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시의 새해

by 리박 팔사

이것은 도시계획이 원했던 삶이었을까?


제1장. 비슷한 사람들, 다른 시간


초기 신도시에는 비슷한 사람들이 이사 왔다.

비슷한 나이, 비슷한 직장, 비슷한 가족 구성.

아파트 평형도, 아이들 나이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겉으로 보면 우리는 닮아 있었지만 서로의 시간은 전혀 다르게 흘렀다.

같은 단지에 살았지만 서로의 시간은 겹치지 않았다.


도시는 새로웠고 사람들은 이곳에서 머무를 준비를 하기보다는 언제든 떠날 준비를 하였다.


제2장. 시간이 쌓인다는 것


30년이 흘렀다. 도시는 더 이상 새롭지 않다.


건물은 낡았고 나무는 그늘을 만들 만큼 자랐으며 상가의 간판은 여러 번 바뀌었다.


이제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전혀 다르다.

처음 입주한 세대도 있고 중간에 들어온 사람도 있으며 최근에 이사 온 가족도 있다.


배경도, 나이도, 사는 방식도 다르다.

하지만 우리는 비슷한 시간을 살고 있다.


도시는 이제 각자의 삶을 포용할 만큼 충분한 시간을 보냈다.


제3장. 새해 인사라는 증거


12월 31일 저녁, 신도시는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다.


폭죽도 없고 큰 소리도 나지 않는다.

다만 엘리베이터와 출입구에서 작은 변화가 생긴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평소엔 고개만 끄덕이던 사람들이 그날만큼은 말을 건넨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의 시간을 잠시 확인한다.


우리는 같은 공간에 살고 있고 같은 해를 보냈으며

같은 시간을 건너왔다는 사실을 그 인사 한마디로 확인한다.


신도시는 이제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는 곳이 아니라 같은 시간과 각자의 삶을 공유하는 도시가 되었다.


제4장 결론: 같은 시간을 산다는 것


초기 신도시는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 살았지만 각자의 미래를 따로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의 신도시는 전혀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지만 같은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서로의 과거는 몰라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같은 속도로 시간을 건너고 있다.


건물이 아니라 사람들이 시간을 함께 보내기 시작할 때 도시가 완성된다.


새해 인사는 그 변화가 눈에 보이는 가장 조용한 증거다.


신도시는 3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같은 시간을 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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