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이 다 되도록 결혼을 하지 않고 사촌 언니의 애를 태우던 조카가 드디어 청첩장을 보내왔다.
좋은 세월 다 보내는 것 같아 늘 안타까웠는데 오랜만에 반가운 소식을 듣게 되었다.
우리 부부는 먼 거리지만 선뜻 부산으로 가기로 마음을 정했다.
언니와 나는 김 씨 집안의 고명딸들이다.
큰 집에도 딸 하나, 작은집인 우리 집도 딸이 하나였다.
그러다 보니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좀 각별하였다.
나이 차이가 있긴 하지만 언니는 친동생처럼 나를 귀여워하고 이뻐해 주었다.
그런 언니의 딸이 결혼식을 한다고 하니 안 갈 수가 없었다.
결혼식 시간 안에 도착하려면 새벽 일찍 집을 나서야 했지만 형제들과 친척들을 볼 생각을 하니 흥분이 되었다.
남편과 수다를 떠는 사이 부산에 도착했다. 부산이 이렇게 가까웠었나 싶을 정도로 금방 시간이 갔다.
부산은 여전히 활력이 넘쳤다.
눈에 익은 도로표지판, 귀에 익은 사투리, 비릿한 바다 내음도 반가웠고 목청 큰 사람들도 정겨웠다.
친척들은 어제 만난 듯 반갑게 대했다.
1년에 얼굴 한번 볼까 말까 한 이들과 몇 년 만에 보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는데도 이렇게 친밀감이 느껴지는 건 분명 핏줄의 힘일 것이다.
동생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저만치에서 “고모 오셨소?”라고 인사를 하며 다가오는 이가 있었다.
나와는 그다지 나이 차이가 나지 않는 사촌 큰 오빠의 아들이었다.
입가에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하는 이 아이는 어렸을 때 나를 가짜 고모라며 자기네 집에 오지 말라고 한 적이 있었다.
사촌고모라 한 소리였겠지만 그땐 나도 마음이 섭섭해서 “흥!! 나도 니 고모 안 한다 ”라고 말하며 토라졌던 기억이 난다.
나이가 들어서 잊을 만도 하건만 그 아이를 보면 그 말이 슬그머니 떠올랐다.
“잘 지냈나?”
“고모는 어찌 얼굴이 하나도 안 늙었네.”
“니는 좀 늙었구먼... 빨리 좋은 사람 만나야지”라고 하자 조카는 시선을 돌리며 웃었다.
결혼식 후 친지들과 사진을 찍는데 어쩌다 보니 그 조카가 내 근처에 섰다.
식사를 마친 후에는 다음에 또 만날 기약을 하고 우리 부부가 먼저 집으로 가는 길에 올랐다.
서로 자주 보자는 말을 주고받으며 기분 좋게 고속도로에 올랐다.
어디쯤 가자 하늘이 조금씩 어두워지더니 빗방울이 떨어졌다.
아이들이 신혼여행을 갈 텐데... 하필!!
언니가 봉투에 넣어준 돈으로 휴게소에서 커피와 간식거리를 샀다.
남편과 친척들 이야기에 열을 올리며 대전 근처를 지나가고 있을 때 전화가 울렸다.
동생이었다.
늘 그랬지만 동생의 전화는 그다지 달갑지가 않았다.
집안의 모든 대소사를 전하는 소식통이었고 좋은 소식보다는 안 좋은 소식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무렵 어머니의 건강도 좋지 않아 매일매일 긴장하고 있을 때이기도 했다.
하지만 조금 전 결혼식장에서 어머니의 안부를 들었기에 별일이 있겠나 싶기도 하여 전화를 받았다.
“누나~ 어디쯤이고?” 동생의 목소리는 약간 떨리고 있었다.
“대전 금방 지났다. 왜?” 나는 불편한 마음을 숨기고 최대한 상냥한 목소리를 내려고 애를 썼다. 동생은 뜸을 들이더니 “놀라지 마라...”라고 하고는 다시 말을 끊었다. 나는 침을 꿀떡 삼키며 “왜? 엄마가 위독하나?” 하며 한마디를 간신히 뱉었다.
“그게 아니고...ㅇㅇ이가... 금방... 죽었다고 연락이 왔다.”
나는 동생의 황당한 말에 코웃음을 쳤다.
지금 돌아가셔도 이상할 것 없는 어머니가 아니라 조금 전 본 새파랗게 젊은 조카가 죽었다니...
얘가 미쳤나 보네. 쓰러진 것도 아니고 죽었다니...
말도 안 된다는 생각에 짜증이 났다. 그래서 퉁명스럽게 “무슨 소리고? 조금 전에 만나 인사하고 같이 밥 먹고 사진도 찍고 했는데 말 같은 소리를 해라.”
동생이 이 시점에 농담을 할 아이는 아닌데...
남편이 전화 내용을 듣더니 간이 휴게소에 차를 세웠다.
빗방울이 앞 유리창에 후드득 떨어졌다.
“결혼식 끝나고 다들 기분 좋게 헤어져 집에 갔는데 즈그(자기) 집 현관문 앞에서 갑자기 쓰러졌다 안카나... 119 불러 병원 갔는데 급성 심장마비라 칸다.”
