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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숙 Oct 08. 2022

감사하는 마음

가을 아침 단상

오전 7시 30분 출근길, 아파트 현관을 나서자 나도 모르게 입에서 '아 춥다'라는 말이 터져 나온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단어다. 살짝 두꺼운 재킷을 입었는데도 서늘하다. 그 차가운 느낌 덕분에 머릿속까지 시원해진다. 모처럼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본다. 요사이 며칠 동안 하늘을 올려다본 기억이 가뭇하다. 구름 한 점 없이 청청하다.


경비 아저씨들이 살뜰하게 심어 가꾸는 아파트 화단에는 노란 소국이 이른 아침부터 말간 표정으로 인사를 건넨다. 가을을 실감하게 하는 새참 한 빛깔이다. 모처럼 로변 은행나무의 자태도 시야에 들어온다. 햇살을 많이 받은 잎새는 좀 어릿한 노란빛이고 그늘 쪽에 있는 것은  아직 초록빛이다. 그들은 혹시 자신의 자리에 대해 불만이 있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지난밤 지인의 장례식장을 다녀오면서 많은 상념이 떠올랐다. 삶이라는 것이 별것 아닌데 왜 이렇게 아웅다웅하면서 살고 있을까. 나이가 들어도 왜 누군가를 시기와 질투의 눈길로 바라보는 시간이 줄어들지 않을까. 조문에 동행한 후배는 올해 6개월 정도 투병으로 생과 사의 갈림길까지 오갔던 이야기를 하며 매일 잠자리에 들기 전에 감사기도를 한다고 했다. 말 그대로 덤으로 사는 인생이니 이렇게 살아갈 수 있는 자체만으로도 감사할 뿐이라는 것이다.


세상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삶은 천양지차로 달라진다. '나는 왜 사소한 일에 분개하는가' 시를 통해 자신의 치부를 그대로 드러내며 스스로를 끊임없이 성찰했던 김수영 시인처럼 나는 오늘도 여전히 사소한 일에 분개한다. 버럭 하며 '감사'라는 단어를 잊는 순간이 많았다. 무해 무탈한 하루,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읽고 싶은 책을 맘껏 읽을 수 있고..... 생각해보면 감사하고 고마운 일 투성인데도 말이다.


오늘 아침에도 어느덧 편안해진 그녀들과 부스스한 얼굴로 아침 낭독을 하며 밝은 기운을 고, 이렇게 환한 햇살을 받으며 상쾌한 기분으로 일터로 향할 수 있음도 그지없이 감사한 일이다. 2년 전 건강에 이상신호가 와서 힘겨웠던 시간들을 떠올린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아프지 않았다면 더 감사한 일이지만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고통이었음도, 그 시간의 터널을 지나 이렇게 소소한 일상을 이어갈 수 있음도 고마운 일임을 잊고 살고 있는 즈음이다. 이 마음을 얼마나 오래도록 또 기억하게 될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지금 이 순간, 나와 그리고 내가 머문 여기에 오롯이 감사하며 세상 밖으로 걸어 나가는 가을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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