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난 밴쿠버, 패션계에서 자리잡기
높은 판매 실적과, 954명의 직원 중 거의 유일하게 받게 된 프리미엄, 그리고 독특한 패션 디자이너들을 대표한다는 자부심이 한데 모여 나의 기는 하늘을 치솟고 있었다. 하지만 타인의 실적을 자기 것으로 가져가고 어쩌다 실수가 생기면 직원들에게 돌려버리는 무책임한 성향을 가진 나의 상사는, 어느 날 나에게 갑자기 ‘마지막 경고(Final Warning)’라며 나를 해고하려는 뉘앙스로 협박을 해왔다. 트레이닝에서 배운 모든 것들을 곧이곧대로 믿고, 나의 헌신과 열정을 다 쏟아붓고 있었던 상태에서 아무런 기존의 경고도 없이, 마지막 경고라는 것이 면전에 날아오니 어이가 없었다. 그녀의 말을 듣자 하니, 내가 우리 부서에서 일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고, 타 부서에서 내가 말을 함부로 한다는 컴플레인이 자꾸 들어왔다는 거였다.
트레이닝 당시, ‘고객의 스타일링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책임지는 것’, 그리고 ‘타 부서와 연계해서 판매하는 것’을 장려한다고 배웠기에 그를 실천하고자 1층 혹은 3층의 다른 부서에서 고객을 상대해야 할 때도 종종 있었는데, 이것을 내가 2층에 위치한 나의 부서에 붙박이처럼 붙어있지 않다는 이유로 내가 열심히 일하지 않고 농땡이를 부린다고 단정해 버린 모양이었다. 나의 판매 실적은 반대로 말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드디어 내가 ‘오랫동안 일 할 수 있는 회사’를 만났다고 순수하게 믿어왔는데, 초반 트레이닝에서 거듭 강조한 ‘너 자신이 돼라. 너 답게 행동하라(Be Yourself)’ ‘너의 판단을 믿어라(Use Your Own Judgement)’는 말은 빛 좋은 개살구처럼 회사가 써 놓은 소설의 허구 따위에 불과하지 않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고 큰 배신감에 몸서리쳤다. 하지만, 마지막 경고에서 살아남아 자리를 지키기 위해 나는 트레이닝에서 배운 모든 것들을 버리고 현실로 돌아와 ‘스페이스'와 내가 속한 디자이너 의류 부서에만 전념하는 직원으로 탈바꿈할 수밖에 없었다.
부당하다고 느꼈지만 어쩔 수 없이 컴플레인을 겸허히 받아들이기로 하고 ‘스페이스'에 붙박이처럼 붙어있는 환골탈태의 모습을 보였더니, 나의 달라진 모습을 본 매니저에게서 바로 피드백이 들어왔다. 180도로 바뀐 태도와 일하는 스타일이 마음에 든다며 다시 함께 잘 일해보자는 신임을 얻게 된 것이다. 그러나 트레이닝과 현실 사이의 괴리, 믿음을 져버린 회사와 상사에 크게 배신감을 느낀 나머지, 처음 취업이 됐을 때 가지고 있었던 열정이나 헌신이 많이 사그라든 상태였다. 단지 내가 속한 디자이너 의류 부서 속에서만 판매를 올려야 한다는 제약 때문에 최대의 판매 실적을 올릴 수도 없는 데에 대한 좌절감이 일었고, 이는 내가 초반에 가지고 있던 이 일에 대한 자부심, 잘하고자 하는 의욕과 사기를 떨어트리는 결과로 나타나고야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