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푸른 초원 위에

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이 중요하다

by 꿈꾸는 덩나미


어릴 때 많이 듣던 노래 중에 이런 노래가 있었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님과 한 백 년 살고 싶네~>

이 노래가사처럼 나도 훗날 이런 집에서 남편과 자식 낳고 살고 싶다는 꿈을 꾼 적이 있었다.

하지만 작금의 우리나라에서 이런 집을 짓고 살려면 팔자가 좋아야 할 것 같다.

일단 재정이 어느 정도 받쳐줘야 하고, 건강해야 하고, 무엇보다 전원생활을 좋아해야 한다. 이 중에 하나라도 없다면 깊이 고민을 해 볼 일이다.

나는 요즘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유튜브 채널에서 쏟아져 나오는 전원주택을 검색하는 재미에 빠진 것이다. 너무나 예쁘고 멋진 집들이 어서 오라고 유혹을 하는 것 같다.

그렇게 구경하며 대리만족을 얻는다. 하지만 막상 가서 살아라 하면 살 자신은 없다.

왜냐하면 나는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는걸 더 좋아하기 때문이다.

혼자 떨어져 고립된 삶을 살아가라면 그곳이 구중궁궐이라 해도 무섭고 싫다.


집을 선택할 때 나의 기준은 한결같이 <햇볕과 화장실>이다.

햇볕이 거실 깊숙이 들어와야 하고 화장실이 두 개는 있어야 한다. 거기에 한 가지만 더 욕심을 낸다면 작은 마당이 있어 수국이나 라일락을 심어보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아파트 생활에서 꽃밭은 어림도 없어 화분으로 대체하는 편이다.

부산에 살 때에는 화분이 베란다를 가득 채웠고 햇볕이 잘 들어 식물이 정글을 이루었다. 참 행복한 집에 살았다는 느낌이 든다.


경기도로 먼저 온 남편이 작은 빌라에 둥지를 틀었다.

몇 년 후 온 가족이 경기도에서 합류하게 되었는데 성인 4명이 살기엔 턱없이 좁은 집이었다.

하나밖에 없는 화장실은 아침마다 줄을 서서 서로를 재촉했고 식탁을 비켜 갈려면 엉덩이를 있는 대로 치켜세우고 까치발로 간신히 지나가야 했다. 두 아이에게 방을 양보하니 우리 부부는 작은 거실에서 지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참 이상했다. 불편하기 짝이 없었건만 가족이 식탁에 앉아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깔깔대며 웃기도 하고 토론도 하고 가정예배란 것도 드리고.

가족이 하나 되어가는 느낌이랄까...


그렇다고 속물인 내가 이런 생활에 만족만 하고 지냈을까? 아니었다.

남편 지인의 집에 초대를 받아 갔는데 내 인생 처음으로 60평대의 아파트를 가 보게 된 것이다. 외동딸은 유학을 보내고 부부 두 사람만 사는 집이라는데 한마디로... 넓었다!!

부럽기도 했고 둘이서 무슨 재미로 살까? 하는 생각들이 머릿속을 오갔다.

흥분한 나는 연신 집구경에 바빴다.

집에 돌아와서 보니 우리 집은 그 집과 비교하면 농막 비슷한 수준이었다.(요즘은 농막도 얼마나 예쁘고 세련되게 짓는지 모른다.)

하여튼 비교한다는 자체가 말이 되지 않았다.


그 집에 다녀온 이후 남편에게 슬며시 짜증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남편은 부산에서 작은 공장을 운영했다.

나는 공장을 하면 떼돈을 버는 줄 알았다.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 “사모님! 사모님” 하고 불러줄 때 은근히 어깨가 으쓱거려지기도 했다. 마땅한 패물 하나 받지 못하고 시집을 왔는데 현금으로 반지와 목걸이를 척척 사 주기도 해서 이제 내 인생은 꽃길이구나 싶었다. 하지만 꽃길은 채 몇 달이 가지 못했다. 몇 년간 생활비는 구경도 못했고 월급 나가야 하는 날은 왜 이리도 빨리 다가오는지... 버티던 남편이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고 경기도로 직장을 찾아 떠나 버린 것이었다.

덕분에 이 나이에 경기도까지 올라와 이런 집에 살게 되다니... 남편이 원망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며칠 후 이사를 앞두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았던 이 집은 아픈 시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급히 구한 집이었는데 덕분에 내가 온갖 호사를 다 누리고 가는 것 같다.

넓은 거실에는 햇살이 가득했고 화장실도 두 개인 집이었다.

코 고는 남편과 따로 방을 써 보기도 했고 거실에 앉아 통유리 너머 초록초록한 자연을 바라보며 커피 한잔의 여유도 가져 보았고 넓은 주방에서 예쁜 앞치마를 매고 요리를 해 보기도 하였다. 온갖 우아함을 떨며 사모님 놀이를 해 보았다.

이제 사모님 놀이는 끝이다.


이사할 집은 내가 꿈꾸던 것과 많이 다르다.

그리고 저 푸른 초원 위 그림 같은 집도 아니다.

하지만 시어머니가 떠나신 후 집에 대한 나의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옛날 어른들이 말씀하시길 집은 주인을 따라간다고 했다.

내 아이들이 언제든지 와서 편안하게 쉬어가는 집.

하루 종일 일한 남편과 내가 피곤한 몸을 뉠 수 있는 집.

그런 공간이면 된다.

예전에는 집에 비싸고 좋은 물건으로 가득 채우고 싶었다.

그런데 집은 비싼 물건이 아니라 사랑과 온기로 채워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조금 불편해도 꼭 필요한 물건이 아니면 집에 들이지 않을 생각이다.

매일매일 버리고 내려놓으며 나누고 베푸며 살고 싶다.

언제든지 떠날 준비가 된 사람처럼 살고 집에 대해서는 미련을 두지 않을 생각이다.

집은 그 공간이 문제가 아니라 그 속에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사느냐가 문제인 것 같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이 아닐지라도 나는 내 사랑하는 사람들과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고 싶다. 그런 마음으로 집을 가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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