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일에 대한 생각
내 최초의 제대로 된 직업은 '비서'였다. 별의별 아르바이트를 안해본 게 없었지만 풀타임 잡으로 오랫동안 하게된것은 뜻밖에도 비서였다. 97년 가을부터 99년 겨울까지 근 2년반 동안 낮에는 비서일을 하고 저녁에 시험을 준비해 했고 다음해 최종 합격했다. 모르는 분들은 내이력만 보고, 혹은 처음 만나도 자신감 있는 나를 보고는 머리 똑똑한 범생이 정도로 생각하고 한다. 그러나 사실 이런 모습은 내 인생에서도 매우 예외적인 일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나는 ㅇㅇ대학교에 있는 큰 연구소 소장실의 비서였다. 당시 지도교수님이 소장이 되면서 소장님 수업이나 기고문 원고도 수정하고, 책 작업도 돕고, 수업도 챙겨줄 조교 겸 비서가 필요했다. 동시에 선생님은 행정고시를 준비해볼 것을 권하였고, 비서업무를 하며 공부도 한다는 조건으로 일을 하게됬다. 책상엔 거울 대신 커다란 고시 독서대와 법전, 사전이 늘 함께했고 일 하면서 틈틈히 공부할 수 있었다. 보통은 고시원에 들어가거나 학원공부, 스터디 등을 하며 고시를 준비하지만 저는 2년 반동안 비서일을 하며 시간 쪼개기, 자기절제, 그리고 비서로서의 생활을 몸소 익히게 됬고, 그때 비서로서 배운 것들이 이후 직장생활하는데 밑거름이 되어왔다. 몇가지 중요한 팁만 소개하고자한다.
전화 받기 - 전화를 받을 때는 상냥하고 또렷하게 대답하고, 찾는 사람이 없을 때는 반드시 메모지에 연락처를 남겨두며, 마지막으로 무슨 용건이신지도 조심스럽게 물어볼 필요가 있다. 그러면 상대방도 기분이 좋고, 소장님도 나중에 전달받을 때 정보를 하나 더 알수 있다. 전화는 벨이 세번 이상 울리기 전에 받고, 많이 기다릴 것 같을 때는 전화를 끊고 나중에 연결해드린다. 최악은 "지금 안계신대요.."하고 끊는 것이다. 그다음 차악은 "나중에 전화주세요"이다. 먼저 물어봐야 한다. "혹시 급하신 건가요? 급하신거면 연락을 취해드릴까요? 아니면 이름을 남겨드릴까요?" 또 자주 전화 거는 사람들은 이름 뿐 아니라 목소리도 기억하는 것이 좋으며 나중에는 목소리만 듣고도 누군지 아는 경지에까지 이른다. 마치 단골집에 갔는데 나는 커피에 물적게, 설탕 둘 이라는걸 기억해주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처럼 말이다.
청소, 정리 - 많은 비서들이 사무실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나, 나는 그냥 상대방의 니즈에 맞추는 정도로만 유지해왔다. 깨끗한 거랑 정리하는건 다르다. 다행히 소장님이 나처럼 물건을 수평적으로 널리 놔두는 스타일이어서 책상 건드리는 것을 싫어하였고 나는 먼지만 닦는 수준으로 일했다. 이는 상대방이 작업하는 스타일을 잘 아는것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내가 아무리 깨끗한 게 좋다고 해도 윗분이 그걸 싫어하면 그냥 놔두면 된다. 심지어 깨끗한 걸 넘어서 나름의 기준으로 책상을 정리하는건 최악이다. 남의 인생이 비비 꼬여보인다고 해서 내가 맘대로 정리하는 격이다. 잘 모를땐 건드리지만 않아도 중간은 간다.
글 쓰기, 원고 수정 - 선생님이 신문에 정기 칼럼을 쓰고 있어 나는 매번 원고수정 작업을 하게됬는데 이때는 맞춤법에 따라 정확히 수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선생님은 늘 내용을 떠나 맞춤법이 틀리면 그 글을 대하는 작가의 태도에서 불성실함이 느껴진다고 했다. 그래서 원고지 다섯장 분량의 글도 수차례 다시 읽어보고 수정했다. 가끔 선생님이 지적하지 못한 표현인데 내가 좀더 괞챦은 표현을 발견하면 조심스럽게 이런 건 어떨까요 하며 제언을 드리곤 했다. 그러면 윗분도 흡족해하시고 내가 단순히 타자만 치는 비서가 아니구나 하며 더욱 신뢰하게 된다. 잘쓰는 것보다 틀리지 않는것이 중요하다는 것도 배웠다.
시간관리 - 아침 8시반부터 저녁 6시까지 정시에 출근해서 정시에 퇴근해야하는 일상을 2년반 동안 했다. 퇴근하면 바로 책을 챙기고 대도관(대학원도서관)으로 가서 자리를 잡고 10시까지 공부했다. 점심시간은 정확히 한시간. 절대적 시간을 확보해야 할 시기에 일하면서 시험준비한다는 데 동정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돌아보면 오히려 나는 합격의 일등공신을 규칙적인 시간관리 덕으로 본다. 선생님이 지키고 있는 가운데 책상에 앉아 있어야했고, 매일 출근해야했기 때문에 놀러가거나 게으름을 피울수도 없었다. 슬럼프에 빠질 때도, 포기하고 싶을때도 나는 출근해서 공부하는 척이라도 해야했다. 매달 월급이 내 통장에 찍힐 때마다 서울에 집도 절도 없이 상경한 나에게 이런 자리조차 과분하다고 감사한 마음이 가득했다. 회상해보면, 가지거라곤 감사함과 성실함 밖에 없었던 나를 선생님이 기특하게 여기셨나 보다. 그 흔한, 초등학생 때 배운 몇안되는 미덕들을 지켰을 뿐인데 그런 학생들조차 드물었던것 같다.
누구나 처음 직업이 맘에 들리 만무하다. 대부분의 청년들에게는 원하던 저 높은 직장에서 현실의 낮은 회사로 기대를 낮춰가는 과정일수도 있다. 그런 직장조차 구하지못해 알바와 비정규직을 전전하면서 우리는 얼마나 좌절하고 또 일어나는가. 그럴때 하게되는 작은 일, 누가 한번 시켜보는 일에 최선을 다해보자. 비서란 직업도 가장 미천한 노동일지 모르지만 덕분에 가장 낮은 자리에서 많은걸 배웠다. 우리는 저기 빛나는 곳으로 더높이 오르길 기다려야한다. 그러나 기다리는 동안도 마찬가지로 빛나는 순간으로 만드는 것은 우리 자신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