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 타고 도망간 사랑을 되돌려 보고 싶네요
세찬 진눈깨비가 내릴 때이면 아련히 떠오른다.
끝 여름에 시작하여 겨울 초입에 사라진 사랑을 쫓아간다.
한낮엔 뜨거운 바람이 부는 끝 여름날에 그대는 날 찾아와 겨울이 시작할 즈음에 떠나갔죠.
그 시절, 간절한 사랑은 왜 빨리 자라서 그리 쉽게 품을 떠나는가를 알게 되었죠.
아! 꿈이면 얼마나 좋을까!
오늘도 어젯밤 꿈속에서 본 그날의 기억들을 생생히 기억하게 되네요.
아마 창문 타고 도망간 슬픈 꿈의 기억을 되돌리고 싶어 지죠.
누구에게나 있던 슬픈 사랑이 찾아왔다가 신기루처럼 사라진 기억은 막 스물을 갓 넘길 무렵의 일이죠.
여름방학 기간 대학등록금에 보태려고 동해 바닷가에서 해안 늪지를 매몰작업을 하는 공사장의 야간 경비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기였죠.
마무리 작업을 마치고 저녁을 먹으러 가는 중, 깜찍한 목소리로 숙소안내를 부탁하는 서너 명의 무례한 무리 중 그녀를 만났죠. 숙소를 찾아주고 여자들로는 무리한 필요한 일도 도와주었죠.
그러면서 식사도 같이하고 한낮엔 빛나던 백사장을 거닐었죠.
저녁이면 노을을 거슬러 걷고 걸어 바위틈 위에 앉아지는 태양과 별을 헤던 시간들이었죠.
그리곤 다시 바다를 떠나 도시로 돌아왔죠
가을의 시작과 끝 여름이 겹치는 저녁 무렵이죠.
마지막 학기 학교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당신을 기다리죠.
그런 당신은 항상 약속시간보다 늦게 도착하죠.
회색 빛 박모 속에서 가로등 불이 꽃처럼 피어나고, 나는 어둠에 삼켜진 정류장 주변을 서성이다,
당신 집까지 를 몇 번이고 왔다 갔다 서성이다 불 커진 창문 너머로 다시 돌아오죠.
거리의 모퉁이에서 창마다 불이 켜진 누군가의 집을 바라보며 날카로운 슬픔에 심장이 찔리기도 했죠.
그 시절 기다 림이란 탕진되는 건 젊은 날의 회한, 그 이상의 상처임을 그땐 몰랐죠.
때론 기다림이 유예되면서 생기는 지루함은 주체를 삼키기도 한다는 사실을.
하나 기다리는 것만큼 사랑은 깊어 가는 만큼 집착으로 가까이 가게 되죠.
이제까지 누군가를 기다리며 사랑하고 이별하는 쓰라림을 몇 번이나 겪었죠.
그대라는 이름의 연인과 헤어진 뒤 사람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각자 다른 장소 다른 시간에서 살아가죠.
끝 여름의 후덥지근한 바람과 겹친 다가오는 가을에 접어든 저녁에 맞는 스산한 바람을 정말 좋아하게 되었죠.
마치 가슴은 이미 가로수 마른 가지 끝에 매달린 붉은 단풍과 닮아 가고 있네요.
한나절을 바쁘게 보내고 다시 고개 돌려보니 어느새 단풍색은 사라지고 검녹색만이 남았죠.
공연히 아쉬운 마음이 들어 공연히 낙관적인 기분에 이리 저리로 방황하게 되네요.
그리곤 세상이 낯설어지는 이상한 찰나도 경험하죠.
한나절을 바쁘게 보내고 다시 물든 몸과 손끝을 보니 어느새 계절의 색, 푸른 여름색은 사라지고 없죠.
이런 방식의 이별은 이 계절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가을날 나뭇가지에 매달리는 붉고 고운 단풍이든,
겨울날의 첫사랑의 기억처럼 종일 내리던 진눈깨비이든,
이 겨울을 가로지르는 가치가 먹다 하나 남은 검붉은 홍시이든,
누군가에게 물든 기억이든 어느 틈에 지워지고 흩어지는 걸 막을 수 없겠죠.
이런 방식의 이별은 겨울로 가는 여름날의 꿈같았던 사랑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이 나이에 오는 사랑은 다 져서 오는 사랑이자 이별이 되죠
세상이 낯설어지는 이상한 찰나로 변해 빠져드는 기분이 되기도 하죠.
여전히 내 사랑은 마른 가지 끝에 매달린 붉은 잎을 닮아 가고,
기침에 목 울대도 넘지 못하고 뺏아낸 목마르게 내려앉는 사랑이죠.
이제야 왜 꽃은 피었다가 지는가를 알게 됐고,
순한 첫사랑은 왜 그리 빨리 자라서 품을 쉽게 떠나는가를 알게 되면서,
짙은 사랑도 그리 쉽게 잊혀 기억도 희미 해져 간다는 걸 이젠 알게 되었죠
숱한 사랑은 여전히 추억 속에 자라고 있네요.
이 나이에 오는 사랑은 멀찍이 서서 건너지도 못하고 돼 돌이키지 도 못하고 가는 한숨 속에 해소처럼 끊어지는 기침처럼 ‘사랑이란 이름을 빌어 쓴 로맨스’가 되네요.
이런 사랑은 이미 져서 질 수도 없는 이별이 되지요.
나는 사랑했던가?
혹은 당신은 나를 사랑했던가!
그동안의 숱한 실패와 고뇌의 시간이 남긴 것은 사랑을 바라보는 한 줌의 추억이 되죠.
이젠 아직도 못다 한 마음에 공연히 아쉬움이 가시지 않지만 꿈속에서도 기다리며 무료하게 보낸 시간은 예전처럼 좀처럼 가까이 다가오지 않네요.
간절한 사랑은 왜 빨리 자라서 그리 쉽게 품을 떠나는가를 이제야 알게 되었네요.
누구나 살면서 사랑은 저 바다 너머로 사라지는 존재인 것을 깨닫게 되었죠.
이제 오는 그대는 사랑의 이름을 빌린 로맨스가 돼요,
숱한 추억만을 남긴 사랑은 한 줌의 ‘소회’가 되고 말았죠.
그래도 창문 타고 외출한 사랑을 한 번쯤은 되돌리고 싶네요.
설사 슬픈 로맨스가 될지 언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