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수록 문득문득 눈물이 많아지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슬픈 드라마의 한 장면에도, 지나가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에도, 남의 사연 하나에도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거 호르몬 탓 아니야?’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나이가 들면 다 그래’라며 덤덤히 말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이 눈물은 단순히 몸의 변화만이 아닌 거 같다. 그것은 삶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더 깊은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얼마 전부터 다시 보기 시작한 드라마, 응답하라 1988. 한 편, 한 편 볼 때마다 그 시절의 풍경, 사람들, 그리고 나의 지난날이 어른거린다. 드라마 속 골목길, 다닥다닥 붙은 집들, 공중전화기, 연탄, 간판. 그런 사소한 디테일 하나하나가 그 시절을 살았던 나를 강하게 끌어당긴다.
덕선이네 가족은 밥상에 둘러앉아 언제나 소란스럽게 밥을 먹는다. 아버지가 농담을 던지고, 어머니가 반찬을 더 챙겨주는 그 소소한 장면들. 화면 속에서 들려오는 덕선 아버지의 목소리와 어머니의 된장국이 따뜻하고 아련하다. 그때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상이, 이제는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한 장의 사진처럼 마음을 저미게 한다.
그날 밤, 드라마를 보고 난 후에도 마음이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음악, 풍경, 옷차림 하나하나가 과거의 나를 찾아가게 했다. 그 시절 나는 무엇을 고민하고, 무엇을 꿈꿨는지 떠올라 마음이 따끔거렸다.
이 드라마는 그저 과거를 그리워하게 만드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내가 미처 남겨놓지 못했던 나의 일상을 기록해 둔 것이다. 드라마는 마음 깊은 곳에 묻어둔 기억을 꺼내게 한다. 어린 시절, 그리고 젊은 시절, 우리가 얼마나 많은 사랑과 애정을 받고 자랐는지를 상기시킨다. 성숙기가 되면, 지나온 시간들이 빠르게 사라져 버린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하지만 눈물은 그 시간들이 여전히 우리 안에 살아 있음을 말해준다.
성숙기의 눈물은 그리움만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더 깊이 살아가도록 이끄는 힘이다. 과거의 따뜻함을 떠올리며, 현재를 더 소중히 여기게 만들고, 앞으로 다가올 시간들을 더 감사하게 느끼게 한다. 그 눈물 덕분에 과거와 연결되고, 현재를 살피며 미래를 준비한다.
그러니 드라마를 보며 흘린 눈물도, 과거를 떠올리며 느끼는 가슴 저림도 모두 괜찮다. 그것은 우리가 여전히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이고,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갈 힘이 되어줄 것이다. ‘응답하라 1988’을 보며 울컥한 순간들은, 결국 내 삶의 따뜻한 추억과 연결된 선물 같은 시간이다.
눈물은 성숙기에 접어든 우리가 살아온 시간을 증명한다. 어린 시절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감정들이 이제야 밀려오는 것이다. 어린 시절에는 세상이 흑백처럼 단순했다면, 성숙기의 눈물은 그 단순함의 무게와 복잡함을 이해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젊은 시절에는 부모님의 희생을 그저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왔지만, 중년이 되어 직접 부모의 입장이 되어 보니 그 희생의 무게를 알게 된다. 그래서 부모님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저리고, 고마움과 미안함이 뒤섞인 눈물이 난다.
이 눈물은 우리 안에 쌓인 기억과 추억, 그리고 사연들을 다독이는 시간이기도 하다. 성숙기의 눈물은 우리가 겪었던 아픔, 기쁨, 아쉬움이 섞인 복합적인 감정의 언어다. 다시 말해, 우리의 눈물은 지나온 날들에 대한 기록이며, 남은 시간을 대하는 태도이다.
눈물이 많아지는 성숙기가 너무 감정적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눈물은 감정의 과잉이 아니라 감정의 성숙이다. 성숙기의 눈물은 슬픔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해소하고 삶을 이해하는 과정이다. 어쩌면, 눈물은 감정이라는 심연 속에서 자신을 치유하는 힘을 지닌 도구일지도 모른다.
슬픈 드라마를 보면서 우는 자신이 어색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눈물이 타인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연결되는 과정이라면, 그것은 결코 부정적인 것이 아니다. 우리가 느끼는 눈물은 삶에 대한 애정, 사람에 대한 연민, 그리고 지나온 시간과 앞으로 다가올 날들에 대한 깊은 감사와 존중이 깃들어 있다.
얼마 전 한 친구가 들려준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다. 시장에서 귤을 고르던 친구가 주인아주머니와 나눈 짧은 대화였다. “이 귤 맛있나요?”라고 물었더니, 주인아주머니가 환하게 웃으며 “아유, 우리 손주가 참 좋아했어요. 방학 때마다 여기 와서 귤 까먹으며 놀곤 했죠.”라고 말했다. 그런데 말끝에 살짝 떨리는 목소리를 들은 친구가 조심스레 물었다. “지금은 잘 못 오나요?” 아주머니는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외국에 있어요. 맛있다고 웃던 그때가 자꾸 생각나네요.” 그 순간, 아주머니의 눈을 보고 친구는 자신도 모르게 목이 메어왔다고 했다. 그날 친구는 사 온 귤을 까먹으며 생각했다. “귤 한 알에도 이렇게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니.” 친구는 귤을 먹으면서 그 안에 담긴 추억과 사랑을 음미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눈물이 그저 감정을 분출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순간들을 더 깊게 느끼게 하는 방식임을 보여준다.
성숙기의 눈물은 공감의 언어이다. 그것은 우리가 타인의 이야기를 더 잘 듣고, 그들의 삶을 더 깊이 이해하게 만든다. 또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허락하며, 지나온 시간 속에서 성장의 흔적을 발견하게 한다. 우리는 성숙기의 느림 속에서 눈물을 통해 진정한 여유와 지혜를 배운다.
눈물이 많아지는 것, 그것은 나약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우리의 삶이 더 넓어지고 깊어졌음을 의미한다. 그 눈물은 지나온 시간에 대한 경의와 앞으로의 시간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 줄 자양분이 된다.
그러니 드라마를 보며 눈물을 흘리는 것도, 귤 한 알에 담긴 사연에 목이 메는 것도 모두 괜찮다. 성숙기의 눈물은 우리의 감정을 치유하고, 삶의 무게를 가볍게 해 주는 가장 인간적인 방식이다. 그 눈물을 통해 우리는 더 따뜻한 사람이 되어가고, 더 많은 사랑을 담을 수 있게 된다. 어느 날 다시 마주할 눈물 속에서도 스스로를 다독이며 이렇게 말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