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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숙 Aug 28. 2022

콩순이의 기다림

기다림에 대하여

종일 뻣뻣했던 귀가 늘어지는 일

그녀의 신발에 내 온기가 스미는 일

까슬해진 입맛에 허리 헐렁해지는 일


엄마 집에 사는 강아지 콩순이의 허리가 나날이 헐렁해진다. 탄탄하고 야무졌던 뒤태도 느슨해졌다. 

밥도 잘 먹지 않는다. 엄마 표현에 따르면 죽지 않을 만큼 먹는 듯 소식한다. 그나마 입맛을 당기는 

새로운 음식들을 주면 조금 먹고 평소에는 거의 먹거리에 관심이 없다.


하지만 여전히 자동차 소리가 나면 정신없이 달려 나와 뒤로 발랑 누워 반가움을 표시한다. 동생 대신

엄마를 따라 마을회관에 가고 집 앞 텃밭에도 따라다니며 호위병 노릇을 마다하지 않는다. 야행성인 그녀는 

한낮에는 눈이 늘 게슴츠레하다. 졸린 눈을 어찌하지 못하면서도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선잠을 잔다.


그녀의 간식을 챙기고 매일 함께 산책을 다니며 애지중지하던 동생이 서울로 떠난 뒤 콩순이는 반쪽이 됐다.

엄마가 계란을 삶아주고 두유를 먹이며 아무리 열심히 챙겨도 입맛을 찾지 못하는 것이다. 엄마는 외식을 하는 날이면 남은 음식을 부지런히 챙긴다. 아마도 별식이라 콩순이가 잘 먹을 것이라는 기대감에서다. 동생이 집을 비운 뒤로 콩순이는 잠자리는 동생 신발 위이다. 그녀의 온기가 남아있다고 믿는 것일까. 동생이 신던 신발에는 콩순이의 털이 나날이 쌓여가고 있다.


그녀에게 기다림을, 기다리는 이의 애틋한 마음을 배운다. 콩순이 기억 속에 동생은 얼마나 소중한 사람으로 자리하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그 깊이가 어느 정도이길래 입맛까지 잃어버렸을까. '엄마, 콩순이 왜 자꾸 말라'라는 말이 가장 듣기 싫다는 엄마. 귀찮다고 지청구하면서도 자꾸 야위어가는 그녀를 염려하는 마음이 묻어난다. 동생을 기다리며 야위어 가는 콩순이와 늘 자식들을 기다리는 엄마의 모습이 닮은 듯 여겨져 괜스레 마음이 애잔하다. 우리는 아니 나는 누군가를 저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려본 적이 언제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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