을 만나고는 한다. 비슷한 궤적 안에 있던 예전의 연인은 각자 제법 먼 곳에 있다. 그런데 이 중 한쪽의 성숙도가 영 미진하다. 역시나 남성이다. 성별을 차치하고서라도, 더는 예전의 연인이 아닌 스타로서만 유진(정유미 분)을 바라보는 창석(정준원 분)은 그들이 나누었던 추억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그저 유진의 변화와 뜬소문들에 집착한다. 더군다나 창석은 유진과의 인연을 자랑하기 위해 직장 동료에게 알려 이 만남을 엿보게까지 한다. 한 번쯤 잘 만났다. 이제 아예 연락처를 지워버려도 좋겠다.


* 영화 <더 테이블> 스틸컷


 평일로 짐작되는 한가한 카페의 오전에는 조용한 만남이 이루어진다. 그리하여 이 시간대의 만남에는 진행 중인 그것보다는 오랜만이라 다소 어색한 자리의 그것이 더 어울리겠다. 오랜만의 만남에서 나눌 수 있는 이야기는 ‘추억’과 ‘변화’이다. ‘추억’은 ‘그때의 우리’를 ‘변화’는 ‘그 이후의 우리’를 소환한다. 무엇이 더 좋은 소재라고 단정할 수는 없으나, 유진과 창석의 만남처럼 일방의 변화폭이 큰 경우에 ‘변화’를 택하게 되면, 이야기가 한쪽으로 치우친다. 두 사람 모두에 대한 예의로 이 경우에는 ‘추억’이 더 적합하겠다. 하지만 기어이 ‘변화’에만 관심을 두는 창석은 오랜만의 값진 만남을 스스로 내던진다. 이 만남을 통해 더 ‘변화’한 쪽은 또 유진이다. 분명 예전에 무엇이 그리 좋았던지를 되물었을 것이고, “아차!”하고는 저만치 달아났을 것이기 때문이다.


** 영화 <더 테이블> 스틸컷





두 번째 테이블 _ 경진, 오후 두 시 반


 대화할 적에 상대방의 눈을 바라봄이 어려운 사람이 있다. 그리고 상대에 따라 그것이 잘 안 되기도 한다. 경진(정은채 분)은 민호(전성우 분)를 대하며 좀처럼 민호의 눈을 바라보지 못한다. 혹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 둘 사이에는 관계에 대한 ‘신뢰’라는 것이 형성되지 않았다. 정확히는 형성될 틈이 없었다. 짧은 만남 뒤에 훌쩍, 그것도 한참이나 멀리 오랫동안 떠나버린 민호에 대해 경진은 ‘신뢰’는커녕, 내내 못마땅하다. 민호는 이런 경진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신의 이야기에 열심이다. 미래에 관한 확신은 없지만, 자신은 있는 것처럼 말한다. 좀처럼 ‘신뢰’가 쌓이지 않는다. 그때 민호가 선물 보따리를 푼다.


*** 영화 <더 테이블> 스틸컷


 경진도 이 관계가 지속적인 만남으로 ‘신뢰’를 쌓아 완성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님은 잘 알고 있다. 단지 그 하룻밤이 그 하룻밤으로 그쳐버렸는지, 다른 밤들을 염두 해도 좋은지의 ‘신뢰’만 있으면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민호는 그저 훌쩍 떠났고, 어디서 무엇을 보고 들었다는 엽서 한 장이 없었다. ‘신뢰’라는 것을 아예 저버리려던 차에, 여행지 곳곳에서 경진을 위해 산 선물들이 쏟아진다. 그것은 여행 내내 민호가 경진을 생각했음을 보여주는 도구로 기능한다. 경진의 마음은 금세 풀린다. 물론 이 지점에서 경진이 민호에게 기대한 ‘신뢰’의 정도와 관객이 짐작한 ‘신뢰’의 정도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경우에 따라, 당황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뭐 어쩌랴, 세상에는 다양한 만남이 있고, 그중 하나를 뚝 잘라 보여주는 일이 이 영화의 일인 것을….


