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들의 목욕탕

그곳에서 그들이 목욕하고 있었다.

by 꿈꾸는 덩나미

오랜만에 통영엘 내려갔다.

통영에서 내가 할 일들 가운데 하나는 어머니와 함께 목욕탕에 가는 일이다.

이것은 딸이 누리는 신성한 권리였다.

평소에는 동생이 봉고차에 어머니와 동네 할머니들을 모시고 시내 목욕탕까지 가면 세신사 할머니가 어머니를 씻겨 드리고 다시 다른 할머니들의 부축을 받아 목욕을 끝내는 것이 어머니의 목욕 루틴이었다.

동생은 늘 “나는 누나한테 딱 하나 부러운 게 있다. 딸이라는 거. 엄마가 목욕 좋아하니까 내가 딸이면 매일 목욕탕에 모시고 갈 텐데.”라며 아쉬워했다. 하지만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목욕탕에 갈 때만큼은 동생 앞에서 내 어깨가 한 뼘은 올라간다.


목욕탕은 어머니만큼이나 오래된 건물이었다. 낮 시간대에 그곳에서 목욕하는 사람들은 거의 노인분들이었다.

세신사 할머니도 어머니 못지않게 늙고 앙상한 분이셨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젊은 세신사에게 몸을 맡기지 않고 꼭 나이 드신 이 분에게 몸을 맡겼다. 어머니가 무엇을 원하시는지 잘 알고 가장 편안하게 씻겨 주신다고 했다.

마른 장작 같은 두 노인네가 서로를 의지하며 몸을 씻고, 씻겨주는 모습은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내가 걱정스럽게 바라보자 세신사 아주머니는 그 눈길을 느꼈는지 “야야! 걱정 말그라(말아라). 느그(너희) 엄마 내가 십수 년 동안 이렇게 씻겨 줬다 아이가”라고 하셨다.

참 고마운 분이다. 돈 몇 푼 받고 이 힘든 일을 기꺼이 해 주신 분이다. 아들 되시는 분이 용돈도 넉넉하게 주셔서 굳이 이 일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사신다고 했다. 단지 이 일을 통해 사람들을 만나고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마음으로 하는 일이라 하셨다.

목욕탕에서 내가 할 일은 별로 없다. 그저 어머니를 부축해 드리고 옷 입을 때 도와주는 정도였다. 옷 입는 것도 내가 없을 때는 동네 할머니들이 다 도와주신다고 했다.

목욕을 마친 할머니들은 나에게 호기심을 보이며 바나나 우유 하나를 건네주었다. 극구 사양하자 “괜찮다 묵으라. 우리는 돌아가면서 우유를 사서 마신다.”라고 하셨다.

내가 누구네 딸이라고 밝히자 모두 어머니를 보며 부러워했다.

“아이쿠야! 니가 저 할매 딸이가? 할매한테 이런 딸이 다 있었나?”

“할매는 좋겠네... 딸이랑 목욕도 오고.”

어머니는 대답 대신 물기 묻은 내 등을 닦아주며 “좋기는 뭐가 좋아. 멀리 살아서 어쩌다 한번 오는 건데...”라고 하셨다.

그래도 할머니들은 어머니와 젊은 나를 번갈아 보며 부러운 눈길을 거두지 못했다.

어머니의 말씀처럼 어쩌다 한번 오는 목욕탕이었음에도.


남편의 직장 따라 경기도란 곳으로 이사를 갔다.

경기도에서 통영에 한 번 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여태껏 운전을 못한다. 그러다 보니 직장이 바쁘지 않은 틈을 타 연차를 내고 가족들에게도 양해를 구하고 용인에서는 통영 가는 버스가 없어 서울로 이동한 후 고속버스를 타고 내려와야 했다.

참 번거롭고 귀찮은 일이었다.

그럼에도 내가 통영으로 가야 할 이유는 단 하나 어머니가 거기 계시기 때문이었다.

버스를 타고 무려 4시간 40분을 달리다 보면 굴 껍데기 냄새와 함께 통영이 나온다.

나의 어머니는 평생 굴을 까서 가정을 꾸려 오셨다.

겨울이 오면 통영에는 강아지들도 만 원짜리를 물고 다닌다 할 정도로 굴은 이곳 사람들에게 풍요를 안겨 주었다.

