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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숙 Dec 21. 2022

엄마의 전화

오전 9시 휴대전화 진동이 울린다. 전화기 화면에 '엄마'라는 두 글자가 떠 있다. 며칠 안부전화도 못했는데 라는 생각이 스친다. 아무 일 없다는 듯 여유로운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다. 대뜸 "잘 지내니"라고 묻는 그녀.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지 알기에 씩씩하고 무심한 목소리로 "당연하지. 그게 뭐 대수라고" 큰 소리로 답한다.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그럼 그래야지"라고 토닥여준다.


전화기 넘어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 물으니 신협에서 야유회로 여수 오동도에 가고 있단다. 지금쯤이면 그곳도 썰렁할 텐데 오랜만에 먼 곳으로 콧바람을 쐬러 가는 것 자체만으로도 즐거운 시간이리라. 당일치기 일정이라 빡빡하겠지만 그 행사를 주관하는 중학교 친구의 안부까지 전해주시는 목소리가 환하다. "그래 무소식이 희소식이지". 며칠 동안 전화 한번 안 하는 무심한 딸의 안부가 퍽이나 궁금했을 것이다. 혹시나 마음에 생채기가 생기거나 기대했던 일에 실망이 커서 주눅이라도 들어있을까 염려했을 것이다. 기다리셨을 텐데 며칠 동안 가벼운 목소리로 전화 한번 드리지 못한 무심함을 다시 한번 자책하게 되는 순간이다.


늘 가까이 있어도 큰 위안이나 존재감의 정도가 작게 느껴지는 이들이 있고 자주 만나지 못하고 통화하는 횟수가 적어도 그 자체만으로도 힘이 되는 이들이 있다. 어떤 이의 시처럼 세상에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면 아마 그것은 내가 이 세상에 없다는 의미일 것이라는 말처럼. 그녀의 이름은 존재만으로도 늘 따스하고 힘이 된다. 


가장 힘들었을 시절. 큰 위안이요 버팀목이 되어줄 것이라 믿었던 시기에 그녀를 가장 서운하게 만들었던 큰딸. 그럼에도 동생들이 질투할 정도로 그녀의 가슴속에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으니 죄송스러운 마음이 더 크다. "엄마 기쁘게 해주려고 했는데 맘대로 안되네"라는 말에 "그게 뭐 별거라고" 하며 오히려 더 감싸주는 그녀. 그리고 나보다 더 흥분하며 위로해주는 동생들. 항상 무심함의 극치를 달리고 있음에도 안 좋은 일이 생기거나 아프다는 소식을 들으면 열일 제치고 나서주는 소중한 그들이다. 그들을 떠올리면 늘 미안한 마음이 앞서지만 그들이 가까이 또 멀리서 전해주는 다정한 마음 덕분에 살아갈 힘을 얻는 것이다.


항상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제 몫을 다 해주는 동생들에게는 평안과 기쁨 가득한 길이 펼쳐지길. 어느덧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며 버팀목이 되어주는 그녀에게 건강과 웃음만 넘쳐나길 기도하는 날. 오후쯤에는 아슴한 하늘에서 비가 아닌 눈이 내릴 듯하다. 오늘은 내가 먼저 그녀에게 전화로 안부를 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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