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자는 섬진강 변에 터를 잡았다.
그녀는 남편과 함께 섬진강에서 물고기를 잡아 주변 식당이나 사람들에게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
물론 물고기만 잡는 건 아니었다.
봄에는 나물을 뜯고 가을에는 밤농사를 짓고 참게를 잡기도 했다..
무릎이 닳도록 섬진강 변을 쫓아다녔다. 하지만 가난은 늘 그림자처럼 그녀를 따라다녔다.
점이는 띠동갑 남자와 결혼을 했다.
그 시대 많은 사람이 그러했듯이 이른 나이에 시집을 갔다.
“너라도 가서 배불리 먹고살아라” 어머니의 말에 등 떠밀려 시집을 갔지만 그다지 배부른 삶은 아니었다.
띠동갑 남편의 사랑을 흠뻑 받았지만 그 남자는 점이가 예쁜 옷을 입는 것도 파마를 하는 것도 싫어했다. 그러다 보니 늘 수더분한 옷차림에 쪽 찐 머리만 고수했다. 하루는 그녀가 큰마음을 먹고 파마를 하고 오자 밥상이 마당으로 내동댕이쳐졌다.
그리고 그 무렵 점이는 말랑말랑한 자식을 갑자기 둘이나 잃었다.
무슨 돌림병이 동네에 돌았다. 그것을 피하지 못했다.
순자는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 친척 집을 전전하며 살았다.
외갓집에서 살기도 하고 고모 댁에서 살기도 했다.
눈칫밥에 이골이 난 어느 날 결혼에 실패한 경험이 있는 남자로부터 중매가 들어왔다. 순자는 이미 자식이 있는 그 남자의 두 번째 아내가 되었다. 순자도 남편과의 사이에서 아들 다섯과 딸 하나를 낳았다.
그녀의 남편은 한량이었다. 물고기 잡는 일 외에는 술을 마시거나 놀기만 좋아하고 먹고 싶은 게 있으면 혼자 사다 쟁여놓고 먹었다.
또 술만 마시면 폭력적으로 변해서 순자와 아이들을 때리기도 하고 살림을 부수는 일이 태반이었다.
그럼에도 여섯 남매를 낳은 건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순자도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 남편에게 지지 않고 대들기 시작했다.
점이는 두 아이를 잃은 후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웠다.
술에 취하면 밤새 신세를 한탄하며 소리 내어 끅끅 울었다.
아이들이 또 태어나고 시간은 그녀의 상처에 딱지를 만들었지만 점이는 또 자식을 잃을까 봐 전전긍긍하며 살았다.
태어난 자식들을 위해 생선을 떼서 집 집마다 팔았다. 그 이후에는 굴 양식장에서 손가락이 휘는 줄도 모르고 굴을 까기도 했다.
착하고 성실한 그녀의 남편은 멸치 배를 타고 몇 달간 집을 비우기도 했다. 작은 집도 사고 땅도 조금 샀다.
하지만 여전히 고만고만한 삶이었다.
순자의 자식들은 그녀를 닮아 모두 키가 작았다.
특히 어렸을 때부터 병치레가 많았던 큰아들은 더 작고 왜소했다.
결혼은 시킬 수 있으려나 걱정이 되었지만 성실하고 야무져서 그녀에게 큰 힘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아들이 결혼을 하겠다고 색싯감을 데리고 왔다.
일단 아들보다 키가 컸고 예쁘고 똑똑해 보여 순자도 안심이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사람들은 며느리를 한없이 칭찬했다.
순자는 힘들게 살아온 자신의 삶이 보상을 받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후 며느리는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낳았다. 순자의 삶에도 꽃이 피는 듯했다.
점이는 아들 셋 딸 하나를 낳았다.
딸은 고집도 세지만 공부도 곧잘 했다.
양념 딸이다 보니 때로는 버릇도 없고 이기적이고 고집쟁이였다.
그래도 딸 귀한 집안이라 온 동네 사람들도 그 아이를 예뻐했다.
그 딸이 나이가 차서 결혼을 하겠다고 남자를 데려왔다.
점이는 하나밖에 없는 사위가 될 아이에 대해 기대가 가득했다. 그런데 딸보다 키도 작고 왜소한 몸집에 충격을 받았다. 인물도 좋고 집안도 좋고 몸집도 크고 그럴듯한 사위를 상상했는데...
“가라! 니 인사 안 받는다.”
얼굴을 보는 순간 안색이 변해 나가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 길로 딸은 그 남자를 따라 떠나 버렸다.
순자는 밤 농사를 지어 크고 굵직한 것으로 골라 점이에게 보냈다.
고추도 깨끗이 닦아 말린 후 보냈다.
자신의 아들을 위해 무엇이든지 좋은 것은 점이에게 보냈다.
하지만 점이의 마음은 쉽게 풀어지지 않았다.
주위 사람들은 점이에게 외모가 뭐가 중요하냐고 입이 닳도록 말했지만 “니 사위 아니라고 그런 말 하지 마라. 사위가 둘만 되어도 내가 안 그런다.”라고 말하며 섭섭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다가 딸이 아들을 낳았다는 연락이 왔다. 아기는 모든 신체가 크게 태어났다.
점이의 상한 마음을 풀어주기라도 하려는 듯이.
점이는 조금씩 사위에 대한 마음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사위를 반대했던 것을 순자에게 사과했다.
어느 날부터 인가 순자에게 우울증이 찾아왔다.
둘째 아들이 혼자 살 순자를 생각해서 집을 고쳐 주었는데 옆집 노인네가 “너희 집 공사 때문에 우리 집에 물이 샌다”며 하루가 멀다 하고 소리를 질러댔다.
