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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숙 Oct 12. 2022

그녀의 안녕을 빈다

가을이다, 아프지 마라

어제 아침 통화를 했을 때만 해도 그리 나쁘지 않았는데. 갑자기 바뀐 낯선 환경 때문일 것이라고 여기며 마음을 다잡는다. 밤새 안녕이라고 했던가. 처음에는 고관절 골절이 아닌 것만 해도 다행스럽다고 여겼는데 문제가 생각보다 커진 것이다.


올해 87세. 그동안 두 번의 골절 수술과 크고 작은 병치레를 하면서도 잘 견뎌냈던 그녀. 치매를 가장 겁내 하지만 웬만한 젊은이보다 더 총기가 좋고 늘 혼자서 무엇이든 해내려 했던 시간들이다. 지인들이 아픈 부모님 때문에 겪는 어려운 상황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곤 했었다.


그녀의 안녕에 문제가 발생하면 그 여파는 일파만파이다. 아들과 딸들 7남매와 가족들까지 초긴장하게 되고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에 모든 관심이 집중되는 것이다. 늘 사고는 사소한 일에서 비롯된다. 무심코 발을 잘못 내디딘 일이 신변을 크게 위협하는 단초가 되기도 하는 까닭이다. 예전에 더 큰 사고가 있었을 때도 잘 견디고 무사히 복귀하셨으니 이번에도 그렇게 될 것이라 믿는다.


당초 판단과 달리 갑자기 낯선 환경에 놓인 그녀가 심적 안정을 찾지 못하는 듯하다. 밤늦게 손자한테 전화를 걸기도 하고 실제 상황과 다른 엉뚱한 말들로 우리를 당황하게 한다. 하지만 마당 텃밭에 있는 들깨를 다 베어 정리했으며, 요즘 들어 벌레가 자꾸 생기는 감나무의 안위까지 걱정한다는 것은 여전히 그녀가 건강하다는 증거이다. 


간신히 여름 문턱을 넘어선 가을이 그 이름을 다 써보기도 전에 겨울 초입으로 걸어가는 즈음이다. 나태주 시인의 '가을이다 아프지 마라'는 시구처럼 그녀의 가을이 덜 아프게 잘 건너가기를, 그녀의 안녕을 간절히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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