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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기, 삶에 색을 입히다

중년의 옷색깔

by 노에마


몇 달 전 옷장을 정리하다가 옷들이 대부분 검정, 회색, 네이비라는 것을 발견했다. “이게 언제 이렇게 무채색 천국이 된 거지?” 스스로도 놀랐다. 20대, 30대 시절의 나를 떠올려 보니, 그때는 어떤 옷을 입어도 잘 어울렸고 무채색이 오히려 세련돼 보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이런 색깔들이 생기를 주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됐다.

얼마 전 길을 걷다 빨간 코트를 입은 한 아주머니를 봤다. 너무 강렬해서 눈에 확 들어왔다. "어떻게 저렇게 과감한 색을 선택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 전, "와, 저 색감 좀 봐! 너무 예쁘다"는 감탄이 먼저 나왔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가 입는 옷의 색깔은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얼굴과 마음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젊은 시절에는 피부가 빛나고 머리카락이 찰랑이며 눈이 반짝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생기가 넘쳤다. 그래서인지 굳이 알록달록한 색을 입지 않아도 무채색이 차분하고 어른스러워 보인다고 여겼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몸에서 밝은 색이 빠져나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피부는 점점 투명해지고 머리카락은 희끗희끗해지며 얼굴도 흐릿해지는 듯하다. 그런 흐릿함 속에서 검정이나 회색은 얼굴을 더 어두워 보이게 만들고 심지어 피곤해 보이기까지 한다. 반면, 밝은 옷을 입으면 얼굴에 생기가 돌고 표정도 더 화사해진다. 이건 단순히 기분 탓이 아니라 색이 얼굴에 반사되는 효과 때문이라고 한다.



색채 심리학에 따르면, 색은 단순한 시각적 요소를 넘어 우리의 감정과 에너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밝은 색상은 빛을 더 많이 반사해 피부에 자연스러운 광채를 더해 준다. 노란색과 밝은 분홍색은 따뜻함과 생동감을 더하며 얼굴 톤을 건강하게 만들어 준다. 반면에, 검은색이나 회색 같은 무채색은 빛을 흡수하는 특성 때문에 얼굴을 어두워 보이게 하고, 자칫하면 피로감을 강조할 수 있다. 또한, 색은 심리적 효과를 통해 자신감을 높여 주기도 한다.

밝은 색을 입었을 때 느껴지는 활력과 긍정적인 에너지는 단순히 외모의 변화뿐 아니라 내면의 기분과 태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밝은 색 옷을 선택하는 것은 나이 들어가는 과정에서 사라지는 생기를 다시 불어넣는 하나의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요즘 나는 의식적으로 밝은 색 옷을 선택하기 시작했다. 노란 셔츠, 보라색 스웨터, 분홍빛 스카프까지. 처음엔 거울 속 낯선 내 모습이 어색했지만, 곧 익숙해졌다. 얼마 전 노란 셔츠를 입고 친구들과 만났더니 한 친구가 “너 오늘 왜 이렇게 생기 있어 보이니?”라고 했다. 그 한마디에 더 이상 밝은 옷을 주저할 이유가 없어졌다.



색깔은 패션의 요소를 넘어 삶의 태도를 반영한다. 무채색이 우리를 차분하게 만들어 줄 때도 있지만, 밝은 색은 우리의 기분을 끌어올리고 삶에 생기를 더해 준다. 알록달록한 옷을 입는 것은 삶에 대한 긍정과 애정을 보여주는 방식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우리의 몸과 마음에 변화가 생기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생기를 되찾고 스스로를 더 사랑할 방법을 찾아간다. 알록달록한 옷을 입는 것도 그 방법 중 하나다. 다음에도 밝은 옷을 입고 거울 앞에 선 나를 보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 정도면 정말 괜찮아, 충분히 예뻐.”


나이가 들어갈수록 빠져나가는 색을 보충하고 생기를 되찾는 것은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일이다. 밝은 옷을 입는 것은 외적인 변화를 넘어 우리를 더 젊고 건강하게 살아가도록 돕는다. 삶에 색을 입히는 용기, 그것이야말로 성숙기를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비결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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