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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숙 Aug 30. 2022

길치로 산다는 것

길치의 서울행

언제부터였을까. 주의 깊게 살피지 않으면 낯선 장소에서 화장실이라도 갈라치면 제자리로 돌아올 때 그 작은 공간에서도 헤매는 날이 있다. 더구나 지방에서 오래 살다 보니 서울이라도 한번 가야 하는 날엔 온 식구가 비상이다. 사실 혼자 가는 것도 자신 없지만 찾다가 못 찾아가면 물어 물어 가도 된다. 요즘엔 핸드폰 네비를 비롯해 다양한 교통 앱까지 도움받을 수 있는 다양한 방법도 있다. 그럼에도 어쩌다 서울을 가게 되면 엄마는 동생들에게 비상령을 내렸고, 가족들 또한 보호자로 따라나서는 것이 불문율이 되었다. 나 또한 자연스레 누군가 동행하거나 마중을 나오리라 기대한다. 


이번 서울행도 그렇다. 간단한 일정이라 혼자 가볼까 생각했는데 아들이 휴가를 내고 마중을 나온다는 것이다. 혼자 간다는 말에 맘이 쓰여 절대 안 된다며 얼굴도 보고 함께 영화도 보자고 제안한다. 한 달에 하루뿐인 휴가를 쓰는 것에 미안한 맘도 있지만 서너 번 거절하다가 동행하기로 약속을 정했다. 결론적으로 이번에도 아들과 딸 덕분에 헤매는 불상사 없이 일정을 잘 마치고 즐거운 시간도 보냈다.


길치의 병증은 골목길에서 더 발동한다. 내비게이션을 켜고 운전해도 큰길은 잘 찾아가는데 갈래길이 좁고 많아지면 거리 감각이 떨어져 헤매는 것이다. 서울행에서 가장 어려운 과제는 지하철을 이용하는 일이다. 정신을 집중하고 걸으면 그나마 덜한데 동행자가 있을 경우는 그 증상이 더 심해진다. 믿는 구석이 있어 이정표를 잘 살피지 않고 뒤만 졸졸 따라다니다 보니 여러 번 갔던 곳도 잘 찾지 못하는 현상이 반복되는 것이다. 그나마 시시각각 교통상황을 알려주는 네비와 지하철  이용 앱이 나날이 업그레이드되고 있다는 것이 다행스러울 뿐이다. 


 2년 전 서울을 자주 가야 할 때가 있었다. 그때도 가족과 동생들은 내 일처럼 여기며 바쁜 일정을 뒤로하고 서로 보호자 노릇을 자청했다.  그들은 혹시나 내가 길을 헤맬까 기차역으로 마중을 나오고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에 탑승하는 것까지 확인하고 나서야 안심하는 얼굴로 돌아서곤 했다. 길치인 덕분에 가족들의 사랑과 배려를 몸으로 체험했던 것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아닌가 하며 별것 아닌 일로 여길 수 있지만 사실 쉽지 않다는 것을 나 또한 경험으로 알고 있기에 더욱 고마웠던 시간들이다. 


길치는 때론 불안하고 누군가에게 민폐가 된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내 경험상으로는 덕분에 가족들과 더 가까워질 수 있고 따뜻한 시간을 함께 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행복한 병이다. 나날이 바쁘고 복잡해져 가는 현대사회에서 길치로 산다는 것은 여전히 불편함이 많겠지만 앞으로도 당분간 길치 탈출은 고민하지 않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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