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알려면 내 안의 어린아이의 결핍을 찾아야 한다고 했지, 도대체 취향이 있었던 게 언제였지?
대체로 나는 남을 맞추고 살아가는 편이다. 주로 일과 음악도 남이 좋아하는지 눈치를 보면서 사느라 피곤이 많이 쌓여가는 것을 느끼면서도 신경 쓰는 일을 그만 두지 못한다, 무엇에 대한 미련을 가지는 소심함, 심지어 떠난 지 3년이 넘은 지인, 20년이 넘은 첫사랑에 대한 아쉬움을 아직도 가지고 사느라 자주 뒷북을 치는 일이 많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겠다고 말하기도 어렵고 안다고도 쉽게 말하기가 어려운 나는 현재 아무도 그립다고 말하지 않는다.
심리학적 관점 "과장된 무관심은 분노"였다
심리학에는 이럴 때 정신적 어려움을 과장된 무관심으로 세상을 관조하고 있는 것이나, 사실 본심은 힘든 시간에 상처받은 삶에 대해서 실망한 분노의 감정을 반대로 나를 표현하는 것이라고 한다.
#최근 인간관계에 깊은 화두를 던지신 세바시에서 본 강사께서 그때 내가 너무나 진심이었기 때문이라는 의견에 진심으로 내가 나의 삶에 에너지를 너무 많이 쏟아부어 고갈이 온 것으로 설명한 풀이에 나도 동의가 되기도 한다.
극적인 대상에 지나친 무관심으로 방관하는 부정적 영향을 끼친 것이다. 이런 문제는 자신을 집중하고 자아를 찾아가는 여행과 돌아봄이 필요하다고! 우리가 그토록 말한 자존감을 찾도록 해야 한다, 자존감이 쉴 새 없이 상한 가정에 재난, 폭력, 소외를 겪은 상황과 준비하지 못한 이별할 수 없는 이별로 도무지 한 줌의 노력도
들어갈 틈이 없는 땅속으로 내려앉은 자존감은 이제라도 나를 위해서 온전히 나를 위한 나를 찾아가는 일!
'내가 주어가 되어 보아야 한다" 나는 주로 무엇을 좋아하는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 시간이 빠르게 간다고 느낀다는데.. 내 시간을 무엇으로 채우고 싶은가? 나를 알 줄 생각했지만 모르겠단 생각에 잠시 당황돼서
몸이 뜨거워지고 갑자기 열이 오른다, 식은땀이 나려고 어지럽기까지 하다, 나는무엇이 즐거운가?
생각한 지 수년이 지나도 나는 아무것도 원하는 게 없는 사람처럼 살고 있었다..
나는 나는 지금 사실 너무 심심하다!
나는 나는 사실 지금 너무 울고 싶다!
사는 게 재미가 없어진 지 아주 오래되었다, 행복이 뭔지를 잘 모르겠고, 도대체 무엇을 할 때 사람들은 행복한가? 좋아하고 안 좋아하고 취향을 생각하거나 이런 대화를 해본 적이 거의 없다, 나는 솔직히 행복이란 단어에 대해 아무 말이 떠오르지도 않고, 행복에 대한 마음이 어떤 소중한 나누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비상구는 미로가 아닌 내가 가던 길
이런 어려운 주제를 입 밖으로 내뱉고 나면 뭔가 내가 문제가 있으니까 말한 것의 숨은 뜻을 알아내야 해야 한다는 강박이 오기도 하는 것 같다, 한국인의 사조라고 퉁치고 싶다, 주로 대화에서 여성이 아닌 남자들이 특히, 부부나 남자친구가 문제를 공감을 하기보단 먼저 해결하려고 한다지! 내가 남자성향도 아닌 것 같은데..
항상 문제들이 먼저 다가오는 걸까? 감성이 E가 폭발인 내가 왜 이렇게 된 걸까?
