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똘리 Oct 03. 2022

24시간 붙어있으니 다사다난하구나

삐뚤빼뚤 우리 관계


우리는 정말 말 그대로 24시간을 함께 있었다. 우리의 사이가 단 1m도 떨어지지 않는 그런 생활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고 일어나 눈 뜨자마자 학교 갈 준비를 하고, 기숙사 앞 마트에 가서 아침을 구해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갔다. 둘이 러시아어 수준은 고만고만하니 제일 낮은 레벨의 같은 반에 들어가게 되었다. 수업은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수업이 끝나면 저녁은 또 무얼 먹어야 하나 고민하며 트램을 타고 기숙사 근처 마트를 갔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엔 하루 한 끼 사서 하루 안에 먹어치워야 했기 때문에 장을 매일 봤다. 저녁을 해 먹고 숙제를 하면 밤 12시. 다들 첫 1년은 즐기면서 보낸다는데, 우리는 즐길 수 없었다. 숙제가 빡세거나 많아서 그런 게 아니고 그냥 우리가 러시아어를 심각하게 못 하니까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이렇게 우리의 하루는 돌아갔다.


그냥 이런 평범한 유학생 생활인데 부부 사이에 무슨 일이 있을까 싶지만 생각보다 많은 일이 있다. 함께 모든 일을 같이 해야 하는 만큼 충돌이 많았다. 결제할 때 쿠폰을 썼니, 안 썼니, 여권은 왜 안 가지고 나왔는지, 카드는 어디에 뒀는지,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등. 이렇게 적어놓고 보면 정말 별 일이 아닌데 둘 다 예민한 생활을 이어가다 보니 서로를 이해해줄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가끔은 마트에 손을 잡고 들어갔다가 나올 땐 서로 떨어져 집에 돌아오기도 했다. 멀쩡히 같이 점심을 먹다가도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가 갑자기 핀트가 어긋나면 그대로 말없이 밥만 먹고 나와서 다시 수업을 들으러 간 적도 있다.



밖은 나가면 러시아어 투성이 - 그 말은 우리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가는 곳곳마다 있다는 것. 그리고 이렇게 우리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다니느라 여유는 없었다는 것. 이런 작은 것들이 쌓여 서로의 마음을 챙겨줄 여유가 없었나 보다. 거기에 우린 결혼한 지 2달도 되지 않은 상태인 데다 연애할 땐 결혼 준비하느라 바빴고 충돌할 일 없이 그저 즐거웠다. 또한 친구로 지낸 세월이 10년 이상이라 성격, 가치관 등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결혼은 또 달랐다. 연애할 땐 한 번도 싸워본 적 없었고 나는 성인이 된 이후로 누군가와 말다툼조차 해본 적이 없어서 사람과 관계가 안 좋으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러시아어 공부하랴, 께 사는 생활을 맞춰가랴 바쁜데 일단 언어 문제가 가장 심각하니 우리 관계에 대한 생각은 뒷전이었다. 그저 저 사람은  저럴까..


한 번은 아침에 따로 학교를 간 적이 있었다. 내가 먼저 학교에 도착해서 화장실을 갔는데 화장실 창문으로 보이는 남편이 걸어오는 모습. 화가 단단히 나서 앙 다문 입. 치켜 올라간 눈썹. 화가 난 것 같은 발걸음. '밉다 미워!'


사이가 안 좋아도 우린 짝꿍인걸

우린 늘 맨 앞자리에 같이 나란히 앉아 수업을 들었다. 그리고 화장실을 가는 거 빼곤 늘 한 세트로 붙어 다녔다. 그러니 아무리 기분이 안 좋은 상태로 교실 안에 들어갔다 해도 그걸 남들한테 티 내면서까지 따로 앉을 순 없었다. 서로 미워도 그 자리에 나란히 같이 앉았다. 문제는 수업 시간엔 항상 짝꿍이랑 같이 해야 되는 과제들이 있었다. 그런 날에도 어김없이 그 시간은 찾아왔다.

유치원 같았던 러시아어 수업


물론 이런 힘들었던 시간보다 알콩달콩 즐겁게 보낸 시간이 훨씬 더 많다. 하지만 내 기억 속엔 이 힘들었던 몇 번의 경험들이 너무 생생하게 자리 잡고 있다. 지금은 웃으며 추억할 수 있는 소중한 기억이 되었지만.


사고뭉치인 나 때문에 사이가 안 좋아지는 경우도 많았는데, 이럴 때마다 차라리 그냥 혼자 사고 치고 혼자 해결하면 아무 일도 아닌데 괜히 남편한테도 미안해지고 더 힘들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