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너벨 요가&명상의 존재 이유
원불교 교무님으로 오랫동안 사람들을 말로 가르쳐왔습니다. 핵심은 나를 알고 세상을 알아 불필요한 고통을 덜고, 필요한 수고로움은 기꺼이 감수하면서 스스로 행복해지고 남도 세상까지 함께 행복해지도록 성장해가자는 거였죠. 결국 중요한 것은 성장하는 거,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행복해지기 위해 우리는 요가를 하고 명상을 하고 마음공부를 하죠. 그렇게 행복해지려면 변화가 필요합니다. 껍데기를 벗고 성장하는 나무들처럼 변화하며 성장하는 거죠. 그래서 공부를 하고 수행을 합니다. 이미 충분히 행복하다면 수행이나 마음공부, 요가나 명상이 필요 없을 수도 있죠. 늘 행복하지 못하고 때때로 또는 자주, 또는 대부분의 삶을 불필요한 고통에 시달리기 때문에 공부나 수련을 하는 거죠. 저는 조금 더 열심히 공부를 하고, 그 노하우를 공유하는 일에 열심입니다. 인스타를 하고, 브런치를 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가르치는 일의 시작은 대구에서 첫 부교무로 살면서 어린이들과 학생, 청년들에게 마음공부를 가르쳤죠. 아이들은 마음이 순수해서 주는대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죠. 동네 아이들과도 참 잘 지냈어요. 아이스크림 사주면서 아이들에게 방석 햇볓 소독을 하도와달라고 하면 5-6명이 동네 아이들이 와서 도와주곤 했죠. 1년을 대구에서 지내다가 인사이동 후 그 곳을 방문했을 때, 아이들이 다시 돌아오는거냐며 반가워 하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이후 박사과정을 시작한 후로는 원광대학교에서 <선과 인격수련>, <현대사회와 선>, <종교와 원불교> 등을 가르쳤습니다. 거의 10년간 대학생들에게 선 명상을 가르치면서 특별히 명상에 관심을 갖지 않아도 잘 가르쳐주면 쉽게 좋은 명상 상태를 경험하는 것을 목격했죠. 마음이 순수하기 때문에 알려주면 그대로 하기 때문입니다.
이후 건강에 이상이 생겨 하던 일을 그만두고 2011년, 캐나다 밴쿠버 교당에 교무님으로 부임을 하게 되었죠. 8년이라는 세월동안 첫사랑과 같은 마음으로 1주일에 한 번 진정을 다해 설교를 해왔습니다. 유튜브에도 올렸죠. 법회 때마다 기도도 했죠. 천일기도 3년을 하고 지난 세월을 돌아보니 의문이 들었습니다. ”왜 사람들이 쉽게 변하지 않지?“ 말에 대한 가르침에 대해 회의가 들기 시작했죠. 그래서 몸으로 직접 수행을 경험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명상 프로그램을 기획했죠. 1,000일간의 명상 정진. 귀로 설교를 듣거나 기도를 통해 소원을 비는 일이 아니라 1,000일 동안 직접 몸으로 명상을 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것이 처음으로 말로 가르치던 마음 공부에서 몸으로 수행하는 명상에 중점을 두게 된 계기입니다. 명상을 중점으로 교도님들과 영어 사용자를 위한 영어 선방을 적극적으로 해보려는 시기에 뜻하지 않는 바람이 불어왔고,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한국으로 귀국한 후 명상에 대해 더 깊이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에 집중헀죠. 특히 명상이 사람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그 결과에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그러다 뜻한 바 있어 대상을 바꿔 서울로 이사를 오고 직장생활하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명상을 적극적으로 가르치기 시작했죠. 많은 사람들을 1:1 코칭의 형태로 만나서 지도를 했습니다. 명상이 좋다고 하니까 시작은 해보지만 눈에 띄는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니 많은 사람들이 지속하기가 어려웠죠. 그 때까지만 해도 몸을 함께 수련해야 한다는 생각은 깊이 못했습니다. 그래서 명상 전에 간단히 몸 풀기 수준에서 요가를 가볍게 하고 요가를 깊이 다루지 않았죠.