사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범생이 목표인양 현모양처가 꿈인 것처럼 자라야 했던 6.25를 겪은 할머니, 부모님의 세대를 3대로 대가족 살이를 한 나 같은 둘째가 어떤 처지에서 견디는지, 남존여비가 극심하던 집 안에 외동딸로 태어난 것이 외로움에 극치를 맛볼 수 있고, 잘해도 못해도 여자라고 욕을 듣고! 밥을 먹어도 혼나고 안 먹어도 욕을 먹는 삶을 살아본 사람하고 얘기를 나누면 뭔가 공감을 얻고, 공감대를 만들어 볼지 모르겠지만, 사람은 얼굴이 다르듯이 다르다 단지, 대부분 그때의 "라때는 모범을 명예로 생각해" 나 같은 사람이 많았다고 변명을 하고 살아간다! 나 개인의 모든 이야기에 대해서 좋고 싫음을 말하기는 부끄럽다고 말해야 하나, 뭐랄까 너무 난해하다, 아! MZ세대들은 도무지 이해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 인생 난제의 화두가 나왔다면 풀어야 하겠지! 아~ 시간이 잘 가는 일 뭐 또 음악생각이나, 책 보는 거 말고 생각이 안 난다, 나를 알려면 가장 먼저 내가 하고 싶은 것과 했던 일중에 "시간이 가장 잘 가는 일"이 뭔지 찾아야 한다고 했었지? 이게 그렇게 생각이 안 난다? 음. 그러니까 음.. 그래서 하나만 말하자면,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 그러니까 노래를 하거나 시를 쓸 때 실증을 잊는다면 점수가 높은 것이다. 특이한 점은 내가 음악을 대할 때와 일반적인 일에 많이 다르다는 평을 받는 사람이란 것이다!
세상의 불의에 무척 맘이 상하고 화가 나지만... 고요와 아름다움이 담긴 서정적인 시집에 맘이 동요되고 음악이야기를 한 소절 넣은 책을 읽으며 즐거운 나. 오늘도 그렇듯이 윤동주선생님의 "별 헤는 밤"에서 "쉽게 써진 시 "를 대하자면 가슴이 벅찬 것으로 내 정서를 내가 받은 전율을 말로 표현이니 어려워 감사와 눈물이 하염없이 흐른다!
#찬란한 대가인 줄 모르는 검소한 청년의 별을 정서로 선물을 받고 어떤 자세로 그 시들을 대해야 할까, 나는 작아지고 작아져서 그 시들의 곁에 있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혀
감사할 방법을 살아생전에 찾을 수 없다고 감성에 매몰되는 사람!
내 데이터 베이스 나의 정서는 요즘에 더 확실히 알았지만 MBTI. ENFP 어릴 때 적성검사에서도늘 예술편향 심한 감성적 사람이라고 했다! 생각해 보니, 유년 시절부터 중고등학교 시간까지 학예시간은 도맡아 노래 부르고, 선생님께서 시키신 낭독을 하고, 가곡이든 가요든 팝송이든지 장르를 오가며 주로 로맨틱한 서정적인 것들로 선택했지만, 주위에서는 신곡이 나오면 학년에 대표 아이들이 몰려와
내게 노래를 부르는 법이나 새로 유행하는 춤을 가르쳐달라는 부탁을 받을 일이 많았다.
#MBTI? ENFP!
낯은 가려도 맘속은 부끄러워도 무대체질로
학교를 대표하는 학예반에서 예술하는 아이로 살았던 것 같은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럴 일이 없으니, 다재다능하단 소리를 듣던 여자애는 사라졌다! 색깔이 없어졌고 무채색 가득한 옷장처럼 생각이나 행동이 normal 하기만 한 시간을 살아가다 보니 대부분의 동료와 선배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참 미스터리야, 애매해 MBTI ENFP라고? 살기 좀 힘들겠어, 하고 싶은 대로 못하면 '모'아니면 '도'아냐?"
