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EYUNIQUE Nov 01. 2020

영어 공부와 도시 이동

운명처럼 내게 다가온 도시, 밴쿠버



 학교는 월요일부터 금요일, 아침 8시 반부터 3시까지였고, 한 주의 마지막인 금요일은 방과 후 활동을 하는 프로그램으로 짜여 있었다. 인종 및 지역, 문화적 유사성 때문인지 남미 애들 보다 일본 아이들 및 극소수의 한국 사람들과 자연스레 친분을 맺게 되었다. 하지만 영어를 배우려는 목표를 가지고 캐나다로 가지고 왔기에, 당시 좋아하며 항상 즐겨보던 예능 프로그램인 ‘무한도전'과 한국 드라마도 모두 끊고, 독하다는 말을 들으면서 한국 사람들과도 한국말을 쓰지 않고 영어로만 대화하려 노력했다. 학교에서 하루 종일 영어를 말하고 듣고, 집에 와서는 ‘그래머 인 유즈(Grammar in Use)' 책을 통해 발음, 억양, 문법과 쓰기를 공부하며 학교에서 들은 모르는 단어가 있으면 단어장에 적어서 문장으로 써보는 식으로 복습을 하며 오로지 영어 공부에만 매달렸다.     



 그렇게 영어만 쓰는 환경 안에서 열심히 노력하다 보니 영어 실력은 빠른 속도로 발전해나갔고, 어느새 한 달이라는 시간이 눈코 틀새 없이 지나갔다. 선생님들이 다른 학생들은 보통 한 달이 지나면 레벨업을 한다고 하면서 나에게 ‘레벨 4로 업그레이드를 할 때가 한참 지나지 않았냐’, ‘왜 아직도 안 했냐’며 물어왔다. 하지만 새로 배정된 반 선생님의 수업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던 나는 다른 반으로 업그레이드해야 할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더군다나 레벨 4 클래스를 가르치는 선생님의 평판이 그다지 좋지 않은 상태였기에 “지금 배우고 있는 교과서의 진도를 다 떼고 나서 올라가겠다”는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둘러대며 기존의 선생님 반에서 학업을 계속해나갔다.  



 그렇게 ESL에 등록한 3개월 중 2개월이 끝나갈 즈음, 홈스테이 옆 방에 지내던 일본 친구가 소개해 준 언니가 같이 미국 서부 여행을 가지 않겠냐는 제안을 해 왔다. 샌디에고(San Diego)부터 시작하여 엘에이(LA), 라스베가스(Las Vegas), 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까지 들러서 밴쿠버로 다시 돌아오는 2주 간의 빠듯한 로드트립의 일정이었다. 여행을 가게 될 동안 학교를 빠질 수 밖에 없었기에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여행 후 ESL 클래스로 레벨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이 가르치고 있는 비즈니스 클래스로 갈아타도 되겠느냐”라고 물었다. 나의 영어 실력을 잘 알고 있었던 선생님은 “당연하지"라며 흔쾌히 나의 월반을 허락해주었다. 사실 비즈니스 클래스는 레벨 5 이상의 학생들만 수강 가능한데, 나는 레벨 4 단계를 뛰어넘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밴쿠버 사립학교 어학원에서 ESL(English as a Second Language) 프로그램 레벨 3에서 2개월, 나머지 1개월 동안의 비즈니스 과정을 마친 후, 드디어 실전으로 ‘영업 & 마케팅(Sales & Marketing)’ 과정을 공부할 때가 왔다. 오랫동안 고심한 결과, 남은 몇 개월 동안의 공부는 밴쿠버가 아닌 빅토리아에 있는 캠퍼스에서 하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귀찮게 도시 이동을 할 필요 없이 몸과 마음 편히 밴쿠버에서 1년 동안 쭉 있을 수도 있었지만 캐나다에 있는 시간 동안 가능한 많은 곳에서 살아보고, 경험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빅토리아는 밴쿠버 섬에 위치한 가장 큰 도시이자 브리티시 컬럼비아(British Columbia)의 주도(capital)로, 밴쿠버 다운타운에서 약 30분 정도 운전해서 1시간 반 정도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지만 옛 유럽 이민자들이 들여온 옛 건축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어 아기자기한 맛이 있는 도시였다. 또한 밴쿠버에 비해 도시 크기 및 인구 규모가 적은 편이고, 페리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인지 한국 사람들이 많지 않았기에 영어를 공부하기에 더 적합한 환경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새롭게 빅토리아라는 도시에서 학교 생활을 시작했다. 영어 수업이 아닌, 전공 과정이라 그런지 같이 수업을 듣는 이들은 대부분 캐나다 사람들이었다. 비교적 짧은 시간에 교육 과정을 끝마치고 직업 전선으로 바로 뛰어들 수 있는 직업 전문 학교이기에 대다수의 사람들이 기존의 커리어를 변경하고자 다시 배움을 계속하러 오는 3~50대 학생들이었고, 간간히 6~70대로 보이는 학생들도 있었다. 이는 나에게 일종의 신선한 문화적 충격을 주기도 했다. ‘나이’로 많은 것을 판단 내리는 한국 사회와 문화를 접하며 자라 온 나에게 60살이 넘어 희끗한 머리색을 가지신 어르신들이 나이, 성별, 지위를 불문하고 열성적으로 공부를 하는 모습이 남다르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전 03화 눈물 닦고, 밴쿠버에서의 적응 시작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