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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이여! 이젠 안녕!
11화
대문 좀 닫으세요!!
by
꿈꾸는 덩나미
Jun 18. 2025
일 년 내 내 대문을 활짝 열어놓고 사는 집이 있었다.
요즘 같이 험악한 세상에 겁도 없이 온종일 대문을 열어놓고 사는 집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있기나 한 걸까?
나의 친정집은 큰 길가 네거리에 있다.
이 집은 무슨 연유에서인지 밤이고 낮이고 상관없이 대문을 닫지 않는다.
시골이라 하지만 사람들의 이동이 다른 곳보다 많은 곳이고 차량들도 심심치 않게 집 앞을 지나다닌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불쑥 들어올 수 있는 위치에 있다.
가끔 친정집에 오면 낮에는 그렇다지만 밤이 되면 도무지 불안하여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누군가 흉측한 것을 들고 쑥 들어올 것 같은 느낌에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결국은 마당으로 나가 대문을 걸어 잠근 후에야 비로소 편안한 잠이 들 수 있었다.
도대체 대문을 닫지 않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게을러서 그런 건지... 아니면 세상 무서움을 모르는 건지.
하루는 어머니께 왜 대문을 닫지 않는지 그 이유를 물어보았다.
“동네 사람들이 다 지켜주는 집인데 뭐 하러 문을 잠구노.”라며 심드렁하다는 듯이 말씀하셨다.
동네 사랑방인 노인정이 우리 집과 마주 보고 있으니 괜찮다고 했다.
아무리 그렇다손 치더라도 밤에는 대문을 걸어 잠가야 하지 않을까?
내 머리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대문을 닫지 않고 살아도 도둑이나 강도가 찾아오는 일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친척들이나 동네 사람들은 수시로 얼굴을 들이밀고 어머니의 안부를 물었다.
어머니가 몸이 나빠진 이후에는 더 자주 들여다봐 주었다.
"아지매! 하이고 딸내미가 왔네? 오늘 딸내미 왔다고 노인정에 안 왔구만."
“오늘 노인정에 맛난 게 들어와서 아지매도 한번 잡수라꼬 갖고 왔어예. 요새는 몸이 좀 어떠신교?”
참 고마운 사람들이다.
사람들은 수시로 마당에 있는 평상 위에 여러 가지를 두고 갔다.
바다에서 잡아 온 생선이나 미역일 때도 있고 밭에서 캐논 채소일 때도 있고 시장에서 사 온 간식거리일 때도 있었다.
그렇게 사람들은 어머니의 안부를 묻고 안녕한지 살펴 주었다.
어머니는 천성이 사람들을 좋아했다.
투박한 말투 때문에 퉁명스러워 보였지만 사실은 따뜻하고 인정이 많은 분이셨다.
맛난 게 있으면 노인정부터 먼저 챙기셨다. 젊은 사람들에게는 딸보다 더 다정하게 대해서 질투가 날 정도였다. 하다못해 길냥이 굶는 것까지 걱정한 사람이었다.
무료할 때는 대문 앞에 놓인 빨간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시며 말을 걸기도 하셨다.
“오데(어디) 가노? 장에 가나?”
“예... 시금치 좀 팔라꼬예...아지매! 필요한 거 있으면 이야기 하이소. 갔다 오는 길에 사다 줄께예”라고 한다.
이런 좋은 이웃 덕분에 나는 어머니에 대한 걱정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었다.
어머니는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멀리 사는 딸년보다 가까운 이웃이 더 좋다고.
그래서 대문을 닫지 않고 사신 걸까?
어머니 가시고 한 달쯤 후 동생이 사진을 보내왔다.
수 십 년 봐온 대문이 바뀌어 있었다. 꽤 튼튼하고 깔끔한 철제 대문이었다.
어머니는 살아계실 때 동생에게 “내 죽고 없으면 대문을 좀 더 튼튼하고 좋은 것으로 바꿔라.”라고 신신당부를 하셨다 한다. 어머니가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늘 활짝 열어두고 지내서 대문에 관해서는 조금도 관심이 없는 줄 알았는데. 대문부터 바꾸라 하셨다니 의외였다.
나중에서야 어머니의 마음을 조금은 알 수 있었다.
비록 병든 몸이지만 존재 자체만으로도 어머니는 그 집의 든든한 울타리셨고 파수꾼 같은 존재셨다.
그런데 당신이 떠난 후 남은 아들이 걱정되어 대문부터 바꾸라고 신신당부를 하셨을 생각을 하니... 그 마음이 과연 어땠을까?
이제 어머니가 안 계신 집에 아무나 들어올 수가 없다.
밤에도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낮에도 사람이 없을 때는 문을 걸어 잠글 것이다.
<
이제 어머니가 안 계십니다. 함부로 들어오지 마세요
>라는 표식처럼.
사람들은 닫힌 대문을 보며 어머니의 부재를 알게 될 것이고 모든 게 달라졌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대문 앞 빨간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사람들을 향해 미소 지으시던 어머니가 한없이 그리워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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