그런 말을 듣고 산지도오래된 것 같다, 음식으로는 '섞어찌개' 같은 잡다한 취미와 관심이 세상에는 내 취향은 김이 빠져버린 음료 같고, 깨진 그릇 같아서 대충 보기에는 금방은 아무런 필요가 없어 보이는데, 그런 생각을 하니 괜히 숨이 막힌다, 획일화된 계산에는 가슴이 답답해온다.
#산소호흡기! 나는 가끔 산소 호흡기를 대여받고 싶다고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숨만 겨우 쉬는 사람을 숨통을 튀어주는 산소통이 대여되면 좋을 텐데 말이다.
나는 그렇게 사람의 그리움도 열정도 잊으며 사는 시간 동안 얼굴에 나이테를 그리기 시작한 서른이 훌쩍 넘어가는 집고양이가 별명인 나는 겁쟁이이중 상겁쟁이다! 집 밖은 불안하다, 갈 곳도 친구도 잃었다.
오래된 친구들은 잃었다는 말이 어울릴 거라 생각하는 이유가 있다, 부모님과 어른들 줄초상에 친척들이 등을 돌리고 어머니의 고생스러운 삶 속에 나도 삶과 꿈이 매몰되어 학창 시절 친구는 이미 잊고 산지 오래고, 연락이 닿은 친구는 너? 연예인 안된 거야? 가수도 안 하고? 그렇게 질문이 오고 집이 어려워졌구나, 하고 전화를 끊었던 기억도 있어 슬픈 예감의 정이 떠난 친구의 목소리는 한두 번이면 된 거지 다시는 아무도 찾지 않았다. 뭐 보고 싶은 친구라고 있었던 친구도 잘살면 잘살아서 나랑 달라져 멀리 살고, 힘들면 힘들어서 멀어지는 못난이 인형 같은 내가 티브이에 뭐 하러 나올 일이 있겠니? 단지 일반인 지역 문화인으로 사는 나! 마지막 자존심은 아니라도 자족을 위한! 내 로망이니까, 나름 이미지 관리도 하는 정성이 발동되기도 하고, 그래서 아무리
삶이 힘들어도 나는 더 박살 날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아버지의 유언이기도 하고, 집안 남자 형제들도 모두 음주가무는 안 한다.
체질상 부모님의 유전으로 술을 한 모금을 못 마시기도 하지만, 아무튼 세상 취미 향락에 즐거울 것이 없으니, 그나마 내가 지킬 것들은 항상 머릿속에글들이 쌓여서 먼지를 날리는데, 가슴속에 라디오가 켜져 있는 것처럼 소리가 울리기도 하고, 내 몸에 울림을 견디는 일은 몸의 균형을 맞추려고 버티고 나면 에너지가 고갈되기도 하는 수모를 겪곤 헌다.. 안정을 취하는 일이 절실할 때는 그저 뛰어야 한다. 심장이 뛰는 대로 걸어야 하고, 몸을 움직여야 지푸라기
처럼 땅으로 꺼지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걸어도 늘 손에 연필하나를 끼워 종이를 하나 접어서 들고나가는 버릇은 습작을 남기는 것이라도 해야, 모르겠지만
살아있다는 위안을 하기에 비가 오면 비 오는 대로.. 이렇게 들고나간 종이에 써둔 시구 한두 줄이 맘에 드는 반짝이는 가로등이 되어 내게 처음 시로 다가와 시집에 올릴 글이 되던 기쁨이 떠오른다. 내 이름을 빛내준 소중한 씨앗이 되기에 나는 필기구를 오히려 내 마음보다 의지하고 싶을 때가 있다! 내 소중한 기억을 담아두기에 늘 최애템이었다.
눈 오면 눈 오는 대로 산책을 나가는 게 전부라서 사실은 빨리 숨 쉬러 가는지 모르지만.. 산책길에도 커플들이 많아 여기저기 하하 호호하는 소리가 들린다.
