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짐승의 목이 잘려 나간 숲은 겉보기엔 평온하다. 그러나 숲의 주민들은 본능적으로 안다. 어제까지 포효하던 지배자가 사라진 빈자리에, 피비린내를 휘감은 새롭고 더 잔혹한 포식자가 등극했음을.
태성그룹 사내 인트라넷 게시판에 짧은 공지 하나가 올라온 것은 수요일 아침이었다.
[인사 발령: 재무팀 송태섭 부장, 일신상의 사유로 사직 처리됨.]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룹의 곳간 열쇠를 쥐고 깐깐하게 호령하던 재무통의 갑작스러운 퇴장. 표면적인 이유는 '일신상의 사유'였으나, 사내에는 이미 기괴하고도 자극적인 소문이 역병처럼 퍼져 있었다. 송 부장이 부하 여직원들을 상습적으로 성희롱하고 실무진들에게 끔찍한 갑질과 폭언을 일삼다 내부 고발로 쫓겨났다는, 지극히 구체적이고 악의적인 소문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송 부장의 강직함을 칭송하던 임원들은, 행여나 불똥이 튈세라 앞다투어 그를 '권력에 취해 괴물이 된 꼰대'라며 비난하는 데 열을 올렸다. 태성그룹이라는 거대한 유기체는 상처 입은 세포 하나를 도려내기 위해, 그 세포가 원래부터 악성 종양이었다는 완벽한 집단적 환상을 창조해 냈다.
그리고 그 모든 조작된 광기를 22층에서 고요하게 내려다보고 있는 7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서지안 실장의 수족이자, 송태섭이라는 제물을 도마 위에 올리고 직접 각을 뜬 특별감사팀원들.
최고의 정보 수집 능력을 자랑하는 해커 출신 박 대리, 15년간 그룹 내의 궂은일을 도맡아 온 베테랑 오 과장, 그리고 각 부서에서 가장 눈치 빠르고 독기 품은 자들로만 선별된 다섯 명의 팀원들. 이들 7명은 아침부터 침묵 속에서 서로의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자신들이 저지른 짓의 무게가 그제야 실감 나기 시작한 탓이었다. 그들은 서지안의 지휘 아래 재무팀 직원들의 약점을 캐내어 협박하고, 없는 죄를 날조하여 한 사람의 인생을 완벽하게 파괴했다. 회사를 위한 감사(監査)라는 명분으로 포장했지만, 그 본질은 가장 비열하고 더러운 암살이었다.
‘우리가… 선을 넘은 것은 아닐까. 언젠가 이 피 묻은 칼날이 우리를 향하면 어쩌지?’
오 과장이 마른세수를 하며 모니터만 노려보던 그때, 감사팀 사무실의 유리문이 열리고 서지안이 들어왔다.
오늘따라 그녀의 모습은 눈이 시릴 정도로 완벽했다. 은은한 광택이 흐르는 실크 블라우스와 핏이 딱 떨어지는 화이트 팬츠 슈트, 그리고 그녀의 서늘한 기운을 대변하는 붉은 립스틱. 그녀는 죄책감에 짓눌린 팀원들과는 달리, 세상에서 가장 가볍고 상쾌한 걸음걸이로 사무실 중앙에 섰다.
“다들 표정이 왜 그렇습니까? 큰 전쟁에서 승리한 개선장군들치고는 너무 우울하네요.”
지안의 나긋나긋한 목소리에 7명의 팀원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 과장이 대표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실장님… 송 부장 건, 공지 확인했습니다. 재무팀 애들 입단속은 철저히 시켜두었지만, 행여나 나중에라도 저들이 말을 바꾸거나 하면…….”
“말을 바꾸다니요. 그들이 스스로 펜을 들고 자기 상사를 악마로 묘사했는데, 누굴 탓하겠습니까. 공범은 결코 자신의 죄를 고백하지 않습니다. 불안해할 필요 없어요.”
