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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보호자 06화

청하 이모

by 솜Som


어두운 방. 차가운 공기.

따뜻하게 날 덮어줄 수 있는 이불은 갈기갈기 찢겼다.

깨진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은 뼛속까지 파고들어 온몸을 굳게 만들었고

책상과 의자, 책들과 액자는 방바닥 위를 나뒹굴었다.


“쓸모없는 것들.”


아버지가 나와 언니를 보며 하시던 말씀이었다.

술만 마시면 물건을 던지고 아픈 어머니가 힘들게 벌어온 돈을 마음대로 가져가고 요구한다.

가족들에게 함부로 대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랑 한 지붕 아래에서 같이 살아야 했다.


도망치지 않고 이 과정을 반복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 너무 이해되지 않았다.

엄마를 이해하기에도 아빠를 이해하기에도 지쳐버린 나는 집이란 공간이 너무나 차갑고 두려웠다.


깎지 않은 수염과 운동을 하지 않아 잔뜩 쪄버린 살.

자신은 배운 게 없어서 이렇게 산다고 한탄하며 항상 술, 담배에 돈을 썼다.

어느 날 빠진 도박에 집에 있는 모든 것들을 팔아버렸고 틈만 나면 폭력을 행사했다.

가정을 등져버린 아버지라는 사람은 나에게 늘 공포였다.


언니는 늘 겁에 질린 나를 챙겨주었고 아버지를 ‘무식한 술주정뱅이’라 놀리듯 부르면서

어머니와 날 항상 지키려 노력하고 위로했다.

하지만 그런 우리를 더욱 못살게 구는 오빠라는 인간은 언니가

아버지를 놀리며 이야기한다는 사실을 아버지에게 알렸고

그날 주영 언니는 피 멍이 들도록 두들겨 맞았다.


그렇게나 아프게 맞고도 내가 걱정할까 봐 날 보며 그저 웃던 언니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그리고 언니는 날 더 따뜻하게 안아줬다.


내가 19살이 되던 해.


어머니가 복통을 호소하시며 갑작스럽게 쓰러지셨다.

급하게 병원으로 옮겨진 어머니를 응급실에 있는 의사가 살피더니 곧이어 수술실로

옮기라고 소리쳤다.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 탓에 수술실 밖에서 멍하게 쭈그려 앉아있었다.


수술을 할 정도로 아픈 어머니가 걱정되었다. 하지만 어마어마한 병원비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방탕한 아버지로 인해 가계가 불안한 우리 집 형편으로는 어머니의 병원비를 지불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가난한 게 싫었다. 내가 누군가를 보호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보호받지도 못하는 불안함.


“…청하야..?”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언제나 씩씩하게 웃어주던 언니가 눈물을 흘리며 날 쳐다보고 있었다.


“언니…”


언니가 날 꼭 껴안았다. 눈물이 터져 나왔다. 울고 있는 언니를 보니 가슴이 너무 아팠다. 서러웠다.

수술실 앞에서의 언니와 나의 울음소리는 보이지 않는 감정들과 언어가 뒤섞여있었다.

우리가 아니면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많은 아픔과 인내의 시간들이 언니와 나의 울음 속을 둥둥 떠다녔다.

서로의 이야기를 했다.



몇 달 뒤

엄마는 돌아가셨고 언니와 나는 집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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