이럴 때 혼자 인 게 불편하거나, 피곤해지는 느낌이 드는 건 왜인지 알 수 없다.
가로수가 늘어진 길을 유행도 한참 지난 관심 1도 없는 발라드를 들으며, 혼자 걷기도 민망할 때가 있다.. 야밤에는 동네 사람들이 많이 없으면 없어서 무섭고 있으면 있어서 불편하다!
아, 이럴 때는 스트레칭하는 척, 활기차게 운동을 하고 싶은 척, 힘나는 척을 하면서 동네 산책로를 뛰어야 해, 그래야 안 어색하지, 그런데 아무도 볼 사람도 없고, 시원해진 느낌도 없을 땐 약이 어른다. 난 심심할 뿐! 힘든 게 아니야 혼잣말을 허공에 날리다가 "공사 중"이라는 팻말이 가로막은 산책진입로에서 생각했다
봄에만 해도 분홍빛이 그토록 찬란했던 벚꽃길에 어울리게 힘찬 소리를 내며 졸졸 흐르던 오솔길에 낯익은 존재 아, 괜히 기분이 나쁘다! 날 닮은 것 같아 속상하려 한다.
#감정형이 발견하는 일
작년에도 혼자 꼿꼿이 아니 외롭게 서 있는 깃털이 듬성듬성 빠진 두루미 한 마리가 휘릭 날아가는 검푸른 하늘을잠시 올려다보다가 어두운 하늘을 올려다보니 기분이 묘했다! 순간 어두움이 필요한 휴식을 주기도 한다! 는 맘에 울림이 흐느적거리는 나무에 걸린 달그림자를 따라 하늘에 무엇을 찾아보았다, 북두칠성을 찾아볼까? 하고 서쪽하늘에 눈을 덜리다 오늘은 아무것도 찾지 말자! 돌아서는데 벚꽃나무에 버거운 듯 뻗은 큰 가지들 그 옆에 가녀린 새깃털을 달아놓은 듯 금방 나온 회색가지 하나 둘 어느새 여러 개 자란 가지를 세어보았다.
그러고 보니, 늙은 나무들 사이사이로 보이는 아기살결같이 뽀얀 가지들이 스멀스멀 올라와 빗물을 머금고 칠흑 같이 거친 늙은 메마른 나무에 세상모르고 나온 하얀 손짓을 보니 반갑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겁도 없다! 해야 하나? 빗방울 맺혀서 딸랑거리는 게 마치 엄마젖을 먹는 것처럼 붙어서 잘도 자라고 있구나! 올봄에 다 피고는 보름을 살면 그만 떨어져서 아쉬운 이별을 잘 견뎌낸 것을 기특하다고 생각해야겠지만, 좋은 날은 다 가고 아무도 봐주지 않을 밤에 참 열심히 자라고 있네, 칭찬을 한번 건네주었다! 사실 내가 고마운 것도 있었지. 내 비록 혼자 이렇게 거닐지라도 분홍색 때때옷을 갈아입은 너를 지나칠순 없었나 보다, 너를 눈도장 찍어 보고 마음에 담아 향도 없는데 꽃잎을 책에 끼어두고 너를 기억하고 계절을 보냈으니, 표징을 해둔 절친나무다
그리움을 잊은 내게 한 계절 피어나는 너를 보고, 기다림을 배운 것이지, 간간히 써 내려간 시 몇 편을 등단하게 되고, 시인의 감성을 찾아간 몇 년간의 활동이 지역에서 문화예술 봉사를 10여 년 동안 지역 기관장의 추천을 받고 시를 쓰는 희열이 생길 때쯤 작은 문학상도 연이어 받아 보니까, 마치 초등학생으로 돌아간 듯 어려진다 내 맘이 작은 벚꽃 잎 너를 따라가는 것 같다! 네 공이라 쳐줄게! 네가 내 이웃이다! 칭찬을 하면서 점찍어둔 나무옆에 서서 쓴웃음을 산책길을 뿌려놓고 뒤돌어서다가 뒤통수에서 번뜩였다,
" 이봐 너잖아 나도 너를 바라보고 너도 나를 바라보고 같이 자라고 있는 줄을 몰랐단 말인가? "
네 감성을 탓할 때가 아니다.불평하고
나를 나를 깨닫게 도와준 지금. 그리고..
