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처럼 내게 다가온 도시, 밴쿠버
때는 2007년 4월, 서울에서 공부와 알바를 병행하느라 쉴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다가 잠깐 짬을 내어 나의 고향 창원에 내려왔다. 오랜만에 가져보는 여유로움을 만끽하며 봄 햇살이 따뜻하게 비치는 창가 옆에서 신문을 보던 중, 신문 모퉁이에 있는 작은 광고 하나가 눈에 띄었다. ‘캐나다 유학 박람회: (부산의 코엑스인) 벡스코에서 열리는 대규모 행사’라는 광고였다.
2007년 겨울 방학인 1-2월에 호주 멜버른으로 짧게 학교 전공 프로그램을 통해 교환학생을 다녀온 터라 영어에 나름 자신감이 붙어있었던 나는 그냥 재밌는 구경을 하려는 가벼운 마음으로 마실 나가듯 부산으로 향했다. 벡스코 행사장 안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부스 속에서 자신이 소속되어 있는 학교를 홍보하느라 여념 없이 바쁜 사람들로 활기를 띠고 있었다.
나의 발길이 멈춘 한 부스 속의 상담사와 어찌어찌해서 영어로 이야기를 나누게 됐는데, 피터 (Peter) 라며 자신을 소개한 이 사람은 나름 ‘영어 좀 한다' 기고만장했던 나의 기를 완전히 죽여놓았다. 캐나다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국계 캐나다인이기에 완벽하고 고급진 영어를 구사하는 그에 비해, 토종 한국인이며 공립학교의 주입식 영어 교육을 받아 온 나의 영어 실력은 어쩌면 당연하게도 부족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비록 나의 자존심은 종이처럼 구겨졌지만, ‘그가 대표하는 학교의 프로그램을 들으면 나도 그처럼 영어를 잘하게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일종의 도전 의식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토플 영어 점수가 없이도 ESL (English as a Second Language) 프로그램을 3개월 동안 듣고 나면 정식으로 대학교에서 내가 공부하고 싶은 프로그램을 공부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들으니 나는 이미 그의 상술에 넘어가 영업이 되어 버린 상태였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 그가 홍보하는 캐나다 밴쿠버에 있는 학교에 영업 및 마케팅 (Sales & Marketing) 프로그램 입학 원서를 작성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