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과 짧은 머리
나이가 들수록 자신을 돌아보는 순간이 많아진다. 거울 속의 나를 보며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내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또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더 나답고 멋질지 고민하게 된다. 그중 하나가 바로 '머리'다. 젊었을 때는 머리카락이 찰랑거리고 윤기 나며 나의 젊음과 건강을 자랑하듯 빛났다. 그러나 이제는 머리카락도 나와 함께 나이를 먹었다. 텁텁하고 힘없이 늘어진 머리칼을 보며, 어떻게 이 변화를 받아들여야 할지 매일 고민한다.
한 친구가 긴 머리를 과감히 자르고 단발로 변신했다. “이제 긴 머리가 나한테 어울리지 않더라. 내가 보기에도 너무 길고 지저분해 보였어.” 친구의 말에 공감하며 함께 웃었다. 이어 남편의 “입대하냐?”라며 놀리듯 말한 반응에 더 웃었다고 했다. 긴 머리에서 짧은 단발로 바뀐 친구의 모습이 남편에게 어색하게 보였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 친구의 용기에 박수를 보냈다. 변화를 받아들이는 결단, 자신에게 어울리는 것을 찾아가는 대담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왜 나이가 들면 머리가 짧아지는 걸까? 젊었을 때는 긴 머리가 잘 어울렸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는 걸 스스로도 느끼게 된다. 윤기가 흐르던 머리카락은 조금씩 푸석해지고, 길게 늘어질수록 얼굴의 주름과 늘어진 피부가 더 부각돼 보인다. 반면에 짧은 머리는 얼굴선을 또렷이 드러내고, 생기 있는 이미지를 만들어 준다. 그래서 짧은 머리는 기분전환이나 스타일의 변화가 아님을 알아간다. 가끔 긴 머리를 유지하며 추억을 붙잡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짧고 경쾌한 스타일이 오히려 나를 더 환하게 보이게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 역시 긴 머리를 자를 때 많은 고민을 했다. 긴 머리를 짧게 자르는 결정은 단순한 외모의 변화가 아니다. 그것은 나이를 받아들이는 과정이자, 변화에 적응하는 용기의 표현이다. 사실, 긴 머리가 내게 더 이상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인정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여기에는 나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새로운 자신감을 얻기까지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긴 머리는 젊음의 상징처럼 느껴졌고, 그것을 자른다는 것은 과거의 나와 작별을 고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짧은 머리를 하고 난 뒤, 나는 거울 속에 비친 나를 보며 웃을 수 있었다. 나이 든 나를 인정하고 지금의 나를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떠올리는 중년 여성의 이미지에는 흔히 짧은 뽀글이 파마머리가 떠오른다. 과거에는 그것이 가족을 위해 헌신한 여인의 상징처럼 보였다. 시간을 들여 자신을 돌보기보다는 가족을 위해 살았던 세대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이제는 자신을 돌보는 여유와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아가는 모습이 더 흔하다.
이제는 짧은 머리가 나이 들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신호가 아니다. 그것은 생기를 더하고, 활기를 불어넣는 선택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더 이상 불편한 진실이 아니라, 자신을 새롭게 꾸미고 발견할 수 있는 기회이다. 짧은 머리를 선택하는 것은 과거의 나와 작별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나를 더 사랑하고 앞으로의 나를 설계하는 과정이다.
길게 기른 머리가 한때 여성성의 상징이었다면, 이제는 나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 내게 머리를 자르는 것은 나를 더 잘 이해하고, 내 삶의 방향을 다시 한번 점검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친구가 긴 머리를 자르고 단발로 변신한 모습이 대담해 보였던 것은, 그 속에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냈기 때문일 것이다.
나이가 들며 머리카락이 얇아지고 피부에 주름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변화다. 하지만 그 변화를 받아들이며, 나만의 스타일을 찾아가는 것은 우리의 삶을 더 다채롭고 멋지게 만들어 줄 것이다. 그래서 성숙기의 짧은 머리는 과거의 상징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자신을 재창조하는 여정의 일부이다.
오늘도 거울 앞에 서서 짧아진 머리를 매만진다. 긴 머리에 담겼던 나의 젊음과 추억은 여전히 소중하지만, 짧은 머리에 담긴 현재의 나도 소중하고 빛난다. 짧아진 머리는 나를 사랑하며 나답게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가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