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난 밴쿠버, 패션계에서 자리 잡기
그렇게 3개월 동안을 마케팅 부서의 인턴으로 열심히 일한 결과, 브랜드의 오너와 총괄이사 및 마케팅 매니저가 함께 하는 미팅에서, 나를 마케팅 부서의 정직원으로 채용하겠다는 정식 오퍼를 받게 되었다. 당시 영주권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태였기 때문에 중국계 패션 회사인 JNBY라는 브랜드에서 파트타임으로 세컨드 잡을 구해서 일을 시작하려고 하던 참이었다. 워킹홀리데이 신분으로 일하고 있던 나의 사정을 잘 알고 있었던 회사는 내게 영주권 지원을 해주겠노라 약속해주었고, 드디어 걱정했던 비자 문제를 해결해주겠다는 회사에 감사한 마음을 갖고 헌신하기로 마음을 잡고 JNBY를 그만뒀다.
시즌제로 돌아가는 패션계는 항상 6개월을 앞서 나가기 때문에, 봄에 가을/겨울 컬렉션을 소개하는 파티를 여는 것부터 시작해서, 연중 이벤트인 컬렉션 쇼핑 파티 및 봄/여름 컬렉션 패션쇼 등 여러 마케팅 행사들로 늘 정신없이 바쁜 시간들을 보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이 회사에 나의 열정을 불태웠다.
그렇게 이 회사에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부은 지 어느덧 10개월이 지났다. 워킹홀리데이로 주어진 1년의 시간 중 10개월을 이 회사에 헌신한 것이다. 어느 날, 마케팅 매니저가 미팅룸으로 나를 불러냈다.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 있던 그녀는 갑자기 내게 “I am so sorry to say this to you, but we will have to let you go.”라며 내게 얘길 해 왔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일인지 얼떨떨했다.
“렛 미 고?”
‘나 지금 해고당한 건가?’
마치 둔탁한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미팅 룸에서 나와서 내가 일하던 컴퓨터가 있던 오피스로 돌아와, 나의 물건들을 정리하는 중에도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었다.
‘내게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도대체 내가 뭘 잘못한 건가?’
책상의 짐을 챙겨 회사 밖으로 나오니 제대로 된 현타가 와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남자 친구에게 전화를 해 자초지종을 설명하는 동안에도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그가 나를 데리러 와서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아이처럼 엉엉 울며 집에 도착했다. 너무 억울했다. 나는 최선을 다했고,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한 게 아무것도 없었다. 하나 잘못한 게 있다면, 이 회사에 헌신적으로 열정을 쏟아부은 것뿐이었다. 너무나도 갑자기 일어난 일에 어안이 벙벙해서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다.
워킹홀리데이의 1년 중 10개월을 바친 이 회사가 나의 뒤통수를 이렇게 제대로 때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럴 줄 알았으면 JNBY를 그만두지 말고 계속 일했었으면 좋았을 걸. 2개월 남짓 남은 비자로 일을 구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에 잠도 오지 않았다.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운 채 며칠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