**** 영화 <더 테이블> 스틸컷





세 번째 테이블 _ 은희, 오후 다섯 시


 모든 대화에는 ‘거짓’이 동반된다. 그리고 어떤 대화는 큰 ‘거짓’을 전제로 하고, 이를 위한 모의의 장이 되기도 한다. 은희(한예리 분)와 숙자(김혜옥 분)는 ‘거짓’ 결혼식을 계획한다. 그런데 이 결혼이 오롯이 ‘거짓’인가 하면, 그렇지가 않다. 은희는 이번에야말로 ‘진실’된 결혼을 꿈꾼다. 이 선언을 곧이곧대로 믿는다 해도, 은희의 직업적 결혼 행각(?)의 습성이 발현되지 않을지는 -적어도- 이 대화만으로는 확신할 수 없다. 다만, 은희와 숙자 간에 서로의 공허한 지점을 메워주는 감정의 부유는 은희의 이번 결혼이야말로 ‘진실’에 가까우리라는 -혹은 가깝기를 바라는- 예상을 가능케 한다.


***** 영화 <더 테이블> 스틸컷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아서, 온전히 ‘거짓’이거나 ‘진실’이기만 한 사람도 관계도 없겠다. ‘거짓’만으로 만남을 이어가던 은희가 ‘진실’한 상대를 만나거나, 또한 ‘거짓’으로 수익을 얻는 숙자가 ‘거짓’을 논하는 자리에서 은희에게 ‘진실’에 가까운 마음을 품게 되는 작동이 바로 이를 대변한다. 사회가 강요하는 형식적인 만남을 재현하기 위한 ‘거짓’ 속에서 힘겹게 피어난 ‘진실’을 엿본다. 그리고 카페를 나섰을 때, 이 진실된 마음이 더 커질 수 있기를 바라본다.


****** 영화 <더 테이블> 스틸컷





네 번째 테이블 _ 혜경, 저녁 아홉 시


 밤의 카페는 낮과는 달라서, 늘어난 선택지와 경쟁해야 한다. 바로 술이다. 유진과 창석의 만남에서 창석이 맥주를 들기는 하였으나, 밤에는 사정이 완전히 다르다. 저녁 식사 이후에 술을 관계의 윤활유로 삼고자 하는 사람들은 흔히 술을 파는 식당이나 전문 주점으로 향한다. 대화의 농밀함 정도로 따지자면 술을 놓고 이야기함이 더 어울릴법한 혜경(임수정 분)과 운철(연우진 분)의 만남은 식어버린 커피와 남겨진 홍차가 술을 대신한다. 이 대화는 위태롭다. 누구 하나 감정의 끈을 조금만 더 세게 조여도 다른 관계는 파탄에 이른다. 여기에 커피나 차가 아닌 술이 개입한다면 그 불상사는 차마 상상하기도 버겁다.


******* 영화 <더 테이블> 스틸컷


 관계를 위하여는 ‘절제’도 필요한 덕목일지다. 운철은 식어버린 커피로 몇 번이고 올라오는 승낙의 마음을 식힌다. 거듭된 차가운 반응에 혜경은 “왜 마음 가는 길이랑 사람 가는 길이 달라지는 건지 모르겠어”라며 자신의 선택이 불가항력적인 것이었음을 되뇐다. 하지만 운철은 끝까지 힘겹게나마 ‘절제’한다. 홍차는 반복적으로 마음을 우려내지만, 식은 커피는 다시 따뜻해질 수 없었나 보다. 마음 가는 길과 달리 간 카페의 그 밤은 두 사람에게 어떤 미래를 선사할까? ‘절제’함은 오롯이 미덕일까? 긴 하루를 보낸 테이블은 내일 다시 새로운 관계들을 만날 준비를 한다.