그래서 집으로 가다가 다시 부산으로 가고 있다고 했다.
거짓말은 아닌듯했다. 뭔가 큰일이 일어난 게 맞다 싶으니 머리가 하얘졌다.
하지만 이런 일은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일이 아닌가?
드라마도 이런 내용은 너무 유치하지 아니한가? 이런 드라마를 보고 막장이라고 한다지.
‘조금 전에 헤어진 그 조카가! 나를 가짜 고모라고 했던 그 아이가 죽었다고? 어디 아픈 기색이라곤 전혀 없었는데. 죽는 게 이렇게 쉬운 거였어? 멀쩡히 옆에서 사진도 찍고 함께 밥 먹은 지 두 시간 정도 지났을 뿐인데. 신랑 신부를 같이 축복하고 다시 보자고 했던 그 아이가?’
아무리 애를 써도 믿어지지 않았다.
언니 부부는 한복만 벗은 채 병원으로 달려갔다고 했다.
모두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결혼식에 온 그대로 병원으로 가고 있다고 했다.
‘설마 뭔가 착오가 있었겠지. 죽기까지야 했으려고? 너무 위독하니 죽었다고 잘못 들었을 거야.’
동생은 가 봐야 알겠다고 하면서 자신보다 세 살 적은 친구처럼 지낸 조카의 부고를 떨며 나에게 전했다.
이런 걸 보고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고 하나보다.
우리 부부는 할 말을 잃고 한참을 그대로 있었다.
한날에 결혼식과 장례식이라니. 살다 살다 별일이 많다지만 이건 좀 아니지 않은가.
차 안에는 빗소리와 알 수 없는 적막감으로 가득 찼다. 우리는 한동안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 위해 몸부림쳐야 했다.
다시 부산으로 돌아가야 하나 망설이는데 동생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누나는 그냥 올라가라. 지금 뭐가 뭔지 잘 모르겠으니. 가서 상황 보고 전화할게.”라고 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우리에게 동생의 말은 이정표 같은 것이었다.
어수선하고 애통한 분위기 속으로 들어갈 용기도 없었고 다시 차를 돌리기엔 남편도 너무 지쳐 있었다.
조용히 애도하고 기도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우리는 복잡한 마음을 가라앉히며 말없이 집으로 차를 몰았다.
며칠 후 언니와 통화를 했다.
누구보다 언니의 마음이 힘들 것 같기도 하고 부산의 상황이 궁금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언니네 가족은 죄인인 심정으로 숨도 크게 못 쉬고 있다고 했다.
그날 결혼식을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하필이면 결혼식 마치자마자 그럴 수 있냐며
하늘이 원망스럽다고 했다. 올케언니의 얼굴도 제대로 볼 수가 없다고 했다.
나라도 그랬을 것 같았다.
운명이라면 모두에게 너무 잔인한 운명이었다.
올케언니는 매일 울어 눈이 짓물렀다고 했다. 그 마음을 어찌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순서대로 갔으면 얼마나 좋았으랴~무엇이 급해서 그리 서둘러 가 버렸단 말인가!
(올케언니는 그 후 일 년이 되지 않아 돌아가셨다)
무거운 마음으로 신혼여행을 다녀온 신랑 신부와 친척들은 천천히 일상의 삶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살아있는 자의 삶은 계속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일로 인한 충격이 한동안 나를 괴롭혔다.
나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고 예고 없이 찾아올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죽음이란 건 나와는 상관없는 먼 훗날의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조카의 죽음을 보면서 남의 일이 아님을 알게 된 것이었다.
그동안 삶에만 집중했고 죽음은 한순간도 생각하지 않았다.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고 죽음은 늘 우리 옆에서 얼쩡거리고 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결혼식에 죽음의 사자가 함께 왔으리라고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아니 죽음은 이미 다양한 사건들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드러냈는지도 모른다.
다만 우리가 인식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남편의 고종사촌은 딸 결혼식 날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부산의 어떤 청년은 군 제대하자마자 복학하기 전 잠시 알바를 하겠다고 하더니 공사현장에서 죽었다고 했다.
내 아들의 단짝 친구는 사회로 첫발을 딛자마자 타국에서 물에 휩쓸린 채 주검이 되어 돌아왔다. 뉴스에는 서울 한복판에서 땅이 꺼져 한 청년이 오토바이를 탄 채 매몰되었다고 한다.
이런 예기치 못하게 찾아오는 죽음 앞에 우리는 어찌할 방법이 없다.
도대체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찾아오는 이 손님을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 걸까?
그날의 황망함은 여전히 내 머릿속에 남아 지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잘 살고 싶다.
어느 날 죽음이 찾아와 불쑥 손을 내밀더라도 그 손을 잡아야 한다면 이 순간을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해 살고 싶다.
그리고 삶이 좋은 친구였듯이 죽음도 소중한 친구로 받아들이고 싶다.
단지 작은 소망이 하나 있다면 사랑하는 이들과 작별의 인사를 나눌 수 있는 며칠간의 시간만 허락해 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