하지만 그 대가는 혹독했다.

사람들의 손가락은 서서히 휘어지고 온몸이 골병으로 잠식당한다.

어머니들은 그렇게 자식을 키우고 손주들에게 용돈을 주며 뿌듯해했다.

지금도 통영의 바닷가에는 내 어머니 같은 어머니들이 굴 양식장에서 짧은 칼 하나를 손에 쥐고 겨울 바다에 맞서고 있다.

칼끝보다 더 날카로운 굴 껍데기 속에서 뽀얀 속살을 끄집어내는 일이 어머니들의 일이다.

(통영굴은 어머니들의 인생이다)

온몸에 통증이 밀려오고 비릿한 굴 껍데기 섞는 냄새가 몸에 스며들면 어머니는 목욕탕으로 달려갔다. 뜨거운 물에 몸을 푹 담근 후 세신사의 민첩한 손길이 거치면 통증도 피로도 다 날아갔다. 이것이 나의 어머니가 누리는 유일한 호사였다. 그런 후 어머니는 뽀얀 얼굴로 다시 바다로 달려갔다.

어머니는 굴 양식장에서 최고참이 되셨다. 최고참이란 이제 늙어 그 일도 할 수 없는 때가 되었다는 뜻이었다.

돈과 맞바꾸었던 젊음과 건강은 점점 무너져 목욕탕마저 남의 도움이 없이는 들어갈 수 없을 정도가 되셨다. 틈만 나면 내 등을 밀어주며 행복해하셨던 어머니는 언제부터인가 “너도 세신사한테 씻어라.”라고 하셨다.

함께 나이 들어가는 딸인데 어머니 눈에는 그저 어린 딸로 보였는지 늘 등을 밀어주었다.

어느 날은 어머니랑 목욕탕에 다시 갔더니 그 나이 든 세신사 아주머니께서 안 보였다. 내 또래의 젊은 세신사에게 어디 가셨냐고 물었더니 돌아가셨다 한다.

그래서 우리 어머니의 몸을 씻겨주는 담당이 되었다며 웃는다.

늘 친구처럼 어머니를 대해 주셨고 어머니도 편안하게 몸을 맡기실 수 있는 분이었는데.

어머니는 젊은 세신사가 불편한지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나는 그런 어머니를 미안해하며 잘 부탁드린다고 수고비를 더 챙겨 드렸다.

어머니는 깔끔쟁이 셨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눈이 여전히 밝아 방안에 머리카락 하나도 용납하지 못하셨다.

그런데 폐렴에 걸려 한 달 동안 입원을 하시는 일이 생겼다.

아픈 건 둘째치고 제일 힘들었던 건 어머니를 씻겨 드리는 문제였다.

어머니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머리를 감을 수도 목욕을 할 수도.

고작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수건을 뜨겁게 하여 얼굴과 몸을 닦아 드리는 게 전부였다.

머리를 감지 못해 힘들어해서 편의점에서 바르는 샴푸를 사 왔다.

머리에 바른 후 두피를 지압하고 수건으로 닦아 내었다.

그나마 시원하다고 했지 만 하루가 지나면 다시 머리가 가렵다고 했다.

머리를 감고 목욕을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그때 알게 되었다.

일상적인 일들을 할 수 없는 날이 온다는 것을 그때는 왜 몰랐었는지.


어머니가 퇴원을 했다.

하지만 예전처럼 일어날 수는 없었다.

어머니를 어떻게 씻겨 드려야 할지 별별 생각을 다 했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누워서 머리를 감을 수 있는 대야를 사서 보내 드렸다.

그 대야는 내가 다시 통영으로 내려갈 때까지 사용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2인 1조가 되어야 그것도 사용할 수 있었다.

얼마나 불편했을까? 우리 어머니!!


그렇게 목욕을 하고 싶어서였을까? 어머니가 이사를 가 버렸다.

그곳에서는 아프지 않고 그토록 좋아하는 목욕을 매일 하면서 친구들과 수다도 떨고 재미나게 지내고 계시겠지.

어머니가 그리운 날이면 통영의 목욕탕이 떠오른다.

다시는 그 목욕탕에 갈 일이 없겠지만 거기서 어머니와 함께 목욕하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할것이다.


*****오랫동안 어머니를 모시고 손과 발이 되어준 내 동생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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