' here and now " 가장 기초 심리학 용어인데 몰랐다 지금 이 순간을 바라봐!
"한강"작가의 아버지 되신 한승원 작가님의 일상을 다룬 다큐를 본 적이 있다. 반백년 시간 문학가로 사는 삶에서 육신에 안정을 주는 일은 탐욕을 내려놓고 자연을 보고 명상 속에 쉼을 얻고 사는 것이 인간을 깨끗하게 중심을 잡게 하는 것이다란! 말을 생각하게 했다.. 그렇다 접목이 된다 보름용 벚꽃만큼 쓸데없이 화려한 꽃이 없다! 보면서도 난 불평이 많은데, 서쪽하늘 북두칠성조차 안 보이는 밤을 견디는 시커먼 나무는 분홍잎이 하얗게 될 때까지 마침내 수도 없이 떴다가 지더라도, 함께 피어나는 꿈을 준비하는 작은 소망을 나무로 태어나 오래 서서 기다려야 하는 숙명의 뜻을 단번에 이해하려 들지 말란 말을 하는 것만 같았다.
아! 부끄러운 맘이 조금 들기 시작했다.
숨고를 줄도 모르는 나무도 생명을 잃지 않고 이렇게 성장을 하고 피어날 꿈이 있는데, 나는 불후의 명곡 파이널 우승을 준비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천년을 기다린다고 약속한 전생의 님을 기다리는 춘향이도 못되는데, 왜 고독을 자처할까?
늙은 어머니가 해 놓은 밑반찬들을 늘어놓고 찬밥을 물에 말아먹는 일이 잠시 건강한 음식을 먹는데 불편하단 반항인지, 핑계는 많았다, 시간에 대한 강박을 때론 신에 대한 불만과 부모에 대한 원망들이 홀어머니께 불효를 습관적으로 하고 산다는 자책을 하면서? 늦은 공부를 하고 자격증을 따는데 몇 번의 전공과 부전공을 번복하고, 대단한 공부도 아닐 텐데, 도서관이 아지트? 친구는 뭐에 쓰는 말인지?
인간관계를 잊고, 사는 즐거움이 뭔지 전혀 몰랐다. 아니면 고집스럽게 세상이 싫었던 걸까?
계절은 바뀌고 꿈을 꿀 공간이 없는 겨울은 더 춥다. 나는 배움이 느린 건지 아무리 시간이 지나고 전공을 여러 번 마쳐도 배움에 늘 목마르다, 결국 이렇게 적당한 무식과 게으름을 친구 삼아서 덜 익은 감을 베어 먹듯이 어설픈 공부만 한다고 삶이 이해되거나 만족하는 게 아니었다, 비 맞은 벚꽃나무를 바라보기만 하기에 안쓰럽다는 생각을 해 보며, 팔 벌려 살짝 안아보고 싶을 정도로 작은 깨달음은 오랜만이었고, 어쩌면 긴 기다림에 만난 오랜만에 유년시절 짝꿍이 건네준 커닝 쪽지 같았다! 포옹하는 법을 잊은 내가 무엇을 안을 수 있지?
내 삶도 언젠가는 안아줄 수 있을까?
누가 내 시간을 같이 끌고 함께 이 험한 시간을 가줄 수가 있을까?
