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9일(토)]
점심 식사도 하고 필요한 물건도 살 겸 해서 DLF몰 노이다로 갔다. 호텔 방 내부공사 때문에 사흘 만에 하는 외출이었다. 혼자 레스토랑 ‘칠리스’에서 식사를 했다.
레스토랑에서 청소 도구를 들고 오가는 50~60대 몽골계 남성이 자꾸 눈에 밟혔다. 살이라곤 거의 없는 깡마른 몸이었다. 인도 동북부 출신 같았다. 도시로 나와 돈을 버는 가장으로 추측됐다.
식사를 마치고서 ‘홈센터’ 매장에 가서 보조 책상으로 쓸만 한 것을 찾았다. 약 4천루피였다. 직원을 통해 알아보니 물건을 주문하면 나흘 후에 거주지에 배달한다고 했다. 나는 ‘당장 필요하지는 않다’며 다음에 구매를 검토해보겠다고 했다.
다른 가게에 가서 플라스틱과 스테인리스 철제 봉으로 조립할 수 있는 4단짜리 이동형 물품 수납장을 구입했다. 집에 도착해 간단히 조립할 수 있었다.
노동하는 토요일이어서 오후 들어 관할 국가군에 사건사고 등 특이사항이 없는지 온라인에서 둘러봤다. 별다른 일이 없었다.
오전에 인도 연방하원 의원이 기업인에게 돈을 받고 기업에 유리한 질의를 했다는 의혹으로 퇴출당했다는 기사를 송고했다. 평소 정부 여당을 날카롭게 비판해온 해당 의원은 정부가 비판의 목소리를 잠재우고자 이런 조치를 취한 것이라며 의회 밖에서도 계속 싸우겠다고 했다.
또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최근 수주 동안 자국에 로힝야족 난민이 쇄도하게 된 것은 국내 인신매매 조직 때문으로 보고 강력히 강력히 단속하겠다고 밝혔다는 내용도 송고했다.
무슬림인 로힝야족은 불교 다수국 미얀마에서 탄압을 피해 인접국 방글라데시로 피신하고 있다. 하지만 방글라데시에 형성된 대형 난민촌의 삶도 힘들어 일부는 인도네시아나 말레이시아 등 여타 무슬림 다수국으로 다시 이동하고 있다.
특히 지난달 중순부터 1천명 이상이 목선을 타고 인도네시아 수마라트섬 아체주로 잇달아 이동했다. 아체주 주민들은 자신들의 삶 공간에 들어오려는 이들을 반대하는 상황이 됐다. 인도네시아 정부로서는 로힝야족 유입을 놓고 곤혹스러운 국면에 처하게 됐다.
로힝야족처럼 지구에서 고난받는 이들이 많다. 로힝야족처럼 차별과 탄압 받는 소수민족, 권리를 인정받지 못해 차별대우를 받는 성소수자,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인들, 열악한 환경에 처한 여러 아프리카 국가 사람들, 한국 등 외국에서 일하는 차별받는 노동자들 등등이다.
[2023년 12월 10일(일)]
큰 아들 생일이다. 벌써 30세에 육박하는 나이가 됐다. 가족 단톡방에 축하 인사가 많이 오간 뒤 나는 뒤늦게 인사를 전했다. 외국에서 혼자 공부하며 혼자 끼니를 해결하는 모습이 늘 대견스럽다.
2주 만에 성당에 나가 미사를 봤다. 재인도한인회 부회장을 지낸 지인과 아내, 아들이 입교를 위해 성당에 나왔다. 전 부회장은 이전에 저녁을 함께 먹은 적이 있다.
미사가 끝난 뒤 사목회 부회장이 사목회 감사를 맡아달라고 내게 요청했다. 한인 성당 공금 사용의 적정성을 따지는 역할이란다. 맡기로 했다. 이어 점심은 교우들과 함께 그린파크 구역에 있는 한식당에서 먹었다.
점심 자리에서는 이야기가 오가는 도중 '재인도한인회'와 '재인도한인회총연합회'가 재외동포청에 등록돼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재인도한인회만 등록된 단체인 것으로 알고 있었다.
암튼 두 한인단체 모두 등록단체이고 재외동포청에 사업을 하겠다고 신청하면 적정성 검토를 거쳐 기금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점심을 먹고 나서 귀가했다. 1시간 30분 정도 쉬었다가 오후 4시 50분부터 안살프라자에서 열리는 한국과 인도간 수교 50주년 행사에 참가했다.
외줄타기, 판소리 K팝 등 공연이 예정돼 있는데, 벌써 현지인 3천명이 모였다고 한다. 행사장 입구에서는 티켓을 무료로 제공하면서 참가자수를 카운팅했다.
몰려든 사람 99%는 10대와 20대 여학생들이었다. 행사장 한켠에는 기아차와 현대차가 전기차를 전시해놨지만 파리만 날리는 듯했다.
현대차에 한번 시승하고 가격을 물었더니 45랙(약 7천100만원)이라고 했다. 행사 전에 모여 담소를 나눌 수 있는 공간에서 핑거푸드를 먹으며 사람들과 인사를 나눈 뒤 1시간도 안돼 귀가했다. 2주에 한번 돌아오는 휴일 마지막 남은 몇 시간을 집에서 쉬고 싶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