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EYUNIQUE Nov 01. 2020

한국이냐 캐나다냐, 그것이 문제로다

다시 만난 밴쿠버, 패션계에서 자리 잡기



 그렇게 청천벽력 같은 해고의 충격에 휩싸여 벗어나지 못한 채 시간이 흘렀다. 돌이켜 보면 이제껏 늘 하고 싶은 대로 삶을 꾸려왔었다. ‘영화 편집'을 위해 가고 싶었던 학교의 ‘언론정보학과'에 진학한 것도, ‘캐나다 워킹홀리데이'를 단번에 바로 붙은 것도, 워킹홀리데이로 캐나다에 와서 ‘밴쿠버 패션 브랜드에서 일하게 된 것’ 모두 나의 계획 하에 착착 이루어낸 일이었다. 하지만 이 해고 사태는 '인생이란 내가 계획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잔인하고 혹독하게도 내게 일깨워주었다. 



 전혀 내 계획에 없던 일이 일어나 내 삶을 송두리째 바꿔 버리고 나니, 나의 자신감과 자존감은 바닥을 치고 말았다. 결국, 인생 처음으로 ‘우울증'이라는 걸 경험하게 되었다. 외향적인 성격의 나지만 밖에 나가서 사람을 만나기보다는 집에 틀어 박혀 한국 뉴스, 예능이나 드라마만 보며 시간을 때워버리기 일쑤였다. 제 때 밥을 먹거나 친구를 만나는 것도 괴로웠기에 할 수 있는 거라곤 침대에 누워 있는 것뿐이었고, 인생을 포기한 사람처럼 하루하루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해고당했다는 충격과 억울함, 괴로움에서 벗어나 아무렇지 않은 듯 인생을 살아갈 자신이 없어져버렸기 때문이다.



 앞으로 어디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다시 재정비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머릿속으로 알고는 있었지만, 정신적이며 육체적으로 그럴 여유가 없었다. 이대로 캐나다의 삶을 포기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지, 아니면 다른 방안을 강구해서라도 캐나다에 남을지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계속되었다. 이때, 설상가상으로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뉴스를 듣게 되었고 한국에 다녀와야만 했다. 최대한 빨리 한국으로 돌아가는 티켓을 끊고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이미 장례식은 끝나버린 후였다.


 

 이때, 같이 일하던 샤넬 회계부의 팀장님께서 나를 ‘면세부'로 추천을 해 주셨다는 소식을 전 직장 상사 분이 페이스북을 통해 알려주셨다. ‘한국에 남으면 글로벌한 패션 회사에서 일할 수 있을 텐데… 캐나다에 다시 오는 게 맞는 일일까?’하는 고민에 휩싸였다. 쉽사리 답을 정할 수 없었다. 한국은 백화점, 보세 및 도소매 및 제작, 유통 등 패션 산업의 파이가 크고, 럭셔리 브랜드 및 디자이너 브랜드가 발달했기 때문에 훨씬 많은 기회를 창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밴쿠버의 패션계는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 소수 브랜드가 존재하며 전반적인 산업 자체의 규모가 적었고, 더군다나 캐나다에서는 한국에서라면 걱정할 필요 없는 '언어의 장벽' 및 ‘비자’라는 큰 벽을 해결해야만 했다.



 고민에 고민을 끊임없이 한 후, 다시 캐나다로 돌아오기로 결정을 내렸다. 단순히 '패션 커리어' 하나만 생각했으면 한국에 남았겠지만, 이왕 시작한 캐나다에서의 도전을 여기에서 멈추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생각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헤어질 것인지 앞으로의 시간을 함께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수많은 시간 동안의 고민과 대화 끝에 남은 여생을 함께 보내기로 남자 친구와 서약을 한 후, 혼인 비자를 받아 영주권을 받기 위한 서류 작업에 들어갔다.

이전 11화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