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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숙 Oct 13. 2022

뺑소니의 마음

차를 긁어놓고 그냥 가버렸다

어제는 밤늦게 퇴근했고 오늘 아침에는 출근하느라 여유가 없었다. 사무실 근처에 주차하고 운전석에서 내리는데 뒷좌석 범퍼 쪽에 긁힌 자국이 눈에 들어온다. 차가 긁힌 것은 물론 페인트가 밀리면서 생긴 가루가 묻어있다. 차를 살펴보며 언제 그랬나 싶어 갸우뚱하는데 지나던 동료가 어제도 그 상태였다고 말한다. 그 말과 내 기억을 조합해 유추해보면 어제 오후에 누군가 긁고 그냥 간 상황인 것으로 미루어 짐작된다. 차 앞에 전화번호가 명기되어 있는데 아마도 블랙박스가 꺼져있는 걸 확인하고 그냥 지나쳤을 확률이 높다.


오랫동안 운전하면서 나 또한 여러 번 그런 기억이 있지만 그냥 도망친 적은 없었다. 연락을 하면 분명히 경비가 발생하고 번거로워지는 것을 알지만 사고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차주의 입장을 고려해 볼 때 그것이 맞는 행동이라고 믿는 까닭이다.


차에 난 생채기를 보면서 갑자기 범죄자의 마음이 궁금해졌다. 가끔 TV에서 회사 내에서 거금을 횡령하는 이들이 나오는 뉴스를 접하게 된다. 아주 평범한 서민의 입장으로 볼 때 저렇게 큰돈을 유용하고 매일 불안해서 어떻게 다리를 펴고 잤을까 싶다. 아마 바늘도둑이 소도둑 되듯이 처음이 어려울 뿐 횟수가 반복되다 보면 이래도 되는구나, 해도 괜찮구나 여겼을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액수와 횟수가 더 많아지고 늘어난 것이라 짐작해 본다.


살면서 아주 사소하지만 그냥 지나치기는 마음이 불편한 그런 상황들을 가끔 만나게 된다. 내 입장에서 보면 아무 일도 아닌 듯 하지만 상대방에게는 체감도가 크거나 어쩌면 아주 중요한 일일 수도 있다. 내차를 긁고 그냥 지나친 누군가 또한 별것 아닌 것으로 여기며 지나쳤을 수도 있고 알면서도 번거로움을 떠올려 모른 척한 것일 것이다.


나와 함께한 세월이 10여 년이 넘다 보니 이곳저곳 상처가 생긴 차, 필요할 때 사용하는 물건으로만 여길뿐 한 번도 제대로 살펴보거나 고마움을 느껴본 적이 있었는지 떠올려 보는 아침. 내 입장에서는 분명히 뺑소니인 누군가의 마음도 며칠은 그 순간을 떠올릴 때마다 조금은 불편했으면 하는 심술궂은 생각도 해본다. 크고 작음에 관계없이 사고 후 그냥 지나친 일은 올바르지 않은 결정이었으므로. 그 또는 그녀 덕분에 당분간은 나의 애마에게 좀 더 관심을 갖게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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