지안은 자애로운 미소로 오 과장의 불안을 단숨에 일축했다. 그리고 책상 위에 올려진 작은 봉투 하나를 집어 들었다.
“지난 한 달간, 여러분은 제가 지시한 가장 까다롭고 위험한 수술을 완벽하게 집도해 냈습니다. 썩은 환부를 도려내느라 여러분의 손에도 피가 묻었죠. 저는 그 피를 당연하게 여기는 무능한 상사가 아닙니다.”
지안의 깊고 투명한 눈동자가 7명의 팀원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어루만졌다.
“오늘 저녁, 일정 모두 비우세요. 제가 우리 팀의 위대한 승리를 축하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장소는 서울 도심 쪽에 예약해 두었고, 주소는 박 대리 메신저로 찍어주겠습니다. 편한 마음으로, 가장 좋은 옷을 입고 오세요.”
저녁 7시. 서울 도심의 한적하고 은밀한 골목에 위치한 프랑스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라 벨르(La Belle)’.
수개월 전부터 예약을 하지 않으면 입장조차 불가능하다는, 대한민국에 단 몇 개 없는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이었다. 높은 담장과 육중한 철문으로 외부의 시선이 완벽하게 차단된 이곳은, 정재계 최고위층이나 톱스타들이 은밀한 모임을 가질 때나 찾는 철저한 회원제 공간이었다.
택시에서 내린 7명의 특별감사팀원들은 압도적인 레스토랑의 외관 앞에서 기가 죽은 채 서성거렸다. 늘 구겨진 정장 차림으로 야근과 컵라면에 찌들어 살던 그들에게, 입구에서부터 정중하게 허리를 굽히는 턱시도 차림의 발렛 요원들과 고급스러운 샹들리에의 불빛은 완전히 다른 세계의 언어처럼 느껴졌다.
“오 과장님… 여기 밥값이 인당 수십만 원은 거뜬히 넘는 곳 아닙니까? 법인카드로 이런 곳 결제했다가 나중에 문제 생기면 어쩌려고…….”
“쉿. 실장님이 알아서 하셨겠지. 일단 들어가자고.”
지배인의 안내를 받아 들어간 2층의 프라이빗 룸은 그야말로 궁전의 만찬장을 방불케 했다. 거대한 크리스털 샹들리에, 수공예로 조각된 마호가니 원목 테이블, 그리고 테이블 중앙을 장식한 수백 송이의 생화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넓은 2층 전체에 손님이라고는 오직 그들 7명을 위한 자리밖에 세팅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지배인님, 혹시 다른 예약 손님들은 없습니까?”
눈치 빠른 박 대리가 묻자, 지배인이 정중하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서지안 실장님께서 오늘 저녁 저희 레스토랑 전체를 대관하셨습니다. 여러분의 모임에 단 한 번의 방해도 없어야 한다고 각별히 당부하셨지요.”
팀원들의 입에서 일제히 헉, 하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의 저녁 타임을 통째로 대관하다니. 수천만 원의 비용이 발생할 것이 뻔했다. 아무리 임원급 실장이라 하더라도 회사 법인카드로 결제할 수 있는 한도를 아득히 벗어난 규모였다.
그들이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을 때, 룸의 묵직한 오크목 문이 부드럽게 열리며 서지안이 들어왔다.
사무실에서의 빈틈없는 슈트 대신, 어깨선이 우아하게 드러나는 블랙 실크 드레스 차림의 그녀는 압도적인 고혹미를 뿜어내고 있었다. 하얀 목선에 걸린 진주 목걸이가 샹들리에 불빛을 받아 은은하게 빛났고, 그 어떤 흔들림도 없는 여유로운 발걸음은 마치 이 거대한 성채의 진정한 여왕 같았다.
“다들 서서 뭐 하세요? 앉으시죠.”
