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림 Feb 05. 2023

예쁘게 사랑받는 법

늙어가는 애완견의 예쁘게 사랑하고  받는 법

오랜만에 조금은 따스 해진 날씨에 외출을 준비하고 아파트 문밖을 나서자 저 멀리서 산책길에서 돌아오는 

9층 사는 멍멍이를 본다. 

주인의 품에 안겨 있다가 날 보자마자 내려서 단숨에 내 무릎 위로 달려든다. 

오랜만이라 더 반갑다. 못 본 지도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같은 아파트 위층, 9층에는 이모네에는 ‘초롱이’라는 이름의 브라운 색의 푸들 종의 반려견이 

살고 있다. 입양할 때, 눈이 초롱초롱 빛나서 그런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초롱이를 처음 입양했을 때에는 우리 딸도 유치원 시절부터 그토록 키우고 싶어 했던 멍멍이였다.

그런 멍멍이가 딸이 초등학교 1학년 시절 즈음에 이모네에 들어왔다.

그 당시 책을 사면 멍멍이 책이요, 그림책들 마저도 멍멍이에 관한 책들로 한때는 온 책장을

도배하고 진열되었던 그토록 키우고 싶어 했던 시기였다.

그때에는 거의 매일같이 9층에 놀러 가서 두세 시간은 같이 놀아주었던 멍멍이가 초롱이었다.


나의 애완동물 경험은 오래전, 대학시절 어쩌다 여동생이 잠시 맡았던 2마리의 멍멍이를 지켜본 것 

이외에는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신기하고 귀여운 존재일 뿐이다.

그 시절 그중 한 마리가 며칠을 토하고 아프다가 결국 하늘나라 무지개를 건넜던 기억 때문인지

가까이하기엔 그저 마음이 너무 아픈 동물일 뿐이다. 

그런 기억 때문인지 오랜 시간 동안 직접 반려동물을 키워본 적이 없던 내게는 종이 다른 존재가 

어리광 부리고 오랫동안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 늘 낯설었다.
 
 내가 어쩌다 9층에 갈 때마다 초롱이는 자기 딴에는 반갑다고 꼬리 치며 달려온다.

그것도 잠시 누군지를 확인했으면 거실 자기 자리로 천천히 돌아간다.

그 후에는 신나거나 반가운 기색도 없다. 

그저 ‘누가 왔는지 확인이나 해보자’ 하는 느낌으로 느릿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슬쩍 냄새를 맡고선 가만히 몸을 돌리고 등을 내밀어 보였다. 

만져 달라는 뜻이다. 

그러면 나는 초롱이의 마른 등줄기를 따라 두 손으로 부드럽고 정성스럽게 안마를 시작한다. 

나도 힘들어하며, 한 3분쯤 지났을까?  

안마에 지친 손을 거두고 나면, 초롱이는 나를 슬쩍 올려다보았다. 

더 만져줄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다시 누군가 만져줄 손을 찾아 어디론 가 천천히 사라진다. 

매번 반복되어도 지루하지 않은 그 만의 인사 방법이다.
이번에는 나보다 더 사랑하고 오래 만져줄 다른 누군가에게 다가간다.

그런 초롱이도 이제 12년 이상을 훌쩍 넘긴 노견으로 늙어가고 있다. 

개가 사람이라면 70세가 넘어가는 80세에 다다른 나이일 것이다.

그래서 집에 있는 초롱이는 대부분 누워 있거나 자고 있다가 볼일이 있으면 천천히 어슬렁 거리는 것 

이외에는 따스한 거실 보료 위에 하루 종일 뒹굴고 있다.

예전과는 확연히 달라져 늙어가고 있다는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다. 

윤기를 적어진 브라운 색의 털과 느릿느릿한 걸음걸이가 시골 장터의 할머니를 연상케 한다. 


반려견과 지내다 보면 세상 살아가는 일이 어쩌면 참 단순하다고 느끼고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귀여움을 받는 것,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것, 

하루에 한두 번씩 산책하는 것, 

맛있는 간식을 먹는 것, 

편안하고 안전한 자신만의 공간에서 잠을 자는 것. 

사실 이것들만 지켜진다면 그는 더 바라는 것이 없다. 

처음엔 낯선 이를 경계하지만 이내 서로 마음이 통하고 금방 가까워질 수 있다. 

 

멍멍이, 개처럼만 살아도 쉬워지는 인간관계

개는 어떤 의미에서 사람과 닮았다. 

다른 언어를 쓰고 다른 행동양식을 갖고 있지만, 본질적으로 원하는 바는 같다. 

사랑을 받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기뻐하고 고통은 피하려고 한다. 

생명을 유지하는 방식도, 세상을 감각하고 유영하는 방식도 유사하다. 

그래서 외국인과의 관계처럼 서로 말이 통하지 않더라도, 

이를테면 화장실이 급하거나 배가 고프거나, 혹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것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나는 반려견과 지내며 어린아이처럼 마음을 열고 타인을 대하는 법을 배워갔다. 

먼저 반기고 가까이 다가가는 법, 

맑고 순수한 눈으로 상대방을 지긋이 바라보는 법, 

마음을 숨기지 않고 투명하게 내 마음을 보여주는 법, 

상대의 아끼는 것을 서슴없이 내어주도록 재롱(?)을 떠는 법,

지난번에 불쾌했음에도 잊어버리고 다음번에는 가감 없이 대하는 법,

어떤 감정도 드러내지 않는 순수하게 행동을 하는 법

언제든 다시 손을 내미는 기회를 내어주는 법. 

그래서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고 그 사랑을 바라는 법, 

이 모두 내가 잘하지 못하는 것들이었다. 


그는 화려한 옷과 집도, 부와 명예도, 끝없는 성취감도 원하지 않는다. 

지나치게 바라는 마음은 필연적으로 불행을 가져온다. 

인간은 바라고 원하는 것이 많아 불행한 날도 많다는 것을 반려견과 지내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나는 그가 낯선 사람과 가까워지는 방식을 관찰하며 서툰 인간관계를 고칠 용기를 얻곤 한다. 

내일은 조금 더 마음을 열고 어제보다 많이 순수하게 웃어보자. 

“오늘은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마음을 열어보자” 하면서 스스로를 다독여 보기도 한다. 

그렇게 초롱이는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더 오래 함께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런 늙어가는 멍멍이의 조용한 위로가 웃게 만든 사실이 즐겁다.

 

매거진의 이전글 07. 누구나 슬럼프(slump)는 찾아온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