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나는 부지런히 걸어왔다. 걷다가 지치면 속도를 늦추기도 하고, 어느 돌부리에 걸터앉아 잠시 쉬기도 했다. 그러나 오래 머무르지는 않았다.
내게 주어진 일들과 나의 성장을 위해 일구어야 하는 일들이 나를 일으켜 세웠기 때문이다. 때로는 발걸음이 무거워 더 쉬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지금보다 나은 미래를 기대하며 다시 걸었다.
이 몇 줄의 글을 쓰는 동안 지난날들이 스쳐 지나가며 마음이 찡했다. 삼키기 힘든 감정이 목을 막았지만, 그 무거움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 감정은 내가 지나온 길에 대한 증거이자,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리라 믿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많은 이들은 어느 순간부터 은퇴를 고려하거나 안정적인 자리를 찾는 시기에 접어든다. 그 시기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대개중년이라 부르는 50대 중후반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여전히 할 수 있는 것이 많고, 충분히 잘 해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내가 마주한 현실은 나이 든 사람을 쉽게 인정하지 않았다. 나는 그 현실의 일부가 되어 오묘하고 슬픈 감정을 마주했다.
삶을 일구는 과정에서 선택의 오류로 인해 잠시 놓았던 것을 다시는 잡을 수 없게 된 적이 있었다. 노력했지만 결과는 언제나 나의 기대와는 달랐다. 그러나 실패와 좌절은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며 더 깊이 생각하게 만들었다.
생각은 단순히 '오늘 저녁에 뭐 먹을까?'를 떠올리는 것이 아니다. 생각은 '끊임없이 변하는 삶의 상황 속에서 나를 이끌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신뢰하던 사람들로부터 실망감을 느낀 적도 있지만, 그때마다 나를 다시 중심으로 되돌리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살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나에 대해 고민했고, 나에 대해 생각했다. 오랜 시간 고민했다. 다시 일어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지만, 내 안에서 작고도 소중한 기억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선생님께서 내가 쓴 글을 칭찬하며 아이들 앞에서 읽게 했던 기억이다. 그 순간의 벅참은 내가 지금도 잊지 못하는 소중한 기억이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그 칭찬 한 마디가 내게 큰 힘이 되었다. 그리고 그 기억은 지금 내가 글을 쓰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나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담임선생님의 강렬했던 칭찬이 내 안에서 여전히 나를 일으켜 세우고 있다.
시간이 더 지나면, 예기치 못한 여러 상황으로 인해 지금보다 더 많은 기회가 줄어들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전에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것은 나를 움직이게 하였고, 나는 지금 글을 쓰고 있다. 이 선택이 내 삶을 새롭게 만들어줄 것이라고 믿는다. 글쓰기를 통해 내 이야기를 전하고,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가고자 한다.
그동안 나는 나의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 애썼다. 일기도 쓰지 않았고, 그나마 썼던 일기도 모두 읽어보고 버렸다. 사진도 잘 찍지 않았다. 왜냐하면, 사람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는 말을 깊이 공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생각이 달라졌다. 아니, 생각이 달라졌다기보다는 내가 괜찮아지려고 소홀하게 다루며 외면했던 내면의 다른 생각에 시선을 두었다. 마치 우물에서 물을 퍼 올리듯이 의식적으로 그것을 끌어올렸다.
내면의 슬픔을 덮어두었던 나의 20대 시절, 엄마의 죽음은 나를 외롭게 만들었고, 그 슬픔을 마주하는 것이 두려웠던 나는 스스로의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 했던 것 같다. 이제는 그 슬픔을 피하지 않고 주저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프기는 하다. 이것까지 나는 받아들인다.
사람이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함께하기 위함이다. 함께한다는 것은 단순히 시간을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마음과 경험, 감정을 나누고, 그 안에서 성장해 가는 것이다. 그래서 나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작은 여운이 되어 그들에게 힘이 될 수 있다면 나는 더 바랄 것이 없다.
그것이 나의 소임인양 지금 글을 쓰고 있다. 이 길이 쉽지 않겠지만,나는시작했고나의 성숙기와 함께 걸어갈 것이다. 그리고 그런 나를, 나는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