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온 한국
아직도 기억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 해야 했던 숙제 중 하나로 ‘느낌장'이라는 게 있었다. 평범한 노트에 그 당시 감명 깊게 본 영화나 책 등에 대한 감상을 기록하는 일종의 수기로 만든 책이었는데, 국어 선생님께서 나의 느낌장을 채택해 주신 덕분에 우리 반 전체를 대표하여 내 작품이 전시가 된 적이 있다. 언니와 남동생 중간에 낀 샌드위치로 태어나 외부의 칭찬에 항상 메말라 있던 나는, 국어 선생님께서 “글을 쓰는 재능이 있다"고 해주신 그 순간부터, ‘작가'가 되야겠다는 야심찬 꿈을 꾸게 되었고, 서울에서 '국어국문학과'로 유명한 대학교 중 한 곳에 입학할 목표를 향해 대학 진학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가장 친한 친구가 YMCA에서 영상을 제작하는 것을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해왔다. 그 때 친구들과 함께 시나리오 작업부터 시작해서 영화 촬영 및 편집을 한 후 지도해주시는 선생님의 추천을 받아 청소년 영화제에 출품을 했는데, 우리 작품이 영화제의 한 카테고리에 선정되는 영광까지 얻을 수 있었다. 지금 들어도 낯선, ‘시네마테크’라는 극장에서 영화제가 진행되어 학교까지 빠지고 창원에서 서울까지 버스를 타고 올라가 이벤트에 참석했다. ‘소녀의 향기'라는 고등학교 2학년 여학생이 겨드랑이 땀냄새로 괴로워하는(?) 키치한 영화 컨셉임에도 불구하고, 상영 당시 깨알같은 웃음보를 터뜨리는 꽤나 좋은 반응을 얻었다. 비록 상을 받진 못했지만, 이 영화를 제작한 이후 영상 편집에 재미를 붙여 국어국문학과가 아닌 영화 제작을 공부할 수 있는 언론정보학과 전공으로 노선을 바꿔타게 되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는 친구와 일주일에 다섯 번을 쇼핑을 하러 다녔지만, 고3 때 정신을 차리고 16시간 씩 공부한 결과, 운이 좋게도 가고 싶었던 학교 및 학과에 진학을 할 수 있었다. 대학교에서 2학년 2학기까지 영상, 광고 및 연기 등 다양한 학회 및 대외 활동을 하다가 휴학을 해 놓은 상태에서 캐나다로 왔기 때문에 한국에 오자마자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바로 복학 신청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원했었으면 휴학을 더 연장할 수도 있었지만 학교를 가능한 한 빨리 졸업하고, 얼른 다시 캐나다로 다시 돌아가야겠다는 목표를 잡았기 때문이었다.
캐나다에 다시 돌아와 패션계에 일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한국에서 패션을 미리 공부하고 가겠다는 마음으로, 복학 신청 동시에 바로 패션 디자인 부전공을 신청했다. 당시 신문방송학과와 영상정보학과를 복수 전공하고 있던 터라 학점이 부족한 관계로 패션 디자인을 부전공으로 돌릴 수밖에 없었지만, 반드시 들어야만 했던 필수 과목들 중 ‘패션의 역사’에 대한 과목과 ‘패션 마케팅’ 및 ‘머천다이징’ 등의 이론 수업을 통해 패션 전반에 대한 기본적 지식을 습득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