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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이여! 이젠 안녕!
06화
끝순이 고모
지적장애인이었던 고모를 추억하며...
by
꿈꾸는 덩나미
Jun 1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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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순이~
그녀의 이름이다.
그리고 그녀는 하나뿐인 나의 고모이다.
몸은 초등학생처럼 조그맣고 피부는 까무잡잡하며 지능은 5살 아이 수준이었다.
어머니 말씀에 의하면 할머니께서 고모를 가졌을 때 할아버지가 염소를 잡으셨다고 한다. 그래서 고모가 태어났을 때 염소 소리를 내며 울었다고 한다.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고모는 다른 사람들보다 모든 성장이 느렸다. 그리고 결국은 5살 아이 수준에서 멈췄다.
나이가 차서 큰어머니께서 고모를 시집을 보내셨다고 한다.
그런데 한 달도 채 못살고 쫓겨 오셨다고 했다.
5살 아이가 밥을 할 수 있었겠는가?
남편과 잠자리를 할 수 있었겠는가?
그렇게 고모는 큰어머니의 그늘 밑에서 평생 짐이 되어 사셨다.
어린 내 눈에 비친 고모는 부족한 사람이었지만 조카인 우리는 무척 이뻐해 주신 마음이 따뜻하고 착한 사람이었다.
길에서 만나면 이름을 부르며 아는 척해 주고 어눌한 말투로 어디 가느냐고 물었다. 그런 고모가 가끔은 좀 창피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불쌍하고 가엾은 마음이 훨씬 더 커서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어른들은 좀 달랐다.
큰어머니와 우리 어머니는 하나뿐인 시누이를 “아기씨!”라고 다정하게 부른 적이 없었다.
“끝순아!” 하고 빽 소리를 지르시기 예사였다. 그 목소리에는 원망과 경멸이 가득 들어 있었다.
두 사람은 번갈아 가며 고모를 무시하며 머리를 쥐어박기 예사였다.
하도 불쌍해서 “엄마! 고모 우리 집에 데리고 와서 같이 살까?”라고 말을 하면 어머니는 기겁을 했다. 큰어머니의 몫이라 여긴 고모가 행여 자신의 몫이 될까 봐 걱정하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그렇게 고모는 아무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구박데기였다.
어른이든 어린아이든 모두가 고모에게 <끝순이>라고 이름을 불렀다.
그 많은 이름중에 하필 끝순이라니...할아버지는 고모에게 왜 그런 이름을 지어 주셨담?
하루는 친척 되는 내 또래 아이가 “저기 느그(너희) 고모 끝순이 가네. 끝순아!!”라고 부르는게 아닌가!
그래도 나이 든 사람인데. 함부로 말하는 게 견딜 수 없었다. 마치 내가 무시당하는 느낌이어서 그 아이의 머리채를 잡아 당기며 싸웠다.
그런 고모에게도 모성애는 있었다.
사촌 언니가 아기를 낳자 고모는 아기가 백일이 지나자마자 매일 등에 업고 입이 귀에 걸린 채 돌아다녔다. 마치 자신이 아기를 낳기라도 한 듯 동네방네 자랑을 하였다.
내가 시집을 가서 아기를 낳았을 때도 신기한 듯 이리저리 만져보고 중얼중얼 뭐라고 말을 하며 아기를 쓰다듬었다. 마치 어린 우리를 예뻐했던 그표정으로.
아버지는 그런 고모를 애처로이 여겼다. 말로써 뭐라고 표현한 적은 없었지만
고모를 바라보는 그 눈 속에는 말할 수 없는 연민과 아픔이 있었다.
고모는 매일매일 동네를 한 바퀴 돌다가 꼭 우리 집에 들렀다.
아버지와 눈이 마주치면 “오빠!”라고 말하고 수줍게 웃었다.
아버지는 대답 대신에 슬며시 사과나 과자를 손에 쥐여 주었다.
그러면 고모는 어머니의 눈치를 쓱 보다가 다시 큰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큰어머니의 건강이 점점 나빠졌다.
부산에 계시는 큰아들 집으로 가야 하는데 혼자 남을 고모가 걱정되어 쉽게 결정을 못 하고 있었다.
고모는 우리 모두의 걱정거리였다.
부산에는 사촌 오빠들과 언니가 살고 있었다.
큰어머니는 결국 부산으로 가셔서 병원에 입원하셨다.
큰집에 혼자 남은 고모는 엄마 잃은 아이처럼 불안해 보였다.
우리는 큰어머니가 아프시고 곧 집으로 돌아오실 거라고 설명했지만 고모가 이해했는지는 의문이었다.
의지할 곳 없는 고모는 더 자주 우리 집엘 들렸고 어머니가 식사를 챙겨 주기도 하고
때로는 가까이 사는 친척들이 고모를 보살펴 주기도 했다.
두해쯤 지난 후 큰어머니가 결국 부산에서 돌아가셨다.
시신으로 돌아온 날, 큰어머니의 영정 앞에 고모는 염소 울음 같은 소리를 내며 끅끅거렸다.
고모의 슬픔이 우리에게도 느껴져서 마음이 먹먹했다.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고모는 죽음의 의미를 알고 있는 듯했다.
매일매일 기운이 없어지는 고모를 안타깝게 여기면서도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고모는 그렇게 혼자 큰집과 우리 집을 오르내리며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고모가 마을에서 교통사고가 났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평생 그렇게 돌아다녀도 별일이 없었건만 그 시골마을에서 교통사고라니.
고모는 어찌 손을 써 볼 사이도 없이 황망히 떠났다.
마치 큰어머니를 따라가기라도 하듯이.
나는 큰어머니가 고모를 반겼을지 아니면 저승까지 따라왔냐고 구박했을지 가끔 궁금해 진다.
큰어머니는 본디 너무나 다정한 사람이었다. 누구보다 따뜻한 심성을 지닌 분이었음을 나는 안다.
가난한 살림에 6남매를 키우다 보니 지적장애인인 고모에게까지 그 사랑이 미치지 못했던것 같다.
평생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시누이를 그래도 큰어머니니까 거두어 주셨다.
끝순이 고모는 천국에서 어여쁜 천사가 되었을 것이다.
세상에 태어나 나쁜 짓 한번 하지 않고 착하게만 살아온 우리 고모가 천사가 되지 않았다면 누가 천사가 될 수 있겠는가.
나는 신이 공평한 분이라고 믿는다.
천국에서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오순도순 서로를 아끼며 살아갈 것이다.
얼마 전 고향엘 다녀왔다.
동네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큰집은 텅 비어 잡풀만 무성했다.
그곳에는 고모를 부르는 큰어머니의 목소리. 어린 조카들을 보고 반가워 어쩔 줄 모르던 우리 고모 끝순이의 모습이 내 마음을 아련하게 했다.
이제는 천국 정원에서 뛰어다니며 평안한 안식을 누릴 끝순이 고모.
고모도 큰어머니도 그립고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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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nch Book
그리운이여! 이젠 안녕!
04
저 푸른 초원 위에
05
아침에 눈을 뜨면
06
끝순이 고모
07
생선 장수 큰어머니~
08
초대하지 않은 손님
그리운이여! 이젠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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