******** 영화 <더 테이블> 스틸컷










김종관적 허용


 “이번 작품은 짧은 글로 여러 삶을 보여주던 단편소설을 좋아하는 내 취향들이 반영된 작업이다. 하지만 짧은 이야기들을 지속해서 만들며 창작적인 평가를 받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몇 년간 장편영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짧은 이야기를 만드는 작업을 자연스레 지양하게 되었다. 그렇게 하나의 장편을 개봉하고 또 차기 작업을 진행하면서 느낀, 취향에 대한 갈증으로 '더 테이블' 속 이야기들을 구상하게 되었다”

- 김종관 감독 인터뷰 중 ²


 그렇다. 짧은 이야기들을 지속해서 만들며 창작적인 평가를 받는 것은 어려운 일일 게다. 하지만 김종관이라면 이야기가 좀 다르다. 2001년 단편 '거리 이야기' 이후 세상에 정유미를 실어다 준 '폴라로이드 작동법', 그리고 '낙원', '드라이버', '엄마 찾아 삼만리' 등 다수의 단편 작업을 통해, 짧지만 탁월하게 단면을 포착하는 힘을 보여준 바 있는 그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장편 영화 연출자가 되기 위한 단계 차원에서의 습작이 아닌, 진짜 단거리 주자의 명쾌한 주법은 그를 통해서가 아니면 쉽사리 만날 수가 없다. 물론 전작이자 장편이었던 <최악의 하루>를 통해 이전보다 긴 호흡으로 이야기를 엮는 방식에서도 빛을 발하였으나, 우리는 김종관으로 하여금 그만의 주법에 대한 기대를 쉽게 놓아버릴 수가 없음이다. 그는 자신의 취향 탓으로 돌렸지만, 이는 곧 관객의 바람 때문이기도 하다는 추측은 위와 같은 배경 사실로부터 힘을 얻는다.


 동시에 그 나름의 위기의식도 엿보인다. 어쩔 수 없이 상업영화에서 요구되는 물리적 분량이 얼추 정해져 있고, 이처럼 새로운 방식으로 대응함이 지속 가능할 수 없음은 그 누구보다도 스스로가 잘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더 테이블>을 보고 “이게 영화냐?”라고 반문함직도 하다. 하지만 우리가 마주하는 일상의 장면들은 하늘에서 내려다보듯 잘 짜인 한 편의 이야기가 아닌, 잠깐씩 마주하는 타인과 관계의 단면들이 그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 단면들을 들여다보사유를 확대해나가는 시도 또한 엄연히 영화의 일에 속한다. 그리하여 그 일을 하자면 그 적임자로 김종관을 찾음이 가장 수월하겠다. <더 테이블>만 하더라도, 김종관이라면 <더 테이블>과 같은 영화를 내어놓아도 된다는 무언의 승낙을 받아내었기에 가능했다고 확신한다. 이른바 이를 ‘김종관적 허용’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가끔이라도 이 ‘김종관적 허용’을 통해, 나와 내 이웃의 사소함을 소품처럼 곁에 둘 수 있기를 바라본다.


********* 영화 <더 테이블>을 연출한 김종관 감독





참고

¹

 - 로목단, 이인희, “'제3의 공간‘에서 커뮤니티와 공간형태의 연계성”, 2016년 대한건축학회 추계학술대회 논문집, 제36권 제3호(통권 제66집), 2016, p.275


²

 - JTBC 뉴스, 조연경 기자, 2017년 8월 16일 자, “'더 테이블' 김종관 감독 "女중심 작품 투자 안돼… 위기감 느꼈다"”

 - 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1508124



이미지 출처

커버 이미지 및 * ~ ********

 - 다음 영화, 영화 <더 테이블> 포토

 - http://movie.daum.net/moviedb/photoviewer?id=106296#1131359/PhotoL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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