지안이 상석에 자리를 잡고 나긋나긋하게 권하자, 그제야 팀원들이 얼어붙은 몸을 움직여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았다. 곧이어 제복을 입은 서버들이 최고급 빈티지 돔 페리뇽 샴페인을 각자의 크리스털 잔에 채워주기 시작했다.
“실장님… 저희 회식이라고 하셔서 근처 고깃집이나 일식집을 생각했는데, 이건 너무 과분한 자리 아닙니까. 게다가 통대관이라니요.”
오 과장이 송구스러운 듯 잔을 매만지며 말하자, 지안이 샴페인 잔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
“과분하다고요? 오 과장님. 우리 팀이 지난 한 달간 그룹을 위해 벌어들인 무형의 가치가 수백억에 달합니다. 부사장의 눈엣가시를 치워주었고, 썩은 부서 하나를 통째로 길들였죠. 이 정도의 보상은 여러분의 능력과 충성심에 비하면 오히려 소박한 겁니다.”
지안의 투명한 시선이 7명의 눈동자를 하나하나 꿰뚫었다.
“여러분은 아직도 스스로를 언제든 갈아 끼울 수 있는 회사의 톱니바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여러분은 태성그룹이라는 거대한 짐승의 목줄을 쥐고 있는, 유일무이하고 특별한 사냥개들입니다. 이 세상에 사냥감의 피를 가장 많이 묻힌 사냥개보다 귀족적인 존재는 없습니다.”
지안은 잔을 높이 들었다.
“여러분의 헌신과, 우리의 완벽하고 영원한 비밀을 위하여.”
챙-.
맑고 영롱한 크리스털 마찰음이 화려한 프라이빗 룸을 가득 채웠다. 첫 잔을 비워낸 순간부터, 최고급 요리들의 향연이 펼쳐졌다.
캐비어를 곁들인 랍스터 타르트, 송로버섯(트러플)을 듬뿍 올린 한우 안심 스테이크, 입안에서 녹아내리는 푸아그라 테린. 평생 구경조차 해본 적 없는 진미들이 끊임없이 서빙되었고, 지배인이 직접 각 요리에 어울리는 수백만 원짜리 그랑 크뤼 급 와인들을 페어링해 주었다.
알코올이 혈관을 타고 흐르고 압도적인 부와 쾌락이 미각을 지배하자, 팀원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던 알량한 도덕적 죄책감과 불안은 눈 녹듯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래. 우리가 무고한 사람을 좀 밟았기로서니 무슨 대수인가. 세상은 원래 약육강식이고, 우리는 살아남아 이토록 달콤한 승리의 잔을 마시고 있지 않은가.’
인간의 도덕성이란 환경에 따라 얼마나 쉽게 변형되는가. 최고급 와인과 화려한 샹들리에 아래서, 그들은 스스로를 ‘부조리한 권력의 하수인’이 아니라 ‘세상을 조종하는 엘리트 계층’으로 격상시키며 맹목적인 도취감에 빠져들었다.
식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디저트 와인이 서빙된 후 지안이 지배인에게 가볍게 눈짓을 보냈다.
지배인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고 물러난 직후, 서버들이 은제 트레이를 하나씩 들고 7명의 팀원들 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들의 식탁 위, 커피잔 옆에 묵직하고 고급스러운 벨벳 케이스를 하나씩 내려놓았다.
“이게… 뭡니까?”
가장 막내인 김 사원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지안은 와인 잔의 붉은 액체를 가볍게 스월링하며 나긋나긋하게 대답했다.
“열어보세요.”
딸깍.
7개의 케이스가 동시에 열리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그 직후, 프라이빗 룸 안에는 숨이 멎을 듯한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았다.
