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난 밴쿠버, 패션계에서 자리 잡기
이미 밴쿠버에 한 번 와본 적이 있는 터라, 다시 오기 전 밴쿠버에 있는 패션 회사에 대한 리서치는 거의 끝내 놓은 상태였다. 한국에 있을 때부터 열심히 밴쿠버의 패션계에 대해 검색해온 덕분에, 캐나다에 오자마자 일하고 싶은 회사들을 몇 군데로 추려내어 이력서를 뿌리기 시작했다.
2010년 워킹홀리데이로 캐나다에 온 당시 밴쿠버에서 가장 유명한 패션 회사로는 우리나라에서도 잘 알려지기 시작한 요가복 브랜드, 룰루레몬(Lululemon)과, 아직 한국에 상륙하지 않았지만 뉴욕을 비롯한 북미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여성복 의류 브랜드인 아릿찌아(Aritzia), 그리고 한국 분이 창업한,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여성/남성복 브랜드 오크앤폴트(Oak & Fort)가 있었다. 룰루레몬은 사실 밴쿠버에 와서 가장 큰 문화적 충격(Culture Shock)을 받은 직접적인 이유이기도 했는데, 짧은 윗도리에 엉덩이를 가리지 않고 요가 바지만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이다.
오크앤폴트(Oak & Fort)를 제외한 밴쿠버발 패션 회사들은 연봉도 높고, 처우도 좋다는 평을 가지고 있었으나 왠지 내 마음에 끌리지 않았다. 그 당시 룰루레몬은 패션이라기보다는 기능성 운동복에 치중을 하고 있었고 애슬레져(Athleisure: 운동 경기를 의미하는 애슬레틱(athletic)과 여가를 의미하는 레저(leisure)의 합성어. 운동복의 기능성과 일상복의 편안함 및 패션성이 결합된 패션 웨어를 의미) 트렌드 역시 자리 잡지 않았을 때였다.
아릿찌아(Aritzia)는 트렌디한 옷들을 판매하고 있어 십 대~30대까지 두루두루 많은 연령층에게 인기가 많은 패션 브랜드인데, 디자인은 밴쿠버 본사에서 하긴 하지만 생산라인은 중국에 갖춘 관계로 가격은 준명품 못지않게 고급진 데 반해 퀄리티는 낮은 편에 속했다. 한국인 오너의 오크앤폴트는(Oak & Fort)는 합리적인 가격에 질이 좋은 옷들을 선보이고 있긴 했지만, 일하는 사람들의 사내 문화에 대한 평판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계속해서 리서치를 하다가 밴쿠버에서 직접 디자인, 생산을 하는 패션 브랜드, 오바키 디자인(Obakki Designs)을 발견하게 됐다. 여성스럽고 우아해보이는 매력적인 디자인은 물론이고, 밴쿠버 본사에서 생산을 한다는 것, 그리고 자체적으로 가지고 있는 기부 단체까지... 이 브랜드의 모든 것은 내 가치와 신념에 맞닿아 있어 보였고 알고 보니 회사의 위치가 집에서 걸어서 출근을 해도 될 정도로 가까운 곳에 자리하고 있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당시 직원을 뽑는 공고가 없는 상태였지만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이력서와 커버레터(한국으로 따지면 자기소개서)를 써서 보냈다. 그렇게 무대뽀(?) 정신으로 연락을 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 회사에서 면접을 보자고 연락이 왔다. 긴장되는 마음으로 면접을 본 후, 며칠이 지나 운이 좋게도 마케팅 인턴으로 잡 오퍼를 받게 되었다. 비록 인턴으로 시작하는 것이긴 했지만, 내겐 캐나다 경력과 인맥을 쌓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고 패션계 파이 자체가 작은 밴쿠버에서 가장 일하고 싶어 했던 브랜드에 일할 수 있게 되었다는 자부심에 기분이 하늘로 날아갈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