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공기를 두꺼운 외투깃으로 여미며 새벽을 걷는다. 일주일간의 긴 기다림의 결과를 확인하기 위한 가볍지 않은 발걸음. 3년 전부터 정기적으로 반복되는 새로운 일상이다.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을까 원망하지 않으려 애쓴다. 이 또한 내 삶의 한 부분이고 여정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까닭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날, 병원에 간다는 말에 눈이 반짝거린다. 어디가 아파서, 왜라고 묻고 싶다는 걸 알지만 대충 얼버무리고 만다. 또래 팀장이 너무 애쓰지도 열심히도 살지 말라며 훈수를 한다. 아마도 병증의 원인이 너무 열심히 살고 있어 그런 거라고 짐작하는 듯 해 아니라고 손사래를 친다.
매번 결심한다. 스트레스가 제일 나쁘다는데 마음 편히 살아야지, 자꾸 일 벌이지 말고 좀 여유롭게 채워야지, 조금 더 건강하고 가볍게 먹어야지라고.
하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다. 어느새 발을 담그거나 숟가락을 얹은 모임 개수는 열손가락이 모자란다. 글쓰기에 도움이 될까 고민하다 얼떨결에 대학에 편입해 수업을 소화하고 과제를 하느라 2년 동안 바쁜 일상을 보냈지만 무늬만 거창했고 정작 원하는 결과에는 미치지 못한 채 마무리했다. 이에 더해 느슨해진 식습관 탓에 몸은 자꾸 무거워져 뒤뚱거린다.
결심하면 시작은 잘하는데 오래 버텨내지 못한다. 그때마다 모른 척 외면하며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기도 하고 슬쩍 눈감아주고야 만다.
이제 3일만 지나면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 세월의 무게는 자꾸 무거워지지만 이제 삶은 가벼워져야 할 때다. 주변 사람들 눈치를 보며 사느라 나를 버겁게 할 이유도 없다. 이제 내가 하고 싶고 행복해지는 일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정리가 필요한 것들은 과감하게 가지치기를 해야 할 때이다. 조금 더 단순하게 조금 더 가볍게 살면서 나를 숨 쉬게 할 일이다
덜컹거리는 기차가 서서히 속도를 줄이고 안내방송이 흘러나온다. 기계음처럼 일정한 톤이 부담스럽지 않고 편안하다. 졸리고 피곤한 표정으로 이른 길을 나선 사람들의 꾸부정한 등을 바라보며 두 손을 모은다. 오늘도 무사히라는 바람을 듬뿍 담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