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라이트, 퇴사하다
오늘부로 지난 일 년 반 넘게 일해 왔던 직장에 마침표를 찍었다. 사실 떠들썩하게 떠나고 싶진 않았기에 모든 사람들에게 퇴사 여부를 공개하진 않았던 터라, 마침 일하던 직장 동료 몇몇에게만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고 털어놓았다. 그 중 최근 입사하신 65세(라고 하면 많아보이지만 엄청 패셔너블하시고 나보다 파이팅 넘치시는)의 동료는 그 말을 듣자마자 눈물을 왈칵 쏟아냈다. 게자리라서 그런지 원래 이렇게 태어난 건지 모르겠지만, 평소 감수성이 풍부한 나 역시 그런 동료의 모습을 보면서 눈물을 한 방울 씩 훔쳐낼 수 밖에 없었다.
맡은 바 임무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후련하기 보다 왠지 모를 텁텁함마저 느껴졌다. 어둑 어둑해 진 저녁, 홀로 자축의 의미로 맥주나 한 잔할까... 하는 생각이 드는 찰나, 나의 발걸음은 생각보다 빠르게, 술을 파는 가게로 향하고 있었다. 주거하는 아파트 1층에 술을 파는 가게가 존재한다는 것은 참으로 위험하고도 편리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오늘의 축하 맥주는 라거(Lager)와 페일 에일(Pale Ale)의 중간 쯤인 33 Acres of Life로 정했다.
밴쿠버에서 가장 좋아하는 소규모 맥주 양조장인 33 Acres Brewing Company는 디자인을 공부한 이에게 매혹적일 수 밖에 없는 곳이다. 다른 것을 떠나서 맥주 맛이 일품인 것은 차치하더라도, 심플하고 간결한 맥주 병 및 인테리어 디자인, 그들이 운영하는 소셜 미디어를 볼 때면 항상 아이디어에 감탄하게 된다.
집에 돌아와 33 Acres of Life로 한 모금을 축인 후 나는, '아, 맥주가 이토록 달달했던가' 하며 세 병 째 혼술을 즐기고 있다. 퇴사 한 날이라 그런지, 맥주가 더욱 더 달달하게 느껴지는 밤이다. 이 정도 속도라면, 오늘 저녁 나 홀로, 여섯 병 정도쯤 거뜬히 마셔 줄 수 있을 것 같다. 요가와 다이어트는 내일부터라며, 오늘만큼은 이 달달한 맥주 한 모금 모금을 만끽해보자 한다. 지금껏 열심히 견뎌 온 나를 위로하면서, 앞으로 다가올 날들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밴쿠버에 오면 한 번쯤 들러보기를 강력히 추천하는 바이다.
33 Acres Brewing Company
위치: 15 W. 8th Ave, Vancou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