벨벳 쿠션 위에서 오만한 광채를 뿜어내고 있는 것은, 스위스 하이엔드 명품 브랜드의 기계식 시계였다. 누구라도 로고만 보면 알 수 있는 최고급 모델. 롤렉스, 오메가, 예거 르쿨트르 등 각 팀원의 성향과 직급에 맞추어 세심하게 골라진 시계들은, 아무리 보수적으로 잡아도 개당 1,500만 원에서 2,000만 원을 호가하는 엄청난 물건들이었다.
“실, 실장님… 이건…….”
오 과장의 손이 덜덜 떨렸다. 그의 손에 들린 케이스 안에는 그가 평생 백화점 진열장 너머로 침만 삼키며 바라보던 로즈골드 소재의 명품 시계가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의 석 달 치 월급을 고스란히 모아도 살 수 없는 엄청난 고가의 시계였다.
“회사 법인카드 한도가 아니라 제 개인 사비로 준비한 겁니다.”
지안의 차분하고 단호한 목소리에 팀원들의 동공이 터질 듯이 확장되었다. 레스토랑 통대관 비용에 수천만 원, 그리고 7명에게 돌린 하이엔드 명품 시계 구입 비용만 합쳐도 1억 5천만 원이 훌쩍 넘는 금액이었다. 일개 임원급 실장이 부하 직원들에게 사비로 플렉스(Flex)하기에는 너무나도 기형적이고 압도적인 액수였다.
“회사는 여러분이 일한 시간(Time)에 대해 월급이라는 알량한 숫자로 보상합니다. 하지만 저는 다릅니다.”
지안은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테이블을 돌며 팀원들의 뒤로 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하이힐 소리가 심장 박동처럼 규칙적으로 울려 퍼졌다.
“저는 여러분이 저를 위해 더럽힌 손과, 무거운 침묵과, 그리고 앞으로 바칠 영원한 충성심(Loyalty)에 대해 보상하는 겁니다. 이깟 쇳덩어리 몇 개가 여러분이 감당한 심리적 압박감에 비하면 대수겠습니까.”
지안은 오 과장의 뒤에 서서, 직접 벨벳 케이스 안에서 시계를 꺼냈다. 그리고 덜덜 떨고 있는 오 과장의 굵고 투박한 손목에 차가운 금속 시계를 채워주었다. 찰칵, 하고 시계의 버클이 닫히는 소리가 서늘하게 방 안을 울렸다.
“이 시계의 초침 소리를 들을 때마다 기억하세요. 여러분의 가치는 회사의 규정이나 인사고과 따위가 정하는 게 아닙니다. 오직 저만이, 서지안만이 여러분의 가치를 증명하고 가장 완벽한 형태로 보상해 줄 수 있다는 것을요.”
지안은 오 과장의 어깨를 꽉 쥐었다. 그 묵직한 악력에 오 과장은 숨을 들이켰다.
손목에 감긴 1,500만 원짜리 명품 시계. 그 차갑고도 황홀한 금속의 감촉은 오 과장의 뇌리에서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알량한 도덕적 저항감을 완벽하게 짓뭉개버렸다.
‘그래, 송태섭 부장이 우리에게 뭘 해줬나? 원리원칙만 내세우며 칭찬 한마디에 인색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서지안 실장님은 다르다. 이분은 우리의 가치를 안다. 이 엄청난 부와 권력을 기꺼이 우리와 나눌 줄 아는 진짜 지배자다.’
오 과장의 눈빛이 변했다. 흔들리던 동공에는 어느새 탐욕과 맹목적인 충성심이 핏발처럼 서려 있었다.
지안은 이어서 해커 출신 박 대리의 뒤로 다가갔다. 늘 헐렁한 후드티만 고집하던 박 대리조차, 오늘만큼은 지안이 내민 세련된 메탈 시계 앞에서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었다. 지안은 그의 마른 손목에 시계를 채워주며 조용히 속삭였다.
“박 대리의 그 놀라운 재능, 송 부장 같은 고리타분한 양반들은 평생 범죄 취급이나 했겠죠. 하지만 내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값비싼 마법입니다. 앞으로도 나를 위해, 그 재능을 아낌없이 펼쳐주세요.”