순자에게는 스트레스가 아닐 수 없었다. 급기야 공사했던 것을 다 뜯어 버렸다. 그제야 마음이 조금 풀리는 듯했는데 옆집 노인네는 여전히 소리를 질렀다. 그것이 병이 된 건지 외로움이 병이 된 건지 우울증이 심해지더니 급기야는 극단적 선택을 했다.
다행히 큰아들에게 전화를 했고 큰아들은 가까이 사는 이웃에게 도움을 구했다.
순자는 생명을 구했지만 이런 사건은 몇 번 더 있었다.
결국 아들들은 순자와 함께 살기로 했다.
점이는 자정이 조금 지나면 벌떡 일어났다.
그 동네 여인들이 경쟁하듯이 새벽잠을 포기하고 굴 양식장으로 출근을 했다.
손가락이 휘는 줄도 모르고 굴을 까다 보면 제법 큰돈이 호주머니에 들어왔다. 그 재미로 힘든 줄 모르고 일을 했다.
점이는 그 나이의 도시 여인들만큼 돈을 벌 수 있었다. 그 돈으로 손주들 용돈도 주고 생활비를 쓰면서 넉넉하게 살 수 있었다.
하지만 몸은 점점 망가져 가고 있었고 결국 벌었던 돈은 병원으로 흘러 들어갔다.
순자도 점점 몸이 나빠졌다.
치매라는 반갑지 않은 손님도 왔다.
계속되는 극단적 선택에 순자는 요양병원으로 옮겨갔다.
자식들에게 집으로 데려가 달라고 떼를 썼지만 그것은 쉽지 않았다. 옆집이 공사를 하면서 순자의 집은 터만 남고 사라져 버렸다. 순자는 점점 기억이 희미해져 갔다.
남편처럼 친구처럼 의지하던 큰아들만 기억에 남아있고 다른 것들은 조금씩 잊어 갔다. 요양원에서의 생활은 지루하고 따분했다.
평생 섬진강을 쫓아다니며 살던 그녀에게 요양원에서의 생활은 창살 없는 감옥 같았다. 순자는 더 우울해져 갔다.
점이는 서너 걸음만 걸어도 숨을 헉헉거렸다.
평생을 달고 산 천식이 요즘 들어 더 힘에 부치는지 몸에서 바람 소리가 났다.
급기야 폐렴도 왔다.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의사의 선고가 있었지만 점이는 한 달간 죽음과 치열하게 싸웠다. 그리고 퇴원을 했다.
막내아들은 산소 농도를 올리기 위해 호흡기를 사서 달아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에 혼자 화장실을 가다가 넘어져 버렸다.
다리는 부러졌고 몸이 약해 수술도 할 수가 없었다.
점이는 죽더라도 병원은 가지 않겠다고 버티었다.
병원에 간들 뾰족한 수가 없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었다.
이제는 더 이상 걸을 수 없었다.
결국 대 소변을 받아 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집에서는 병원에 가자는 아들과 가지 않겠다는 점이가 매일 싸웠다.
순자는 마음이 무너졌고 육체도 함께 무너져 갔다.
그 속에서 기억들은 희미해져 갔고 치매로 인해 성격도 폭력적으로 변해갔다.
옆 침대의 노인들과 싸우기도 하고 욕을 하기도 했다.
요양보호사들에게 침을 뱉는 건 예사였고 남의 물건을 훔치기도 했다.
자식들의 걱정이 점점 쌓여가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여느 날처럼 요양보호사들이 챙겨준 점심과 약을 먹고 침대에 누웠다.
길고 긴 더위가 점점 힘을 잃어가고 시원한 바람이 목덜미를 간지럽히던 날이었다.
순자는 침대 맡에서 손님을 맞았다.
손님은 순자의 손을 꼭 잡더니 “같이 갈까?”라고 물었다.
순자는 웃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그리고 조용히 숨을 멈추었다.
점이는 순자가 떠났다는 말을 들었다.
누워 있으나 정신은 어느 때보다 명료했다.
‘잘 가요... 고생했어요... 나도 곧 갈게요’
점이도 자신이 곧 떠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순자가 가고 채 두 달이 못 되어 점이는 아침부터 몸이 좋지 않았다.
몸이 점점 무거워졌고 정신이 혼미해지더니 시커먼 피를 토해냈다.
늘 기다려 온 날이건만 곁에서 울며 소리치는 아들들을 보고 점이는 마음이 아팠다.
점이 곁에는 어릴 때 떠나보냈던 그 아이들이 서 있었다.
점이는 울고 있는 아들들과 천사 같은 아이들을 번갈아 보더니 결국 그 아이들의 손을 잡았다.
그들은 집안을 한 바퀴 돌아보더니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
점이네 집에는 남은 자식들의 울음소리만 가득했다.
그렇게 그녀들이 연거푸 떠나 버렸다.
그 무더웠던 여름을 지나 가을의 찬란함을 뒤로하고 시간은 여전히 흐르고 있다.
누군가는 사랑을 하고 아기들은 태어나고 우리는 노인이 되어가고 노인들은 그녀들처럼 어딘가로 떠나고 있다.
모두 어디로 가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누구나 가야 하는 길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그녀들이 이 세상에 와서 한평생을 누군가의 딸로, 아내로, 어머니로 살다 갔다는 것을 기억하기 위해 이 글을 쓴다.
나의 어머니... 손점이여사님 그리고 나의 시어머니... 정순자여사님
사랑하고 고맙습니다. 그리운 어머니들...
(어머니들이 살다가신것을 기억하고 글로 남기겠다고 약속 했습니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순자와 점이라는 사람이 있었다는것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