그러던 중 2023년 인도 전통 요가 선생님과 인연이 닿았습니다. 인연이 인연을 낳는 셈이죠. 명상 학생 중 한명이 선생님을 소개해서 인도에 계신 인도인 선생님으로부터 한국말로 <요가철학>을 배우기 시작했죠. 요가에 대해 너무 몰랐다는 걸 자각하면서 서서히 요가의 세계로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선생님을 인도에 가서 직접 만나고, 선생님이 한국 오셨을 때 꾼달리니 요가와 빈야사 요가 두개의 자격증과 수료증을 따면서 요가의 실질적인 효과를 경험하기 시작했죠. 2025년 인도 아쉬람에 살면서 인도 문화를 새롭게 접하게 되었고, 요가의 성지라고 하는 리시케시와 델리에서 또 다른 각도에서 요가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선생님과 함께 보낸 1달이라는 오롯한 시간이 요가의 세계를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되었고 마음을 다루는데 몸이 어떤 영향을 주는지 체험으로 이해하게 되었죠.
요가에서 몸은 마음의 가장 거친 형태이고, 마음은 몸의 가장 미세한 형태입니다. 막연히 몸과 마음이 하나라고 들었을 때와는 조금 다른 차원에서 깊은 울림이 있었죠.
결국 사람이 변화되려면 자신과 삶에 대한 통찰과 몸과 그 통찰마저 내려놓는 명상이 잘 어우러져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제가 하는 요가&명상을 <이너벨 요가&명상>이라 정리를 헀죠. 그 교육 내용에는 나와 세상에 대한 성찰과 통찰을 통한 깨달음(지혜), 몸을 쓰는 요가, 마음을 쉬고 아무것도 안하는 명상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도록 했죠.
그래서 제가 하는 명상 수업은 늘 요가를 함께 합니다. 요가 뿐만이 아니죠. 중간 중간 적절하게 스스로를 돌아보고,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와 불필요한 고통을 줄일 수 있는 삶의 지혜를 전하죠. 그렇게 3가지가 다 있어야 의식도 열리고, 몸도 정화되며 활력과 균형을 얻고, 명상 또한 깊어 질 수 있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최근에 티벳불교에서도 몸과 마음을 함께 닦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상빠까규는 정확히 몸과 마음을 함께 닦죠. 오랜 인연인 깔루 린포체가 니구마 요가를 전파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린포체는 말하죠. "호흡을 지배할 수 있는 자, 자신을 다스릴 수 있다". 무문관 수행을 들어가는 제자들이 자신의 수행상의 진전을 린포체에게 확인 받고 싶어할 때 린포체는 단호하게 말합니다. "말로 하지 마라. 몸으로 직접 수행해보고 6개월 후 몸으로 보여달라." 단순하면서도 심오한 가르침입니다.
물론 원불교에서도 몸을 함께 닦습니다. 원불교 좌선법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단전주 입니다. 단전이라는 부위에 의식을 집중하고 좌선을 하면 수승화강이 잘 되어서 마음도 쉽게 안정되고 몸도 건강해진다고 하죠. 결국 아는 분들을 알았다는 이야기 입니다.
요즘 요가와 명상을 하시는 분 중에는 몸에 치중하거나 마음에만 치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몸과 마음이 하나라서 함께 닦아야 합니다. 마음 만으로도 안됩니다. 마음 넘어 성품, 불성이 깨어나는 노력이 필요하죠. 바로 깨달음입니다. 각성, 깨어남, 알아차림, 마음챙김. 모든 일이 가능하게 하는 게 우리에게 내재한 또 다른 차원의 의식입니다. 이 의식을 불성, 영성, 꾼달리니, 최고의식 등 다양하게 명명하지만 다름 아닌 우리 모두에 내재한 '바라보는' '다 아는' 그 무엇입니다. 그 무엇이 깨어나고 작동하는 순간 이해와 깨달음이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를 보기 때문이죠.
이왕하는 요가, 명상, 마음공부. 제대로 알고 잘 해서 실질적으로 삶이 더 나아지고, 행복해지고, 세상까지도 더 나은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저는 명상에 요가를 더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