“실장님…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박 대리의 입에서 태어나 처음으로 타인을 향한 절대적인 맹세가 튀어나왔다. 시계를 찬 그의 손이 벅찬 감동으로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지안은 7명의 팀원 모두의 손목에 차례대로 시계를 채워주었다. 시계의 버클이 닫히는 ‘찰칵’ 소리는, 평범했던 직장인들이 도덕이라는 굴레를 벗어던지고 서지안이라는 절대적인 교주(敎主)에게 완벽하게 종속되는, 가장 끔찍하고도 찬란한 족쇄가 채워지는 소리였다.
수백억의 자본이 오가는 거대한 대기업. 그 안에서 일개 부속품으로 소모되던 그들은, 이제 한 사람의 개인 사비로 1억이 넘는 돈을 기꺼이 뿌릴 수 있는 압도적인 재력과, 그룹 실세를 쥐락펴락하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닌 서지안을 보며 완전한 ‘신(神)’을 목격한 듯한 경외감을 느꼈다.
만약 지안이 오늘 당장 7명에게 누군가를 옥상에서 밀어버리라고 지시한다면, 그들은 일말의 죄책감 없이 미소를 지으며 방아쇠를 당길 것이다. 그들은 더 이상 평범한 샐러리맨이 아니었다. 한 여자의 피 묻은 비밀을 공유하고, 그녀가 내려주는 달콤한 살점을 받아먹는 완벽한 친위대이자 공범자들이었다.
“자.”
모두의 손목에 빛나는 족쇄를 채워준 지안이 다시 상석으로 돌아와 샴페인 잔을 들었다. 그녀의 붉은 입술이 매혹적으로 호선을 그렸다.
“오늘 우리가 나눈 이 아름다운 만찬과, 여러분의 손목에서 뛰고 있는 심장 소리. 이 모든 것을 기억하십시오. 앞으로 우리가 태성그룹이라는 사냥터에서 도륙할 사냥감들은 송태섭 부장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거대하고 난폭할 겁니다.”
7명의 팀원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들의 잔을 치켜들었다. 그들의 눈동자에는 일말의 불안이나 의심도 남아있지 않았다. 오직 눈앞의 여왕을 향한 맹목적인 도취와 광신적인 열광만이 번들거리고 있었다.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실장님!”
“어디든 물어뜯겠습니다!”
지안은 속으로 서늘한 웃음을 삼키며, 그들과 가볍게 잔을 부딪쳤다.
“우리의 영원한 공범을 위하여.”
챙-.
최고급 크리스털 잔이 부딪히는 맑은 소리가 화려한 샹들리에 불빛 아래로 흩어졌다.
손에 묻은 핏자국을 최고급 캐비어와 빈티지 샴페인으로 씻어내는 공범자들의 완벽한 식탁. 돈과 권력이라는 가장 원초적인 자극으로 인간의 양심을 완전히 거세해 버린 지안은, 손목의 롤렉스를 쓰다듬으며 자신을 숭배하는 7명의 사냥개들을 만족스럽게 내려다보았다.
'완벽해. 이성을 잃은 충견(忠犬) 열 마리는 백 명의 똑똑한 학자들보다 훨씬 다루기 쉽고 치명적이지.'
지안은 창밖의 까만 밤하늘을 무심한 눈길로 응시했다.
재무팀이라는 거대한 성벽을 허물고 훌륭한 사냥개들까지 완벽하게 길들였으니, 이제 다음 사냥감은 조금 더 높은 곳, 이 회사의 가장 깊고 예민한 뇌수를 건드릴 차례였다.
그녀의 머릿속에 다음 제물로 바쳐질, 위태로운 천재의 얼굴 하나가 차갑게 떠올랐다. 피비린내 나는 콜로세움의 막이, 본격적으로 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