죽을 만큼 열정을 내보는 용기가 내 인생에도 남아있을까!... 내 마음의 어린나무도 파란 새싹을 피우고, 색깔도 있는 꽃도 피고 싶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사랑도 기쁨도 잊고 산 불쌍한 "토굴인생"에 미안한 감정이 밀려들었다. 이럴 때 어울리는 장대비는 밤새 내리고 내 눈물도 흐르고 아, 차갑고 어둡고 각자 자기의 집으로 자기의 온정을 따라 걸어가는 이 밤길거리에서
쓰레기처럼 버린 감정들이 내 마음속을 휘젓고 별이 없는 밤하늘을 휘몰아쳐 "매일 공사 중"인 내 맘속에서 세상을 향해 단단히 만들어놓은 접근금지 바리케이드를 이제야 걷어차는 불쏘시개 막대기 하나가 생겨나서 굳은살 박인 내 심정을 따갑게 휘젓고 있었다, 아 꼭 이루고 싶은 잃었던 이야기, 어린 나이에 이미 눈물샘을 망가뜨린 시퍼런 꿈을 다시 찾아낼 수 있는 건가? 내 꿈을 주워 모아야 한다! 내 꿈보따리를 풀어보는 용기를 내야 한다!
어지러운 세상 탓을 할 만큼 했다 치고, 아까운 줄 모르고 버린 꿈을 주울 수 있을지 모른다! 이제라도불혹을 이대로 맞지 말자! 내 안에 꺼진 등불을 밝히고 싶은 욕구가 일어난 밤이었다.
습관이 되려면 과학적으로는 3주면 몸의 반응이 온다고 하던데, 나를 믿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과학의 힘을 기댈 수밖에 그렇게 밤낮 걸으며 습관의 힘을 찾아보고 있던 중 가난한 마음이 확성기를 울려대기 시작했다. 투덜대지 말고, 게으름을 실컷 마친 것 같으니 글 좀 쓰지? 믿을 거 없어? 그럼 니 손가락을 움직여! 니 손가락은 니 거잖아! 그래, 입만 살아서 마음만 시끄럽게 들쑤시는 짓을 그만두고 마음 청소를 좀 하자!
순수한 시절에 나는 뭘 했었지? 아이들은 내게 가수가 될 것 같다고 했었는데 말이다!
전국 동요대회 때 나갈 합창부터 시작해서 독창부에서 우수상을 받은 적도 있었고, 고등학생 때 음악시간에 선생님이노래를 하라고 자주 시켜서 친구들은 내가 당연히 음대에 갈 줄 알았던 것 같다, 한 번은 모잡지 회사 주체인 "주니어가요제"에서 예선통과 후 처음대학로 자유로운 마로니에 광장에 처음 온날! 대회본선에 나가는 낯선 용기를 낸 적도 있었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우리 집가정의 어려움이 쓰나미처럼 닥쳤던 고3 망친 입시에 음대를 나와야 성악을 하지, 가수는 제작자가 만든 노래를 먼저 불러서 히트를 시켜야 한다는 연기학원과 방송가에 떠도는 속설에 시달려 봤고, 가족의 죽음과 불행한 내 인생에 내가 신나서 부르고 싶은 노래를 할 상황은 다시 오지 않을 것 같던 시간이 남긴 흔적은 눈물샘이 고장 날 만큼 슬퍼하던 20대의 시간을 훌쩍 건너뛰어 넘기를 한 뒤에도 아직도 나는 그렇게 노래하는 시간을 갈구하면서 늘 용기가 없었다. 무모한 용기를 가지고 싶지 않아! 내 용기는 쓸데가 없다! 고 마음판에 서글픈 단언을 주입하면서... 내가 가장 힘든 생각을 하면서 노래를 부를 때 아무도 감동받지 않을 거야? 이것이 진실인가?
힘든 일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는 것이 더 힘든 것처럼, 내가 노래할 때가 아니다고 누가 정죄를 하는 걸까? 이해 안 되는 나만의 노래를 부르겠다면? 삶이 버거운 노래는 시도조차 안 되는 거야? 나름대로 부른 노래가 치료곡이 될 수 있다면? 다 좋아지게 된다면? 상상을 왜 못한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